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 내리는 날, 김치 배달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바다, 하늘이와 우산을 쓰고 김치 배달을 했다.
전라도 시댁에서 여기 제주도까지 맛있는 김치를 보내주셨는데
나누어 먹고 싶은 이웃 몇 분이 생각나서 두 포기씩 봉지에 담아 집을 나선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신이 나서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하면서 배달을 시작했는데
비도 오고 힘이 드니 나중에는 바다가 지쳐서 김치 봉지를 내밀며 “엄마가 들어...” 한다.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들인데 비가 오고 손에는 묵직한 김치가 들려있어서
나도 왠지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배달을 다 하고 와서 김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텃밭에서 배추와 무와 고추와 갓을 키워서, 뽑고 따고 손질해서,
김치를 담구고 포장을 해서 여기까지 보내주신 거구나.
그 긴 시간과 노동과 우리가 잘 먹을 것이라는 기대와 사랑이 이 김치에 버물어져서 온 거구나.
이 가슴 벅차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우리 집에는 가끔 홍시로 익혀서 먹는 대봉이 한 박스, 고구마가 한 박스, 쌀이 한 가마니,
땅콩이 한 가득, 말린 호박이 한 가득, 참기름과 들기름이 몇 병씩 배달되어온다.
멀고 먼 전라도에서.
그래서 그 음식들을 쌓아놓고 매일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먹는다.
큰산과 나는 “우리 참 풍요롭다.”라는 말을 자주 하며 부모님께 감사를 한다.
이렇게 사랑 받는 것을 느끼고 감사를 드린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크게 힘들거나 외롭지가 않나보다.
음식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런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다.
사랑이 넘쳐흐르는 곳이 한 군데 있으면 그 주변은 메마르지 않고
사랑과 고마움으로 늘 촉촉하게 젖어있다.
부모님이 흘러 보내주신 사랑을 나도 잘 흘러 보내고 싶다.
나의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큰 세상에.
김치가 참, 달다.
+ 비 오는 날, 로즈마리 목욕! 사랑이 코 끝과 온 몸에 머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