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13살인 우리집 두 아이 사이엔

요즘 강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작은 시냇물처럼 좁은 틈이 생기더니

요즘은 허벅지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저벅저벅 건너야 할만큼

깊고 폭이 넓은 강이 흐르고 있다.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둘은

나이 차이, 성별 차이의 벽을 끊임없이 겪어왔다.

또래보다 조숙한 13살 누나와

또래보다 어린 7살 남동생인데다

꼼꼼하고 여성적인 성향이 강한 딸에

덜렁덜렁 전형적인 남성성이 강한 아들이다보니,

관심사와 놀이가 서로 달라 티격태격일 때가 많았다.


그런 둘 사이에서 엄마인 나는

중재를 하기도 하고, 잘못한 쪽을 야단치기도 하고

아예 둘 다 벌을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먹을거리나 장난감으로

타이르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재밌게 지내왔다.

딸은 가끔 귀찮아하면서도 집안에선 자신의 유일한 놀이 상대인

동생을 제법 잘 데리고 놀았다.


그런데 큰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된 작년 즈음부터는

그 좋은 시절도 끝이 나 버렸다.

남자 아이들보다 사춘기를 빨리 겪는 여자 아이들은

5,6학년이면 이미 몸도 마음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일찌감치 어린이 시기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처럼.

부모들도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예전처럼 함부로 대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기 시작하고, 호불호가 분명해지고,

엄마보다 또래 문화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모범생에다 착하고 순둥이로 10여년을 살아왔던 딸도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소심한 반항과 고집을 부리며,

나중엔 웃고 말지만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사춘기 에피소드를 수십편 만들어 왔다.


그러길 벌써 2년째,

나날이 시크해지고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쏟아지는 사춘기 아이의 현실을

남편도 나도 이젠 어느 정도는 포기하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단 하나, 그냥 넘어가기 힘든 게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구박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다.

동생이랑 다정하게 지낼 때는, 먹을 때와 게임할 때뿐

매사에 어린 동생의 유치함과 모자람을 지적하고 비난하기 바쁘다.


어쩌면 사춘기 첫째에게 지친 엄마아빠가

아직 너무나 아이스럽고 온몸에 애교가 철철 넘치는 7살 동생을 향한

막내앓이에 빠져 있다는 걸 눈치채고 질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 남편과 나는 눈만 맞으면, "우리 둘째 너~무 귀엽지?" 하며

아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눈치빠른 첫째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들은 엄마보다 누나를 더 좋아할 만큼 누나바라기였는데

"크면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 하고 물으면,

누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누...나.." 라고 말하곤 했다.

동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은

"너랑 나랑은 안된단 말야!! 넌 그것도 몰라? 꿈도 꾸지 마!!"


하..  이렇게 앙칼진 건 누굴 닮았을꼬.

그냥 좀 다정하게 말해주면 안되니?!

그만큼 누나를 좋아한다는 동생의 순수한 마음인데

그냥 넘어가 주든지, 잘 설명해 주든지 하라며 첫째를 타이르고 나서

시무룩해진 둘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래도 누나가 좋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 하고 대답하며 해맑게 웃는 아들..;;^^


형제는 싸우면서, 티격태격하며 크기 마련이고

나도 3형제로 자라며 나빴던 것보다 좋았던 게 더 많은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얘들아.. 조금만 더 사이좋게 지낼 순 없겠니.

둘째는 누나 물건 좀 망가뜨리지 말고

첫째는 동생한테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줬으면..

부엌에서 밥하다 너네들 티격태격하는 소리 듣고 달려가는 일,

이제는 좀 지겹다..



DSCN5871.JPG

사과밭에 놀러갔던 날.
햇볕이 따뜻한 곳에 앉아 절친에게 선물할 사과를 열심히 닦고 있는 누나 곁에
동생이 슬쩍 다가가 앉았다.
이게 얼마만의 투 샷인가 싶어 엄마는 얼른 셔터를 눌렀다.
아. 가을 오후 사과밭의 다정한 오누이 뒷모습이라니.
그래, 그렇게 앉아서 오랜만에 알콩달콩 좀 지내봐..
하며 아이들 뒤에서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러길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

DSCN5872.JPG

첫째는 귀찮아하며 둘째를 밀어낸다.
헐.. 이런..  밀리는 둘째의 작은 어깨가 처량하다.
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누나 곁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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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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