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은 기업이
인상 검토 중이던 계획을 철회했다고 한다.
또,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중저가 생리대도 출시 예정이라 하고
제품 혁신과 함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도 담아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생리대 논란이 일어나자 마자,
성남시와 전주시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생리대 무상 지원사업을
벌이기로 했고, 일반 시민들의 후원 의사도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여론과 SNS에 소개된 사연들의 공론화만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문제의 개선은 물론,
사회적 공감까지 폭넓게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이번 사건이 육아에 있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대 논란은 가격 논란 뿐 아니라,
여성의 기본권과 여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건강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된 기업이 가격 인상을 철회한 뒤에도
생리대 구매 부담을 줄이기 위한 소비세 페지 여론이나
복지는 예산이 아닌, 철학과 윤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두드러지고 있어 반갑다.
올봄,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들려주는 학교생활 이야기 중엔
여학생들의 생리에 대한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는다.
달마다 일주일에 이르는 시간을 생리통이나 두통, 나른함,
심리적인 여러 변화를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혼자 오롯이 감당하며
남학생들과 똑같은 학교생활을 해내야 한다.
똑같이 아이를 키운다해도 아들 육아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딸아이의 이야기들을 통해, 여성의 삶에 '생리'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엄마로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10대 초반에 시작해 40여년 동안 매달 경험해야 하는 생리는
불편하고 불쾌하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부끄럽기도 하고 감추어야 할 현상이라 생각하기 쉽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민감한 10대 아이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나도 그렇게 10대와 20대를 보냈다.
그런데 30대 이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다시 드는 생각은
생리가 여성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그 기간을 잘 관리하고 돌볼 수 있다면
여성 자신의 건강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되지 않을까.
생리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겪어야 하는 가임기 여성의 건강관리 문제로
접근한다면 좀 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임기의 시작인 10대 초반의 여아들의
피부와 건강을 배려한 생리대 보급이라든가,
면 생리대에 대한 홍보, 또 일회용 생리대에 쓰이는 소재 표시,
구매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금 폐지,
남자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는 적절한 성교육...
이 모두에 대한 인식과 변화가
지금부터라도 병행, 실천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여러 면에서 크게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의 경험이나 이웃의 사연 한 줄을 SNS에 쓰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건,
이번 생리대 논란을 통해 크게 배운 점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육아와 교육의 무수한 부당함과 어이없음을 겪으면서도
엄마들이 개인적으로 그 힘듦을 감당하고 마는 이유는
나 혼자 떠든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거란 체념이 크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합리함은 너무나 견고해지고 있으니.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지금의 일본은 만0세-15세 아이들의 의료비가 모두 무료다.
태어나자마자 누구나 발급받는 '어린이 의료증'으로
동네 소아과부터 대학병원 진찰, 치료비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다.
심지어 약값도 모두 무료인데, 심각한 질병은 물론 아이 피부가 건조할 경우
의사와 상담해서 보습 로션까지 무료로 처방받는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한 한국인 가정은
지진 때문에 두려워도 어린이 의료비가 무료인 일본을
떠나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일본도 처음부터 어린이 의료에 대해 이런 제도를 만들지는 못했을 거다.
분명히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여기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 결과, 일본의 부모들은 꽤 높은 소득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산과 함께 아이 질병에 관한 한 무료로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본에 거주중인 외국인 가정도 차별없이 똑같은 혜택을 누린다.
예를 들면
지난 겨울, 둘째 아이가 폐렴으로 몇 차례나 크고 작은 병원을 옮겨다니며
엑스레이를 찍고 진찰, 치료를 반복했음에도 우리가 가는 병원마다 받은
영수증의 본인부담란에는 "0원"이 찍혀있었다.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한국에서도 어린이 의료비를 무상으로 해야한다는 글을 읽었다.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지속적인 운동을 펼친다면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울 때는
의료비 혜택을 누리는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난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의 문제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육아와 교육 문제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픈데
세상은 좀 험한 정도가 아니라,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일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의외의 일들로
크게 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우리 두 손엔 거의 24시간 떠나지 않고 세상과 연결된 도구가 있으니.
인디밴드 '폰부스'의 <MAI 2016>이란 노래에
이런 멋진 가사가 있었다.
자 이제 일어나
턱 끝을 당기고
새로운 시대의 노래를 부르자
한심한 시선엔 이렇게 외치자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사랑을
이제부터 우린 어느 곳에서나
최초의 바람과 별빛을 만지고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꿈으로
새로운 시대의 노래를 부르지
올봄, 텃밭에선 여기저기서 식물들이 온힘을 다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손톱보다 작은 싹들 속엔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결실이 숨겨져 있다.
최초의 바람과 별빛을 만지듯
우리도 이제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을까.
일단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자.
그 다음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꿈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육아를!!
**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들의 노력으로 큰 변화를 이뤄낸
현실의 이야기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다큐 공감 <엄마와 클라리넷>.
뉴욕TV&필름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우리 곁의 가까운 아이와 엄마들의 땀과 꿈,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는 않는 선생님을 통해
적지 않은 감동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언젠가 '함께 책읽기 프로젝트'를 했던 때처럼
이 다큐를 보고 속닥속닥 게시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