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엄마'라는 이미지를
먹는 것과 떼어놓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의 순조로운 삶을 위해
뒷바라지 해야할 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날마다 매 끼니를 제때에 차려 먹이는 일이다.
조금 더 손이 빨라지고 익숙해진다는 것 뿐,
엄마된 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난감하고 여전히 어려운 숙제 같다.
잘 해 먹이든, 대충 해 먹이든, 사서 먹이든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마음이야 늘 변함없지만
내가 바빠서 요즘 부쩍 대충 먹였구나.. 싶은 때,
아이에게 뭔가 미안한 일이 있을 때,
학교나 친구관계에서 아이가 주눅들어 있을 때,
아이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그런 날은 평소보다 유난히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먹이고 싶어진다.
어딘가 비어보이는 아이 삶의 허기를
먹는 것으로라도 듬뿍 채워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욕망이랄까.
이건 인간의 엄마라기보다
짐승의 어미로서의 본능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이를 잘 먹이고 싶어하는 나의 집착에 가까운 본능은
어쩜 친정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항상 먹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항상 양손 가득 먹을 것이 든 봉투들이 들려있곤 했다.
우리 3형제가 그 봉투들을 얼른 받아들던 때는
배고프던 오후 4시 쯤이었는데
떡볶이, 튀김, 만두, 도너츠 ...
시장에서 산 갖가지 간식들이 한보따리 든 비닐봉투의
따뜻한 냄새와 감촉은 아직까지 내 코끝과 손끝에 남아있는 것 같다.
나도 엄마가 된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친정엄마께선 일하는 동안, 우리와 떨어져 있던 시간을
먹는 것으로 듬뿍 채우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자식들에게 무척 시크한 편이셨던 엄마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안이 미어지도록 먹어대는 우리들 입에
만두를 하나씩 더 밀어 넣어주시곤 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밥과 국과 나물이 풍성한 저녁을 뚝딱 차려주셨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우리 3형제에게 엄마의 모습은
정말 커다란 존재였다.
그 큰 품 안에만 있으면 늘 배가 불렀다.
일하느라 늘 바쁘셨던 엄마는
아들 둘 사이에 하나밖에 없는 딸인 나에게
그리 섬세한 애정을 주진 못하셨다.
집안일보다는 바깥일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장부같으셨던
엄마가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겐 조금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엄마가
늘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엄마가 나에게 해 주신 음식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시느라
집에 오시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시며
씻어라, 먹어라, 자라.. 몇 마디 안 하셨지만,
그 나머지 말들은 모두 음식을 통해 해 주셨던 것 같다.
음식은 부모가 아이에게 건네는 제2의 언어랄까.
언어로 전해지지 않는 부모의 사랑과 마음이
음식을 통해 아이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과 추억의 이야기를 담은
<소울 푸드>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어머니는 시장통의 우악스러운 고깃집 사람들에게서
좋은 곱창을 받아내는 데는 선수였다.
낯을 많이 가리시는 성격인데도
아이들 먹을 음식을 고르는 일은 예외였다.
어머니가 신문지로 둘둘 말아 장바구니에서 꺼내는 곱창은
막 소의 배에서 나온 것처럼 따뜻했다는 착각까지 든다.
물컹한 곱창 뭉치의 촉감,
그날 밤 서울 변두리 어느 허술한 집의 야식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곱창을 드시지 않는다.
나도 그런 고지방 음식을 멀리할 나이가 되었다.
내가 그날 밤 곱창 굽는 연기 가득하던
거실의 풍경을 떠올리면 어머니는 호호, 웃으신다.
이젠 늙어서 한 줌밖에 안 되는 육체가 갑자기
그 시절 중년으로 돌아가서 커다란 엄마로 보인다.
새끼 입에 소고기는 못 되어도 곱창이라도 미어지게 넣어주며
흐뭇해 하시던 그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이다.
이 글 속의 어머니처럼,
30여년 전의 친정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음식으로 많은 언어들을 들려주고 싶다.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인 우리집 두 아이는
유아기 때 집단생활을 무척 힘들어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이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내가 아무리 동분서주해도
결국 적응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건 아이들 스스로의 몫이었다.
유치원에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있어도 함께 놀 친구가 없다며
외로워하던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달콤한 팥이 듬뿍 든 호빵맨 빵을 만들어 주곤 했다.
초콜릿으로 그린 호빵맨 얼굴을 친구처럼 여기며 뽀뽀를 해 주던
5살 아들의 모습을 보며
많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아가.
언젠간 그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꼭 나타날거야.
이거 먹고 힘내자..
그런 마음을
아이 얼굴 크기만한 빵 속에
꼭꼭 눌러 담았다.
새봄, 새학기.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에게
말보다 더 진한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