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이란 김소연 시인의 시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깊은 밤이라는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또, 아놀드 로벨의 동화 <눈물 차>에는 아침에 대한 이런 표현이 있다.
모두들 잠을 자는 바람에 아무도 보지 않는 아침들
잠이 많은 내가 '아침'이란 단어에 이렇게 민감해진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다.
새벽 6시부터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엄마, 나가자."를 외치던 큰아이 때문이기도 했고
임신 때마다 입덧이 너무 심했는데, 그나마 새벽부터 오전까지가 속이 좀 편할 때라
밤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30대 이후에는 얼떨결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더더욱 아침이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는데
일본 초등학교는 등교시간이 8시부터 8시 20분까지 정해져 있는 탓이다.
올해는 작은 아이까지 입학을 해,
두 아이가 학교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7시 40분.
엄마인 나는 최소한 6시 30분부터는 일어나 준비를 해야하고, 일이나 학교 모임 등의
스케줄이 있는 날은 훨씬 더 일찍 일어나 여러가지를 챙겨야 한다.
그래선지 일본 엄마들의 하루는 참 빨리 시작된다.
주택으로 이사온 뒤로는 이웃집들의 빨래가 너무 잘 보이는데
아침 7시 쯤에 내가 빨래를 널려고 2층 베란다에 나가보면
앞집, 옆집할 것 없이 벌써 수많은 빨래가 널려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큰 세탁기 2번은 돌렸음직한 양인데 그럼 저 엄마들은 도대체 몇 시에 아침을 시작한 걸까!
아놀드 로벨의 표현대로, 잠자느라 보지 못한 아침이 주는 기운과 풍경은
날마다 겪으면서도 볼 때마다 참 신비롭고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서둘러 아이들 뒤치닥거리를 하고 빨리빨리만 외치며 흘려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 단 15분이라도, 나만의 아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싶다.
정해진 일만 해내기에도 빠듯한 우리 일상은 어쩜,
'저녁이 있는 삶'보다 더 어려운 게 '아침이 있는 삶'이 아닐까.
이 좋은 아침에, 어느 누구보다 아침의 기운을 많이 받아야하는 아이들이
눈도 안 떠지는 얼굴을 하고 아침밥을 먹는둥마는둥 집을 나서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아, 늘 궁리를 하게 되는데
큰아이의 초등 입학 이후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는
우리 가족의 <아침이 있는 삶>을 위한 몇 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숙제와 다음날 준비물은 바로 챙겨둔 뒤 간식을 먹는다.
2. 잠들기 전에 아침 시간을 보내는 거실과 식탁 위을 미리 정리해 둔다.
3. 저학년은 9시30분, 고학년은 10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4. 아침밥 먹는 시간은 7시 - 7시 30분, 일어나는 시간은 스스로 정해도 좋으니
되도록 7시까지는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다같이 모여 먹는다.
각자 오늘 하루 할일을 이야기나누고 서로의 하루를 응원해 주는데
기분좋게 일어나 스스로 준비를 제시간에 마친 사람에게는
아침식사 후, 달콤한 후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준다.
(초콜릿 몇 조각이나 딸기 등의 달콤한 과일)
새봄, 새학기의 아침.
아이들도 엄마인 나도 계절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동시에 겪으며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요즘의 아침은 낭만적이지도 그리 아름답지도 않다.
밤을 지나 아침에 다시 만나는 아이들이 늘 사랑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고
걱정과 불안과 피로와 짜증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가끔 지겹거나 끔찍할 만큼 두려운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나는 아침을 더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몸이 편찮으신 친정아버지 걱정에 잠을 못이룬 어느날 새벽,
제철인 완두콩을 까서 냄비에 밥을 지으며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해 보았다.
마음이 복잡할 수록 손과 몸을 쓰고, 그렇게 만들어진 한 끼의 밥을
식구들과 나눠먹으며 다시 기운을 내 본다.
매일 아침 7시 40분.
함께 집을 나서는 1학년과 6학년.
이 두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넉넉하고 행복한 아침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