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둥이인줄로만 알려졌던 이인군(11개월)은 최근 백화점 난동 사건을 통해 떼쟁이인것으로 밝혀졌다.
아이니까 다 그런 줄 알았던 떼쓰기
다른 아기들과 비교하니 우리 아기만 고집불통이네
엄마의 게으름으로 두달간의 베이비트리 공백 시간 동안 무럭무럭 자라난 인군.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돌잔치에 올려놓을 사진을 준비하려면 늦어도 한달 전에는 돌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역시나 스튜디오 예약을 미리미리 해둘리 없는 내가 아닌가.
2월 중순이 돌인데 1월이 되어서야 돌사진 촬영이 생각나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집에서도 비교적 가깝고 가격도 괜찮은 곳에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주말 촬영은 2월까지 다 찼단다. 호들갑을 떨어서 일주일 뒤 금요일 예약을 겨우 해놓고 주말에 아이 머리를 깎으러 갔다. 8개월 쯤 됐을 때 동네 미장원에 갔다가 두번 정도 가위질을 하고 비뚫게 잘린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터라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제법 비싼 백화점 내 유아 전용 미용실을 찾아갔다.
머리를 예쁘게 자르면 묻혀있던(!) 외모의 진가가 발휘돼 기저귀 광고 모델이나 유아잡지 표지 모델이 될 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백화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위질 한두번에 드러난 눈부신 외모에 충격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만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이의 숨겨졌던 외모가 아니라 숨겨졌던 성격이었다. 천하의 '귀요미'인줄 알았던 우리 아이가 천하의 '진상'이었던 것이다. 조용한 유아휴게실에서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밥을 먹이기 위해 앉힌 유아 의자에서는 내려가겠다고 울고 불고하며 고개를 싹싹 돌리면서 밥은 거부했다. 밥이 든 숟가락은 아이의 요란한 사래질에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물론 집에서 늘 하던 행동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또래의 다른 아기들은 조용히 밥을 먹거나 우유를 먹고 있으니 너무나 대비가 됐다. 젖을 달라고 사람들 앞에서 내 티셔츠를 가슴까지 내리면서 울고 떼를 쓰느라 속옷을 종류별로 남들에게 과시(!)했음은 물론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잘 생긴 아이를 보면 다른 엄마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까~ 생각하며 갔건만 다른 엄마들은 다들 안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끔 식당에서 떼를 쓰고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보면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저 모양이래” 흉을 보는 1인이었는데 내가 그 애를 잘못키운 몰지각한 부모가 된 거였다. 유아제품 광고 모델에 대한 꿈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최연소 문제아로 출연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근심으로 바뀌었다. 집에서는 아이니까, 라고 당연시하던 모습들이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보니 전혀 당연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순둥이인줄만 알았고 한때 ‘천사 아기’라는 평까지 받았던 아이가 고집불통에 떼쟁이였다니, 상심한 나는 곰곰히 원인을 생각해봤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이유식 한 숟가락 더먹이겠다는 외할머니의 오냐오냐, 양육방식이 문제일 터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많은 식구들과 접촉하면서 지낸다. 할머니는 물론이고 돌보미 아주머니, 그리고 근처에 사는 큰 언니와 형부, 조카들까지 아이를 보러 수시로 집에 들르며 차타고 30분 거리에 사는 사촌 동생과 이모도 자주 집에 온다. 한 육아 책에서 활동성이 강한 남자 아이들은 양육부담을 나눌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읽은 데다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자라야 아이 성격도 원만할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이렇게 많은 어른들에 둘러쌓여 있는 게 아이한테 좋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았다.
많은 식구들한테 왕자님 대접을 받으니 식구들이 많을 수록 아이의 요구사항도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가끔 엄마와 둘이 있으면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식구들이 많으면 이 사람 품에서 저 사람 품으로 옮겨 다니며 여기를 가라, 저기를 가라, 이것 꺼내 달라, 저거 꺼내 달라 손가락질 하며 요구가 부쩍 많아졌다.
전에 베이비트리 송년회 때 참석했던 하정훈 선생님의 이야기 중에 “아이는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고,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규칙을 먼저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규칙을 생후 8개월에는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아이는 벌써 11개월. 8개월에 가르쳐 할 걸 못가르쳤으니 이 모양이 된 게 아닌가.
공공장소에서 아이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몰지각한 부모 1인이 되버린 나와 요즘 아주머니 대신 아이를 봐주는 큰 언니는 충격에 빠져 당장 스파르타식 예절교육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밥은 무조건 자기 밥상에서 먹인다. 운다고 바로 안아주지 않는다. 가급적 빨리 젖을 끊도록 한다.(엄마만 보면 칭얼대면서 젖부터 찾고 밥을 거부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다.)
결과는? 한달 뒤를 기대하시라~(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