<사교육없이도 예체능 잘 하는 법>의 마지막 이야기.
음악교육이다.
언어와 인지발달은 물론 정서적 감수성에다 창의력, 사회성까지
발달시킨다는 음악교육, 부모라면 한번쯤 고민해 보지 않을까.
다른 사교육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은 특히 조기에 가르치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건 아마 10대 이후가 되면 아이의 시간이 공부에 거의 집중되어야
하는 현실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그런데, 1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하거나
악기연주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성이 가장 풍부한 시기라는 게 제일 큰 장점이고
악기연주에 필요한 이해력, 집중력, 체력이 좀 더 갖춰진 시기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사고력이 형성된 때라는 게 중요하다.

공부 외에도 운동, 미술, 음악에도
사고력이 참 중요하다는 걸 요즘 새삼 느낀다.
둘째 아이와 함께 운동을 하는 친구 엄마 중에
초중고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가 있는데(아이 셋 모두 같은 운동을 한다)
같은 운동을 똑같이 시작해도 빠르게 실력이 느는 아이들의 차이는,
지금 상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 예측할 수 있는가 아니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의 경우, 수영을 아주 잘 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에게 자유형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얘기한다.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쉴 때,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 것처럼
 "왜?"하고 돌아보며 숨을 쉰다고 생각하면 돼."
어린 나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이미지화해서 터득한 셈이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큰아이는 지금 중학교 브라스밴드부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데,
3학년 선배들 중에 특히 실력이 좋은 선배들이 음악을 가르쳐 줄 때
무척 독특하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음의 세기를 나타내는 포르테, 포르티시모 등의 기호를 외울때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성격을 떠올리면 쉽다,
포리티시모처럼 세게 연주해야 할 땐 엄마가 아이한테 화낼 때를 연상하면 된다고;;^^

일본의 중, 고등학교에는 대부분 다
이 <브라스밴드>부가 있는데
원하는 아이들은 누구나 이 클럽에 가입해서 음악을 배울 수 있다.
악기를 생전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있고
우리 아이처럼 어릴 때 피아노를 아주 잠깐 배우다 그만둔 아이도 있고
올해 1학년 신입생 중엔 발달장애 친구도 한 명 있다.
물론 가족 모두가 음악을 좋아해서, 형제들이 대부분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음악 가족 출신의 아이들도 몇몇 있다.
학교교육에 포함되기 때문에 악기는 학교에 마련된 것을 사용하고
당연히 비용도 무료다.

이 아이들이 모두 중1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악기를
하나씩 맡아 배우기 시작한다.
보통 때는 학교 수업을 마친 뒤, 2시간 정도.
토,일요일에도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 연습을 하기도 한다.
시험기간과 매주 월요일만 쉬고, 나머지는 늘 연습, 연습의 연속이다.
2,3학년 선배들은 여름방학에 열리는 전국 중학생 브라스밴드 콩쿨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제 막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우는 후배들 가르치랴,
콩쿨대회를 위한 지정곡과 자유곡을 연습하랴,
3학년 아이들은 정말 바쁘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3학년이 악기연습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많이 투자하다니, 한국에선 좀 보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런데, 흔히 말하듯 음악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이 맞아서 그런건지
도대체 어려울 것 같은 합주를 근사하게 해 내는 자신감에서 그런건지
브라스밴드부 아이들은 공부도 대부분 잘 하는 것 같다.
매일 이루어지는 악기연습을 통해, 인내심, 체력(악기연주에도 체력이 중요하다!),
집중력, 무엇보다 한참 예민한 시기이다 보니, 감수성이 엄청나게 발달하는 모양이다.
무료에다 학교제도 안에서 악기도 하나 다루게 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아! 하겠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연습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가입했다가 그만두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몇몇 있다.

