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제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겨울 추위가 닥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 모두가 우울해 보인다.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만 떠올려도 모자란 한 해의 끝인데,
탄핵이니 청문회니 소송이니... 온통 이런 분위기에 둘러싸여 살아야하는
우리 삶이 너무 서글프기만 하다.
얼마전, 친정엄마와의 국제전화.
엄마 목소리에는 울분과 슬픔이 듬뿍 묻어있었다.
"세상에... 야야. 내가 오늘 시장에서 장을 보고오는데 짐이 느무 많아서
택시를 탔는데... 장본다꼬 만원짜리를 다 써서 오만원짜리밖에 엄썼거든...
택시비는 6400원밖에 안나왔는데 오만원짜리를 기사한테 내고,
짐을 다 내리고 잔돈받을라꼬 밖에서 서 있는데
세상에... 기사가 문을 탁 닫꼬 쌩-하고 가뿌는거 있제...
아이고... 무슨 이런 일이 있노...
하기는 대통령부터 저 난린데... 사람들이 다 지 멋대로 살라해서 큰일이다."
돌려받지 못한 거스름돈도 그렇지만, 시장다녀오는 노인을 상대로
어쩜 이리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그게 더 분하고 황망스럽다며,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살다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며
마음이 힘드신 모양이었다.
엄마가 다치지 않으신 것만 해도 다행이다며
위로해 드리고 전화를 끊긴 했는데,
오죽하면 국제전화까지 해서 나한테 하소연하실까 싶어
한동안 나도 마음이 참 좋지 않았다.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도 내적인 환경도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못 믿는 일들이 사회에 만연해지면
살기 어려운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의심하고 멀리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긴 호흡으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잘 지켜보며 견뎌내야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참 힘이 빠지고 자주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나이 탓, 호르몬 탓으로만 돌리기엔 이번 우울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

이 와중에.
그래도 웃게 되는 건 다 아이들 때문이다.
학교다녀오면 밖에서 노느라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들이,
너무 춥거나 비가 와 집안에서 노는 일이 많아진 요즘,
동네 친구 하나와 방에서 한참을 도란도란 놀고 있길래
뭐하나 싶어 들여다봤더니,
종이에 피자 한 판을 그리고 오려서 놀고 있었다.
여아들같으면 이걸로 보통 소꼽놀이나 가게놀이를 할텐데
초등2년 남아인 이 둘은 요괴워치 놀이를 하면서 요괴를 만날 때마다
이 피자를 한 조각씩 주면서 피하는 놀이를 한다나..
아직 저학년다운 놀이법이다.
제법 야무지게 만들어서 진지하게 노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만큼은
요즘 신문과 뉴스를 보며 쌓이는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지는 듯 했다.

생협친구들과 함께 가꾸는 겨울 텃밭.
무랑 배추랑 대파, 시금치.. 가 한창 자라고 있다.
겨울 채소들을 돌보며 어른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아들이 보이지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텃밭 저 끝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다.
뭐해? 하고 불렀더니, 도마뱀이랑 안녕!하는 중이란다.
늦가을, 고구마를 수확할 때 아들은 아주 작은 도마뱀 한마리를 발견했더랬다.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
텃밭 흙을 넣은 곤충상자에 넣어 한동안 우리집에서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학교 다녀오자마자 동네에 있는 작은 숲에 데리고 가,
산책(?)도 시키고 귀뚜라미나 작은 지렁이를 잡아 먹이며 정성을 다해 돌보았다.
그런데, 역시 아이의 관심은 2주일을 넘지 못했고
도마뱀은 방치되었다.
엄마와 아빠, 누나까지 합세해 도마뱀이 더 비참해지기 전에
얼른 텃밭으로 보내주라는 잔소리를 아들은 귀가 따갑게 들었다.
텃밭 끝머리에서 혼자 도마뱀이랑 안녕!했다는 말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도마뱀이 텃밭으로 무사히 귀환한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났다고 여겼는데
얼마전에 있었던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이 도마뱀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요즘 아들의 일기가 너무 재밌다며,
"집에 가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하셨다.
그러고보니, 11월 이후로 세상일이 너무 시끄러운 탓에
아이들의 삶을 세세하게 챙겨보지 못한 것 같다.
오랜만에 펼쳐본 아들의 일기장에는
도마뱀과 마지막 인사를 했던 날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 ...
곤충상자에서 나온 도마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암호를 도마뱀한테 보냈다.
도마뱀은 나를 보고 혀를 낼름 했다.
내 암호를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잘 있어. 우리 더 커져서 만나자. 안녕."
도마뱀은 닌자처럼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다음에 텃밭에 가면 또 만나고 싶다.
2주일을 넘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학교 갈 때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도마뱀에게
젤 먼저 인사하고 만져보며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잠깐 뭉클했다.
엄마가 세상살이의 허무와 우울 속에 빠져있어도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고있었나 보다.
앞으로 도마뱀보다 더 자신을 사로잡을 세계에 들어설 때가 얼마 남지않은 것 같아
이런 일기를 쓰는 아이와의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는다.

