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2.jpg

 

둘째와 셋째 아이를 집에서 낳은 까닭에 첫 아이는 두 동생이 태어나는 모습을,

둘째는 막내가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둘째는 여섯살때 본 것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여덟살때 막내의 탄생을 지켜본

첫 아이는 비교적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는지, 탯줄이 엄마와 아이를 어떻게

이어주고 있는지, 심지어 그것이 얼마나 질긴지도 첫 아이는 안다.

그렇게 태어난 어린 아기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도, 얼마나 많은 손길과

보살핌이 있어야 자라는지도 바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켜보며 컸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아주 어린 아기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경험이란 그런것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게 한다. 관심이 가게 한다.

 

친할머니가 4년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을때 첫 아이는 열 한 살이었다.

어른들은 첫 아이가 어려서 할머니 염을 하는 곳에 입장할 수 없다고 하셨으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첫 아이의 마음을 나와 남편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염려를 무릅쓰고 함께 들어가 지켜보았다.

첫 아이는 눈물을 흘려가며 할머니의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는 모든

과정을 지켜 보았다.

그 후에 나는 아이와, 나의 죽음 이후에 일들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죽은 이후에 내가 어떻게 다루어지기를 원하는지, 어떤 장례 절차를 바라는지

나는 스스럼없이 꺼내 놓았고, 아이는 무겁지 않게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것을, 아무런 준비없는 죽음이 가져오는 혼란과

고통을 지켜본 아이는 젊은 엄마가 미리 건네주는 사후의  이야기들을 오히려 마음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모든 모습을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집안에서 다 보며 자라났다. 탄생도, 죽음도 일상에 들어와 있는 일이었다.

늙고 약해지고 자꾸 아픈 어른들을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보살피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보면서 배우면서 자랄 수 있었다.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 대한 연민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런 감정으로 스며들었다.

자기 부모도 언젠가는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의 미래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며 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어른들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 아프고 병들면 병원에 입원하거나

더 약해지면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드물게 방문하지만 일상에서 사라진 존재들을

항상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집안에 사는 형제들조차 어린이집으로, 학교와, 학원으로 뿔뿔히 흩어져서 지내다가

서로를 겪는 시간이 점점 더 적어지는 시대다보니 아이들이 조부모를 돌보는 일은

더 드물어졌다.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미지만

넘쳐나는 일상에서 나보다 약하고, 늙어가고, 힘들어지고, 아픈 존재에 대한

연민을 간직하기는 쉽지 않다. 내 부모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나 역시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기란 더 어렵다.

 

저 사람이 겪는 일이 내 일일수도 있다는 감각을 갖는 것, 이것이 더불어 사는 일의 기본이다.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을때 나보다 약하고 어리고 아픈 존재들에 대해 마음이 열린다.

내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그를 돕는 일이 곧 나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혼자 남으신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우리 집안의

큰 일로 다가온 후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를 뵈러 강릉을 다녀오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지내시는 공간을 정리하고, 한달 정도 드실 음식을 장만하고, 할어버지가

해결하기 어려운 이런 저런 일들을 해드리는 것을 지켜보고 때로는 함께 힘을 보탰다.

늙고 약해진 상태에서 혼자 지내는 분을 보살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지, 아이들은 내내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올1월에 교통사고를 당하신 이후 힘든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도 부모와 같이 병원을 드나들었다.

어른들처럼 밤새워 병간호는 못하지만 말을 건네드리고, 잔심부름을 하고

손이나 발을 만져드리는 것 만으로도 큰 도움과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든 수술과 회복을 거친 시아버님은 이제 우리 동네 재활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하루에 두 번씩 아이들과 내가 요양병원으로 아버님을 뵈러 간다.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게 되신 후 부터 부쩍 기력을 찾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뵈러 갈때마다 아아들은 필요한 것들을 챙기게 되고, 병실에서만 오래 계셔 답답해하는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안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주말엔 한참씩 할아버지 곁에 머물다 오곤 한다.

 

할아버지3.jpg

 

아이들은 늙고 병들고 아픈 부모를 돌보기 위해 온 집안 사람들이 서로 돕고 시간을 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며 함께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있다. 언젠가는 부모가 겪을 일일 수 있다는 것도 조금씩 생각하는 눈치다.

 

칠순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운동을 하시고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 외할아버지를 뵙는 일도,

여러 딸들의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봐주고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외할머니가 계신것도

그리고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친할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다 소중하다.

늙어가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각각의 존재가 다 다르게

기울여주는 더 풍성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의 큰 복이다.

 

아버님을 도와드리는 남자 간병인은 고향이 흑룡강성이다.

아이들은 간병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족에 대해서 질문이 많아졌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어떻게 다른지, 재활요양병원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지금 할아버지의 상태에서 아이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어떤 보살핌이 필요한지 매번 고민한다.

아버님을 한 번씩 뵙고 올때마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다양해진다.

아이들을 키우는 배움은 이처럼 우리가 맞닥뜨린 현장에서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할아버지를 보살펴드리는 시간속에서

가장 소중한 배움을 얻고 있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에겐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아버님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아버님의 존재가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아버님의 모습에서 이다음의 남편과 내 모습을 본다.

그러면 요양원 들리는 게 귀찮아졌다가도 마음을 고치게 된다.

아버님은 아이들 뿐 아니라 이 나이의 나를 또 가르치고 계신다.

생각하면 소중한 일이다.

 

날이 많이 풀렸다.

조금 더 따듯해지면 아버님을 휠체어에 싣고 몇 달만에 바깥공기를

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한다.

아이들은 번갈아 휠체어를 밀어 줄 것이다.

어린 아이들과 늙은 부모님이 같이 있는 모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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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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