크기변환_DSCN6675.JPG

공교육제도에서 이렇게 음악을 배우다보니, 학력이나 계층을 막론하고
악기연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꽤 폭넓은 편이다.
학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우리 동네 엄마들 중에도, 중학교 때 밴드부에서
플룻을 연주했어, 튜바를 연주했어,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사진은 일본 청소년들이 학교 밴드부에서 클라리넷 레슨을 받고 있는 장면인데,
프로가 아니라도 취미로 악기 연주를 하는 층이 이렇게 많다보니
티비 프로에도 자주 나온다.

크기변환_DSCN6621.JPG

큰아이가 올해 입학한 중학교 밴드부에서 맡게 된 악기는
'베이스 클라리넷' 이다.
주말이면 가끔 집으로 악기를 가져와 연습하기도 하는데
오래되어 낡은 악기지만 이게 그렇게 좋은가 보다.
선배들은 모두 자신의 악기에 자기가 직접 붙인 이름이 있다고 한다.
샬롯, 엘리자베스.. 내가 듣기엔 좀 오글거리는 이름들인데
딸아이는 이 악기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아직도 고민중이란다.

얼마전,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면담이 있어 학교에 갔더니
교내 여기저기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높고 발랄한 플룻 소리, 조금 쓸쓸한 오보에 소리,
뭔가 외치는 듯한 트럼펫소리, 저음의 콘트라베이스 소리...
촉촉히 내리는 장마비 소리와 어울려 울려퍼지는데
아. 이 아이들. 참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이는 지금 악기만 배우고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았다.
도시락까지 싸 다니며 학교공부 외에 악기연습을 하는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따로 없을만큼 피곤해 한다.
가끔은 연습 땜에 입술이 빨갛게 부르터 있다.
그런데..
저녁밥을 먹으며 늘어놓는 아이의 음악 이야기는 반찬보다 더 풍성하다.
음악을 두고 친구, 선배들과 나눈 수다들,
함께 나눠먹는 도시락,
음악실에 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
빗소리에 섞인 악기 소리,
어렵지만 신기하고 재밌는 악보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반짝이는 아이의 눈과 표정은 참 놀랍기만 하다.

왜 3학년 선배 엄마들이 입시가 있는 해까지, 이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만나 흠뻑 빠져있는 사람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다져진 자신감이 아이 삶의 여러 부분에

골고루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크기변환_DSCN6592.JPG

음악에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순수한 열정이 아닐까.
그런 열정이 있다면 중학교부터 악기연주를 시작하는 게 오히려 시간도 단축되고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음악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큰아이와 같은 1학년인,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친구는 트럼펫을 맡게 되었는데
지금 꽤 잘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부도 개.돼지 발언하는데 에너지낭비하지 말고
예체능교육을 제도교육 안으로 통합하는데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안될까.
아이들 인성교육이나 집단괴롭힘 등의 문제를 없애려고만 하지말고
아이들이 가진 에너지를 공부외에도 다양한 신체,예술활동으로 발산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음 좋겠다. 불필요한데 쓰는 예산을 조금만 줄여도,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데 투자를 할 수 있을텐데.

다가오는 여름방학 콩쿨대회가 이제 곧 열린다.
20명 남짓한 1학년 중에 실력이 좋은 단 2명만, 선배들과 같이
이 대회에 참여하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우리 큰아이가 그 중 1명으로 뽑혔다.
성실함과 끈기, 무엇보다 집중력과 감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겨우 3달 배우고 무슨 대회를 나가나.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걸 보며 깨닫게 된 게 있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글쓰기든, 수학이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잘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어쩌면 우리는 이 중요한 걸 무시하고
엉뚱한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콩쿨을 위해 아이가 연습하고 있는 곡은 <반지의 제왕>이다.
어렵지만, 잠들기 전까지 악보를 보고또보고 이어폰으로 실제 연주를 들으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14살 아이를 음악이, 엄마인 나 대신 이렇게 키워주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신경쓸 틈이 없어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
에헤라디야~ 

너무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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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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