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엄마로서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바다가 다섯 살, 하늘이가 세 살이 되니 어느 정도 떨어져서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되고
내 욕구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항상 힘든 것은 두 녀석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면서
나의 감정을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몸이 힘들거나 내 일을 못 하고 있을 때 화가 나고
내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좀 무관심 하게 되고
때로는 아이들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런 감정들을 그대로 아이들 앞에서 드러낼 것인가?
나는 늘 솔직해야한다고 생각해왔고
감정을 숨기거나 속이는 것은 잘 못 된 일이라고 여겼는데
분노와 무관심과 귀찮음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표현했을 때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늘 신경 쓰였다.
내가 마음을 바꾸고 한결 같이 아이들을 사랑하자고 결심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은 아닌 것 같았고
역시나 잘 안 되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답을 최근에 찾았다.
몇 주 전에 표현예술치료 수업에서 얼굴, 페르소나를 주제로
이론을 공부하고 동작과 그림과 소리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는데
가면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때로는 관계를 위해서 가면을 쓸 필요도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다만 이것이 가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알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다양하고 무한한 페르소나를 가져야한다고 말했단다.
와, 대박!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면 하나를 만들었다.
그 가면의 이름은 ‘사랑을 주는 엄마.’
요즘은 적절히 이 가면을 사용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한 상태로 아이들과 방방이를 타다가
아이들이 나를 쳐다볼 때는 가면을 쓰고 웃고
아이들이 날 쳐다보지 않을 때는 피곤해서 무너지는 얼굴을 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엄마 역할의 연극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랑을 주는 엄마’ 가면을 쓰고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쓰다듬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 했던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고 마음이 따라와서 진짜 모습이 되어간다.
가면이 내가 만든 완전한 가짜 얼굴이 아니라 진짜 얼굴도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면을 통해 사랑을 주는 엄마의 모습이 더 드러나고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가면에게서 배우게 된 것이다.
아직 실험 단계라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있다가 벗어 던지며 화를 내기도 하고
가면이라는 히든 카드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안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면을 쓰고 내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큰 자유로움을 느끼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앞으로도 내가 쓸 수 있는 수 많은 가면들 덕분에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훨씬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사랑을 주는 엄마’의 모습이
가면으로 찾아와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가면일까요? 이면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