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기다리던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당시 우리가 살던 시 우체국에서 <꿈의 편지>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정해진 기간 내에 편지를 접수하면,
10년 뒤에 발송인에게 다시 그 편지가 배달된다는 행사였다.
그러니까 그때 접수된 편지들을, 지난 10년 동안 우체국이 보관해 왔던 것이다.
10년 사이에 이사 등으로 주소가 바뀌는 경우에도,
우체국 행사담당부서로 주소변경 연락을 해두면
안전하게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10년 전 우리 부부는 도쿄에서 지금 살고 있는 시로 막 이사를 마친 직후였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생활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 편지 행사에 참가신청을 냈다.
남편과 내가 지정된 편지 앞면과 뒷면에 <10년 후의 우리 가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어 쓰고, 우표를 붙여 설레이는 마음으로 우체국에 가서 접수를 마쳤다.
2004년, 그렇게 보냈던 편지가 꼭 10년이 지나고 2014년이 된 올해.
며칠 전, 우리집 우체함으로 드디어 배달이 된 것이다!!
10년 전에 우리가 직접 손글씨로 써서 보냈던 편지를 열어보려 하니 무척 떨렸다.
그때 썼던 내용이 막연하지만 대충 짐작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 10년이란 시간이
담겨 있다 생각하니 설레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한번 읽고나면 이런 두근대는 기분이 금새 사라질 것 같아 아쉽기도 해서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당신이 먼저 열어봐." 하며 미루다가
결국 함께 열어보게 되었는데..
남편이 젤 첫머리에 썼던 글 -
"여러분, 10년 전 일. 기억하고 있습니까?" 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큭큭 웃음이 났다.
당시 18개월이던 딸아이가 간단한 그림으로라도 이 편지 한 쪽을 꾸며주길 바랬는데
잘 안 자던 아이가 그날따라 낮잠을 길게 자서 결국 참여시키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
첫 이사와 새로운 동네에서 시작한 생활에 대한 기대,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에 대한 설렘과 걱정 등등
결혼생활도 육아도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서른을 조금 넘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깨알같이 쓰여있었다.
10년 후의 나와 우리 가족을 향해 쓰는 글이다보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편지 속의 많은 물음표가 하나씩 끝이 날 때마다
'10년 전의 나'에게 '현재의 나'는 일문일답처럼 다정하게 답해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이 편지가 도착할 때 쯤, 우리 아기는 어떤 꿈을 꾸는 아이가 되어 있을까요?
- 동물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12살 소녀가 되었답니다.
우리 가족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 둘째가 태어나, 엄마아빠는 지난 6년간 지옥훈련을 하듯 보냈답니다;;^^
몇 년 안에 일본어능력시험과 제과제빵 공부를 하고 싶은데 잘 할 수 있을까요?
- 편지 썼던 그 해에 일본어능력시험은 1급을 땄고,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제과제빵과정도 무사히 수료를 했답니다.
1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 많은 일들이 있었죠.. 슬프게도 10년 전보다 더 나빠진 듯..
3년 전의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올해 있었던 세월호 사고가 가장 안타까워요..
많은 것들이 더 편리해진 지금이지만 10년 전,
2004년이 문득 그립습니다.
10년 후의 우리 가족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 아파트를 떠나 주택에 사는 꿈을 이룬 지, 이제 막 1년반이 지났어요.
힘들고 많이 두려웠지만, 이제 많이 안정되어 행복하고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이벤트 주제가 <꿈의 편지>라서 그랬는지,
내가 쓴 내용에는 유난히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서른 남짓까지 살면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꿈과 희망"같다는 이야기,
18개월이었던 딸아이에게 바라는 것도
어린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인 나는 욕심이 많았던 미혼 때와는 달리, 작고 소박한 꿈들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미래보다, 매일 아침 기저귀와 물통과 간식을 부지런히 챙겨
아이 손잡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을 즐기며 충실하게 보내고 싶다며,
그래서 이 편지를 받아볼 "10년 뒤"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편지는 끝이 났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이런 걸까.
10년 전 세 식구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때 우리가 이미 살았던 순간임에도, 마치 타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그 사람이 아직 살아남아 내가 되었는데
나의 어떤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고
또 어떤 부분은 전혀 새롭게 바뀌었다는 게 신기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느껴왔던 사실이지만,
이 편지를 계기로 "10년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절대 불가능할 거라며 고개를 저었던 꿈이나 희망을 향해
10년만 꾸준히 성실하게 하루하루 나아간다면, 꿈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것. 혹,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해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것들 모두가 또 다시 내딛게 될 앞으로의 10년을 사는
우리 가족만의 생생한 자산이 되어줄 거란 걸 말이다.
2014년. 이제는 두 아이 모두 글을 쓸 수 있으니 각자 쓴
네 식구의 편지를 작은 병이나 상자에 담아, 마당 한 켠에 묻어볼까 한다.
그래서 10년 뒤인 2024년에 다시 네 식구가 함께 열어볼 꿈을 꾸고 싶다.
2024년 ... 첫째가 22살, 둘째가 16살,
그리고 우리 부부는 50대가 된다.
아직 알 수 없는 미래가 있다는 것,
해마다 새로운 365일을 선물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인다.
네 식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편지를 꺼내볼 날을 기대하며.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10년을,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살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