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내가 둘째 이야기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2011년부터 7년간 생생육아 이야기를 161건이나 썼는데 왜 유현이가 주제인 글이 없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둘째 이야기를 쓰자고.
사실 둘째가 작정하고 덤비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언젠가 “아빠, 아빠는 왜 뽀뇨 아빠야? 왜 유현이 아빠라고 하지 않냐고?”, “아빠,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란 책.. 왜 내 사진은 없어? 내 책은 언제 써줄 거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도망갈 수밖에 없다. ‘어, 그건 말이지. 아빠에겐 뽀뇨누나가 참 특별해. 함께 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아빠가 2년 동안 전업 육아를 했거든’이라고 말한다면 ‘그럼 나도 전업육아 해줘’라고 말할 거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누나보다 덜 사랑을 받았을 거라도 오해할까봐 오늘 유현이에 대한 내 사랑을 밝힌다.
유현이가 4살이 된 이후로 나는 일하며, 혹은 퇴근하며 혹은 시시각각 이 아이가 떠오른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거나 저녁에 모임이 있는 날이라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솔직히 화가 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곧 아이들을 잠 재워야 해서 함께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그런 날이면 귀가 시간에 침울해진다.
그렇거나 말거나 ‘삑삑삑’ 현관 도어키를 누르면 유현이가 “아빠 왔다”하고 제일 먼저 뛰어 나온다. 내가 출근할 때 현관으로 튀어나와 입맞춤하는 그 기분으로 달려 나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퇴근 후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함께 블록놀이도 하고 과일도 깎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보면 이제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우린 침실로 향한다. ‘엄모~ 소’놀이를 하기 위해서인데 처음엔 내 등에 아이 둘을 태웠는데 언젠가 ‘호랑이’놀이로 바뀌었다. 내가 ‘호랑이’가 되고 아이 둘은 나와 싸우는 ‘주인공’이 된다. 유현이는 레고 블럭 통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뽀로로 낚시대와 골프채 장난감을 양손에 쥔 검투사가 된다.
10분여를 떠들다가 엄마가 “이제 시끄러워 안 되겠네. 이제 불 끄고 자자”라고 하면 우린 빈방에 이불만 펴져있는 안방에서 잠이 든다. 잠들기 전에 내가 유현이에게 던지는 멘트가 있다. “유현아, 아빠 옆에 잘래?”, 내가 1년 넘게 유현이에게 제안을 했건만 유현이는 딱 한번 응하곤 거의가 엄마 곁에서 잠들었다. 아직도 참 아쉬운 점이지만 언젠가 내 곁으로 오겠지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내가 유현이를 참 좋아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우선은 유현이에 대한 모든 소식을 아내에게서 듣는다는 것. 아내가 바쁘다보면 놓치는 일도 많은데 아내 또한 유현이의 어린이집 일과를 어린이집 선생님이 매일 적어주는 형식적인 메모장을 통해 접한다. 아이의 일상과 정서를 잘 살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시간과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유현이 엄지에 얼마 전에 무좀균이 생겨서 병원치료를 받았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다. 아이 손을 매일 만져보았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병원 몇 번 가면 나을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쓰였다.
요즘은 유현이를 자주 안아준다. 유현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뽀뽀하고 출근하면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는지. 유현이랑 퇴근하고 안방에서 ‘엄모 소’나 ‘호랑이’놀이를 할 때면 물고 빨 정도로 좋다. 아직 5살 어린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유현이랑 찍었던 사진들을 떠올려 본다. 전주에서 태어난 유현이는 뽀뇨와 내게 첫 모습을 보이며 윙크를 했다. 한 눈이 감겨있었는데 내게는 윙크로 보였다. 크면서는 어찌나 적극적으로 내게 돌진을 하는지 ‘남자아이가 다르구나’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에 올라가 굴리고 뛰고 하다 보니 에너지가 소모되는 날이 많았지만 그 수십 배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유현이다.
유현이는 삐지기도 잘 한다. 그 점에서 내 어릴적 모습을 똑 닮았다. 하지만 금방 풀린다. 그건 아마도 “나 화났어”라고 입을 내밀며 표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뽀뇨와 내가 3살에 한라산도 오르고 올레 길도 걷고, 성산일출봉에도 갔는데 유현이도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여러 곳을 다녔다. 성산일출봉은 거의 매년 올랐고 매년 처가 전주와 고향 창원을 함께 오갔다. 유현이와 함께할 수많은 날들.. 함께 한 수많은 날들. 모두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유현아, 오늘 아빠 옆에서 자면 안되겠니?
» 흥이 많은 유현이를 단독샷으로 잡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