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름이다. 기저귀를 떼지않은 녀석의 엉덩이에는 벌써부터 땀띠가 나기 시작했다. 만 세 살은 되어야 괄약근을 조절하는 기능이 성숙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지만, 여름철 땀띠를 생각하면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기저귀를 던져버렸으면 하는 게 아빠의 마음이다.






a721a3f1295ab5571a7ce05d1a71c0d3. » 중국에서 사온 똥꼬바지. 앞부분도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터져있다. 기저귀 갈기 전, 연습삼아 입혀보면 좋을 것 같다.




집에서 유아용 변기에 앉는 시늉까지 했던 녀석은, 얼마 전 엄마와 1주일동안 외할머니 댁에서 머무르면서 중국산 똥꼬바지를 입고는 베란다에 ‘쉬야’를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조심스럽게 녀석의 배변학습을 결정했다. 그리고 시청각 학습자료 ‘OOOOO’를 떠올렸다. 매달 배달되는 디브이디와 학습지 형식의 교재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면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스펀지 빨아들이듯이 받아들이더라는 김아무개 선배의 경험담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회사 선배들한테 디브이디만이라도 빌려보기로 했다. 양아무개 선배가 식사예절을, 남아무개 선배는 배변학습을 빌려주었다. 김 선배는 그밖의 것을 갖다 주었다.




녀석의 반응은 역시 좋았다. “음식을 먹기 전엔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먹고 나선 잘 먹었습니다” 노래에 맞춰 녀석은 꾸벅 인사도 했다. 엉덩이에 땀띠 날 정도로 녀석은 자리에 앉아서 꼼짝 않고 집중했다.




디브이디가 손상되지 않도록 녀석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는 방식으로 시청 통제를 했기에 아빠가 집에 없는 시간에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퇴근해서 들어오면 녀석은 리모컨을 내 손에 쥐어주며 어서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애니메이션 같은 단순한 볼거리로 만들지 않으려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는, 영상물에 등장하는 고릴라·악어 흉내도 내고, 도토리처럼 굴러가는 모습도 온몸 바쳐 따라 해주었다. 녀석도 따라하며 좋아라 했다.




그러나 아빠 엄마와 함께 있는 주말이 문제였다. 녀석은 일어나자마자 디브이디를 켜달라고 졸랐다. 아빠와 하루 종일 있으니까 실컷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일요일에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빠의 숙면을 방해하고는, 아빠가 정신 못 차리는 틈을 타 1시간 가까이 디브이디를 보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재생이 다 끝나자 정지를 시키자 녀석의 대성통곡이 시작됐다. 아유, 이거 성질 같아서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한동안 녀석을 외면했으나, 녀석의 울음은 끝날 줄 몰랐다. 일단 다른 장난감으로 녀석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했는데, 성윤엄마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디브이디 다시 돌려주자. 없었을 때가 평화로웠던 거 같아. 반복적으로 보려 해서 애 바보 될 것 같아. 계속 짜증만 내고 -_-;”




내가 출근한 뒤에 엄마한테도 계속 떼를 쓴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캐릭터에 부득이하게 노출시켜봤지만 녀석이 이렇게 강한 집착을 보인 적은 없었다. 아, 이것이 정녕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뽀로로보다 더 강력한 매력을 가졌단 말인가.




어쨌든 유명 영상자료를 이용한 배변연습은 실패로 돌아갔다. 기저귀를 너무 쉽게 떼려는 부모의 욕심이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에 땀띠 덜 나게 기저귀나 자주 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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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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