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거북이와 노는 작은 아이.
아이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날마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우당탕탕 현관을 나서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고 다시 돌아와 잠드는 곳.
네모난 상자 안을 칸칸이 나눠 놓은 이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그들 삶의 역사를 쓰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무심하게 내버려 두거나 재산 가치로만 취급하기엔
아이들의 일상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삶의 무대가 아닐까.
영어로 집은 Home과 House라는 두 단어가 있다는데
두 가지 모두 집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 속에는 전혀 다른 개념을 품고 있다 한다.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정서적인 개념으로서의 Home,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적 의미인 House로 구분된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의 집은 이 Home과 House,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아이들과 나날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집에 대해 우리는
기능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고 있을까.
작가 오소희 씨가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글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매우 기능적으로만 존재했다. ...
특별히 불화할 것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특별히 기뻐할 일도 벌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
공간과 나 사이에는 별다른 사연이 생겨나지 않았다.
-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 오소희 / 북하우스
'공간과 사람 사이에 별다른 사연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오랜 궁금증 하나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 궁금증이란,
예전에 비해 한국 어린이책이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다양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왜 좀 더 새롭고 재밌는 책이 이렇게 나오기 힘든 걸까' 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 아이들의 일상에서 다양하고 신선한 이야기가 태어나기 어려운 건,
아무래도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작가들 역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고
일상의 무대가 되는 주거 공간이 편리하고 세련되게 변했지만,
그만큼 우리는 이웃과 자연과는 단절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아이들 역시 그 속에서 삶을 시작하고 이어간다.
가끔 한국을 다니러 갈 때마다 나의 친정집을 비롯한
친척, 친구네 집을 방문하다보면 거의 99%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편리하고 기능적일 뿐 아니라 주택에 비해 냉난방 효율이 뛰어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집과 사람 사이의 "썸"이 일어나긴 참 힘들겠구나.. 싶었다.
오소희 작가가 말한 공간과 나 사이의 "별다른 사연"이
바로 이 "썸"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일본은 주택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일본 인테리어 잡지의 대부분은 이런 주택 거주자들의
삶과 일상, 육아 그리고 그 속의 숨은 감성을 대변하고 있다.
주택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말하는 전원주택처럼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작고 오래되고 낡은 경우가 많지만
그런 집에서 일본인들은 휴일이면 멍하니 마당을 내다보거나
집 안과 밖을 쓸고 닦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살이 조금씩 방향과 빛깔을 바꾸어가는 걸 지켜본다.
그렇게 집을 통해 일상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기능성보다는 집의 정서적인 의미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를 비롯해
작은 살림과 비움의 일상, 정리정돈 류의 책들,
'무0양품'과 같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의류나 생활 소품 브랜드 역시
집이라는 공간과 사람들의 삶 사이에 일어난 작은 "썸" 들과 연관이 있다.
저성장 시대를 산 지 이미 오래된 이들은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삶에 집중시켜
그 안에서 진짜 자기를 돌보며 평정심을 찾는 것이
이 혼란스런 세상을 살아내는 현실적인 방법이라 여긴 게 아닐까.
학교에 다녀온 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장난감에다 이렇게 사마귀를 태워서 데리고 논다.
작은 마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주택가 동네라, 대도시 근교임에도
이렇게 작은 생물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사마귀 크기가 정말 크다며 손으로 한뼘 크기를 재며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느집에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얘들아! 암컷이 이제 알 낳을 때 됐으니까 너무 괴롭히지 말고 놔줘!!"
그러고 보니, 정말 암컷 배가 붉으스름하고 불룩하다.
식물이든 곤충이든 늘 가까이서 만날 수 있고,
해와 달이 뜨고지고, 귀뚜라미가 울고, 눈, 비, 바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집은
매일, 매순간 소소한 발견과 변화와 에피소드들이 일어난다.
그런 다양한 자극과 썸들 속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이 자란다.
일본이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는
이런 집이라는 공간과 사람들의 일상이 밑바탕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삶과 일상에서 시작되고 있다.
오랜 스테디셀러, 그림책 작가 하야시 아키코의 <순이와 어린 동생>이나
<우리 친구하자> <은지와 푹신이> 등을 보면 모두 아이들이 소소한 사건을
경험하는 배경으로 '집'이 중요한 무대로 등장하는데
얼마전, 한 그림책 전문 잡지에 이 그림책들 속의 실제 주인공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어린 동생에게 신발을 신겨주던 언니와 여동생은 각각, 74년생과 79년생으로
지금은 두 사람 모두 40대 전후의 나이가 되었다.
작가 하야시 아키코의 조카인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는 집과 동네에서 겪은 놀이와 소소한 이야기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까지 읽히는 그림책이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집'이 걸작 그림책이 태어나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시작이
'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한국사회에서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집값과
획일적인 주거 문화 탓에 '집'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기가 어렵다.
하지만 기능과 효율, 부동산적인 가치 외에도
정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요소들에 조금만 더 마음을 쓴다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직도 서울 한가운데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런 탄성을 지를 수 있는 동네가 좀 더 많아지길.
그런 동네와 골목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진짜 나다운 삶을
천천히 모색하며 집과 썸을 타는 일들을 많이 겪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의 유명한 한 그림책 작가는
자신의 창작의 원천은 어릴 적 살았던 집에 있다고 했다.
조부모 세대부터 살아왔던 그 집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우리집 땅밑에는 보물이 가득 묻혀있다."고 했다한다.
어른이 되서야 그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어린시절 내내, 틈만 나면 땅 속에 어떤 보물들이 있을까
온갖 상상을 하는게 그렇게 즐거웠단다.
공간과 아이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런 '썸'.
우리 아이들은 지금,
집과 어떤 썸을 타며 자라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