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를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공유'라는 배우가 앞으로 잘 되겠구나 싶었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

가수 비와 더불어 공유는

틈만 나면 몸을 과시하는 이미지로 소비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읽었던 그의 인터뷰에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공유'라는 예명의 작명유래에 대해

본명은 공지철인데

아버지의 성인 '공'과 어미니의 성인 '유' 자를 한 자씩 따서

'공유'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마음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런 사람이니 앞으로 더 잘 되겠구나, 오래 가겠구나..

하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공유'라는 이름은 참 잘 지은 이름인 것 같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너무 특별하지도 않고, 너무 흔하지도 않고,

20대부터 활동해온 그가 40대 즈음이 되어도 유치하지않은, 그런 이름이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자기 존재의 근원인 부모님의 두 성을 나란히 따서 지은

의미까지 담은 이름이니,

공유의 부모님은 얼마나 뿌듯하실까.


아버지를 여의고 나니,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쓰여있던 아버지의 이름, 그 아래 쓰인 우리 3형제의 이름,

문득 생각해보니, 어린시절부터 각종 서류에 부모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은

정말이지 셀 수도 없이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모든 절차가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부르고

그의 자녀들로 불리면서 마치게 된다.

아, 이제 더 이상은 이 사회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이렇게 불리는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은행에서, 구청에서, 각종 공과금명세서에서

그토록 많이 불리며 듣고 눈으로 확인했던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그리고 아버지께서 40년이 훨씬 넘게 불러주셨던

나의 이름도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너무 흔한 이름으로 지었다며 내가 가끔 투정을 부리면,

"그래도 성이 이쁘니까 괜찮다아이가"

하며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남편과 내가 밤을 새가며 심사숙고해서 지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출생신고서부터 사망신고서를 쓰기까지

사람은 부모 두 사람이 지어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다정함까지 더해서 불러준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평생 살아가는 동안

따뜻하게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ternalFile-3.jpg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ykongpocket&logNo=220920442174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에는

'미츠하'라는 이름을 가진 여고생이 나온다.

미츠하는 한자로 '三葉' 라고 쓰는데, 세 개의 잎사귀란 뜻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할머니, 엄마, 여동생과의 이름이 같은 한자 돌림자를 쓰는게 인상적인데

두 개의 잎사귀(엄마), 세 개의 잎사귀(첫째 딸), 네 개의 잎사귀(둘째 딸), 이런 식이다.


모계의 이름이 이렇게 하나의 의미로 일관성을 가지는 것도 귀엽고 인상적인데,

남자 주인공 '타키'가 '미츠하'의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이름은 다시 한번 보는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사고 사망자 명단에 쓰인 잎사귀라는 뜻의 이름의 나열,

一葉, 三葉, 四葉 ...

할머니와 두 어린 손녀 모두의 죽음을 이름으로 확인하며

남자주인공과 관객 모두가 영화 속 사고의 처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살아있을 때,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던 이름일수록

그의 존재가 사라지고 난 뒤 슬픔은 더해진다.


이 영화가 <너의 이름은.>을

그토록 집착할 정도로 외치는 이유에는

이름과 인간의 삶이 그만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내 이름이 불린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이도

진심을 담아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처럼,

나도 오늘 하루, 마음을 담아 다른 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남편의 이름도.

우리 두 아이의 이름도.

내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일부러라도 한번 더 불러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리는 나의 이름도

좀 더 귀기울여 듣고 싶다.


이름은 누군가가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나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가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담아 애써 지어준 것이다.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 나오게 해 준 부모님과 사회와 끈을 가진 셈이다.


그러니, 그 관계의 끈을 소중히 하고

내가 가진 이름으로 또 다른 관계를 소중히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만나왔던 이들,

오늘 또 새롭게 만나게 될 이들,


나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그렇게 불리고 부르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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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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