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칠월 칠석은 시어머님의 기일이다.
올해는 8월 19일이 되겠다.
구미에 있는 형님과 대전에 사는 동서, 군포에 사는 나까지 세 며느리가
강릉에 모여 어머님 제사상을 차릴 것이다.
아이들 개학 일주일을 남겨두고 다시 강릉을 다녀오려니 개학 준비며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서 무척 바빴다. 집에서 키우는 세마리 개들이며
열 여덟마리의 병아리들이 한창 자라고 있는 닭장이며 신경쓸 곳이 많아
사나흘 집을 비울 일이 고민이긴 하지만 이번 강릉행은 사실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내가 담근 배추김치를 시댁식구들에게 선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한지 13년이나 되는 주부가 배추김치 담궈서 시댁 가져가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하겠지만 내겐 특별한 일이다.
제일 늦게 시집와서 제일 오래도록 살림이 서툴렀던 며느리로서 이젠
시댁 어른들 앞에 당당하게 내가 담근 김치를 꺼내 놓을 수 있을만큼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른셋에 시집을 왔더니 나와 동갑인 형님은 이미 결혼 8년차의 베테랑
주부였다. 시댁 식구들을 모두 초대한 신혼 집들이때 형님은 통으로 담근
얼갈이 김치를 가져오셨는데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김치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내공이란 그 시절 내겐 상상할 수
없는 경지였다.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시집은 먼저 와서 두 딸을 낳고 기르던 동서로 말하자면
김장 40포기쯤은 혼자서 너끈히 담그는 살림왕이었다.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오래도록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
시댁에 가면 형님과 동서 눈치만 보며 두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다 오는
그런 며느리였다.
결혼 이듬해에 첫 아이를 낳고, 4년 후에 둘째를, 또 3년 후에 셋째를 낳아
기르는 동안 늘 큰 살림은 형님과 동서 몫이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두 사람이
다 맡아 하고 어린애를 키우는 내겐 쉬운 일만 시키곤 했다.
솜씨도 서툴고 일머리도 없던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그런 배려를 받는 동안 아이들이 자랐고 마침내 막내도 젖을 떼게 되어
이젠 좀 여유있게 살림을 할 수 있겠다 싶을때 덜컥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가 담근 김치 한번 제대로 맛 보여드리지 못하고 어머님이 가신 것이다.
"어머님... 저 보시기가 답답하시죠.
손도 느리고, 일도 잘 못하고...
저는 언제쯤 형님이나 동서처럼 척척 잘하게 될까요.." 했을때
"시간이 지나면 다 되겠지. 한번에 되나. "
그냥 그렇게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더디고 서툴어도 아무말 안하시고 기다려주신 분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형님과 동서는 제사 당일날 아침에 온다.
우리 가족은 전날밤에 내려간다. 두 사람은 직장때문에 제사 다음날
바로 올라간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하루 더 있다가 오기로 했다.
세 며느리중 유일하게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내가 조금 더 일찍갔다가
조금 더 늦게 오면 된다. 마침 아이들 개학도 그 다음주에 있으니 여러모로
잘 된 일이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전을 형님이 모두 만들어 오신단다.
동서는 아이들과 고속버스편으로 오기 때문에 따로 음식준비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배추김치를 담궈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가져다드린 열무김치는
진작에 쉬었을 것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후 바로 바로 만든 반찬을 먹을 수 없게 된 아버님은
늘 시어터진 묵은지만 드시고 있다. 어머님 계실때 신김치는 입에도 잘
대지 않으시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도 눈썰미가 있어서
스마트폰에 떠 있는 레시피를 보고서도 제법 그럴듯하게 흉내낼 수 있게 되었다.
배추 두 포기를 씻어 절이는 동안 텃밭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와 양파를 갈고
새우젓에 액젓, 생강과 마늘,그리고 매실액을 넣어 버무렸다.
찹쌀풀을 쑤어서 고추가루를 먼저 풀어 놓은 후 역시 텃밭에서 뜯어온 부추를
송송 썰어 한데 섞었다.
두 딸들은 내 곁에 붙어 앉아 같이 만들자고, 먼저 먹어보고 싶다고 성화였다.
간이 맛는지 보라고 갓 버무린 김치를 입에 넣어주니 맵다고 물을 들이키면서도
맛있다며 또 달라고, 한번 더 달라고 야단이다.
어린 딸들이 맛있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루 익혀 냉장고에 넣었다가 마침 이웃집 엄마가 놀러왔길래 맛 좀 봐 달라며
한 접시 꺼내 놓았더니
"어머, 언니.. 김치 너무 맛있다. 나, 밥 한공기만 줘요. 김치랑 먹고 가게.." 한다.
살림하는 여자들은 그렇다. 맛있는 김치만 있어도 밥 한그릇 뚝딱 먹게 된다.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김치 정말 잘 담궜네. 배추도 아삭하고..."
내가 농사지은 재료를 넣어 맛난 김치를 만들고, 이 김치를 아버님과
형제들, 시댁 어르신들 드실 밥상에 올릴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서툴고 모자라고 많이 더딘 며느리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만큼 자랐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르리로서 13년간 꾸준히 자라온 내 자신이 스스로
참 대견스럽다.
아직 김장은 혼자 못하지만, 이담엔 포기 김치를 담궈서 가져다 드려야지.
매년 이만큼씩만 자라면 언젠가는 형님처럼, 동서처럼 누구도 믿을 수 있는
그런 살림꾼이 되지않을까..
혹 그만큼 못해도 상관없지. 내 살림 알뜰하게 꾸려 갈 수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지, 그럼, 그럼..
오래도록 걱정을 끼쳐드리던 며느리가 이제 조금 철이 들고 솜씨가 늘어
김치도 담글 줄 알게 되고 부엌일도 제법 하게 되었으니 아마 어머님은
하늘에서 지켜보시며 흐믓해 하실 것이다.
'어머님.. 이젠 저도 잘 하지요?
걱정마세요. 아이들과 아범하고 잘 살께요.
혼자 계신 아버님.. 오래 오래 잘 지켜주세요.'
텃밭에서 호박이랑 부추 거두고, 홍고추랑 피망도 따고 깻잎도 따고
맛있는 배추 김치도 챙겨서 대관령 넘어 간다.
시댁가는 것을 오래 오래 불편하게만 여겼던 며느리가 기대하며 설레이며
강릉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만큼이나 철이 들었다.
13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