아이키우기가 숨막힐만큼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멀리서 달려오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노라면,
잘 키워야지, 정말 잘 키우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 어린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에선
짐이 많은 노인에게 거스름돈도 주지않고 줄행랑을 치는 택시기사는 없기를,
사람 노릇을 못하는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더 이상은 없기를,
부디부디 바란다.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좀 더 힘을 내야겠다.
이제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겨울 추위가 닥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 모두가 우울해 보인다.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만 떠올려도 모자란 한 해의 끝인데,
탄핵이니 청문회니 소송이니... 온통 이런 분위기에 둘러싸여 살아야하는
우리 삶이 너무 서글프기만 하다.
얼마전, 친정엄마와의 국제전화.
엄마 목소리에는 울분과 슬픔이 듬뿍 묻어있었다.
"세상에... 야야. 내가 오늘 시장에서 장을 보고오는데 짐이 느무 많아서
택시를 탔는데... 장본다꼬 만원짜리를 다 써서 오만원짜리밖에 엄썼거든...
택시비는 6400원밖에 안나왔는데 오만원짜리를 기사한테 내고,
짐을 다 내리고 잔돈받을라꼬 밖에서 서 있는데
세상에... 기사가 문을 탁 닫꼬 쌩-하고 가뿌는거 있제...
아이고... 무슨 이런 일이 있노...
하기는 대통령부터 저 난린데... 사람들이 다 지 멋대로 살라해서 큰일이다."
돌려받지 못한 거스름돈도 그렇지만, 시장다녀오는 노인을 상대로
어쩜 이리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그게 더 분하고 황망스럽다며,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살다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며
마음이 힘드신 모양이었다.
엄마가 다치지 않으신 것만 해도 다행이다며
위로해 드리고 전화를 끊긴 했는데,
오죽하면 국제전화까지 해서 나한테 하소연하실까 싶어
한동안 나도 마음이 참 좋지 않았다.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도 내적인 환경도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못 믿는 일들이 사회에 만연해지면
살기 어려운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의심하고 멀리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긴 호흡으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잘 지켜보며 견뎌내야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참 힘이 빠지고 자주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나이 탓, 호르몬 탓으로만 돌리기엔 이번 우울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
이 와중에.
그래도 웃게 되는 건 다 아이들 때문이다.
학교다녀오면 밖에서 노느라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들이,
너무 춥거나 비가 와 집안에서 노는 일이 많아진 요즘,
동네 친구 하나와 방에서 한참을 도란도란 놀고 있길래
뭐하나 싶어 들여다봤더니,
종이에 피자 한 판을 그리고 오려서 놀고 있었다.
여아들같으면 이걸로 보통 소꼽놀이나 가게놀이를 할텐데
초등2년 남아인 이 둘은 요괴워치 놀이를 하면서 요괴를 만날 때마다
이 피자를 한 조각씩 주면서 피하는 놀이를 한다나..
아직 저학년다운 놀이법이다.
제법 야무지게 만들어서 진지하게 노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만큼은
요즘 신문과 뉴스를 보며 쌓이는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지는 듯 했다.
생협친구들과 함께 가꾸는 겨울 텃밭.
무랑 배추랑 대파, 시금치.. 가 한창 자라고 있다.
겨울 채소들을 돌보며 어른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아들이 보이지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텃밭 저 끝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다.
뭐해? 하고 불렀더니, 도마뱀이랑 안녕!하는 중이란다.
늦가을, 고구마를 수확할 때 아들은 아주 작은 도마뱀 한마리를 발견했더랬다.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
텃밭 흙을 넣은 곤충상자에 넣어 한동안 우리집에서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학교 다녀오자마자 동네에 있는 작은 숲에 데리고 가,
산책(?)도 시키고 귀뚜라미나 작은 지렁이를 잡아 먹이며 정성을 다해 돌보았다.
그런데, 역시 아이의 관심은 2주일을 넘지 못했고
도마뱀은 방치되었다.
엄마와 아빠, 누나까지 합세해 도마뱀이 더 비참해지기 전에
얼른 텃밭으로 보내주라는 잔소리를 아들은 귀가 따갑게 들었다.
텃밭 끝머리에서 혼자 도마뱀이랑 안녕!했다는 말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도마뱀이 텃밭으로 무사히 귀환한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났다고 여겼는데
얼마전에 있었던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이 도마뱀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요즘 아들의 일기가 너무 재밌다며,
"집에 가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하셨다.
그러고보니, 11월 이후로 세상일이 너무 시끄러운 탓에
아이들의 삶을 세세하게 챙겨보지 못한 것 같다.
오랜만에 펼쳐본 아들의 일기장에는
도마뱀과 마지막 인사를 했던 날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 ...
곤충상자에서 나온 도마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암호를 도마뱀한테 보냈다.
도마뱀은 나를 보고 혀를 낼름 했다.
내 암호를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잘 있어. 우리 더 커져서 만나자. 안녕."
도마뱀은 닌자처럼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다음에 텃밭에 가면 또 만나고 싶다.
2주일을 넘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학교 갈 때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도마뱀에게
젤 먼저 인사하고 만져보며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잠깐 뭉클했다.
엄마가 세상살이의 허무와 우울 속에 빠져있어도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고있었나 보다.
앞으로 도마뱀보다 더 자신을 사로잡을 세계에 들어설 때가 얼마 남지않은 것 같아
이런 일기를 쓰는 아이와의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는다.
아이키우기가 숨막힐만큼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멀리서 달려오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노라면,
잘 키워야지, 정말 잘 키우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 어린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에선
짐이 많은 노인에게 거스름돈도 주지않고 줄행랑을 치는 택시기사는 없기를,
사람 노릇을 못하는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더 이상은 없기를,
부디부디 바란다.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좀 더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