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N5983.JPG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은
엄마들의 모임이 잦다.
아이들 학교 엄마들 모임, 동네 엄마들 모임, 생협 엄마들 모임 등등
올해는 그 어떤 조직에서도 임원을 맡지 않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엄마된 지 벌써 13년째 맞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잡히는 약속들로 달력이 빼곡하다.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생협 엄마들과의 크리스마스 모임은
바쁜 시간을 내서 달려간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된 자리였다.
다 만들어진 음식이나 차를 돈을 지불하고 먹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계획하고 준비해, 스스로 만들어 먹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서도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 함께 만든 음식으로
한 식탁에 모인 엄마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이런 구성원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DSCN5971.JPG

올해 마지막 모임은 각자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식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살림 경력이 오래된 선배 엄마들이 테이블보나 식기, 소품들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바쁜 12월은 엄마들에게 부담스러운 달일수도 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소품들을 볼 때면
어쩐지 설레고 들뜨게 된다.
해마다 보고 겪는 일인데도 또 그렇게 된다.

DSCN5972.JPG

식탁 차림이 집집마다 다른 분위기여서 재밌었고
아이들이 크는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쌓인
선배 엄마들의 살림 지혜와 정보들에
눈이 반짝, 귀가 번쩍^^

쉽고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렇게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다니.
잡지나 비싼 요리강좌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참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날의 회비는 겨우 3천원 정도였는데, 식재료는 생협에서 보조받고
준비물은 회원 각자가 나눠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함께 조금씩 보태는 지혜에는 돈보다 마음이 더 필요한 법이다.

DSCN5977.JPG
DSCN5979.JPG

이날의 메뉴는 중국식 샐러드, 그리고 미트로프.

함께 만들면 이렇게 비일상적인 요리들도 별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날, 내가 맡은 요리는 한국 불고기.

우리에겐 흔한 음식이지만, 일본 엄마들에겐 늘 감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우리에게 스시나 돈카츠가 그렇듯이.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런 날, 케잌이 빠질 수 없다.
일본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맛나고 이쁜 디저트를 실컷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생협 케잌은 시판되는 것보다 맛이 덜할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좋은 재료로 첨가물을 되도록 적게 넣고 만든 일본 생협의 케잌은 정말 신선하다.
먹고 나서도 느끼한 뒷맛이 없고, 위에 부담도 적다.

이런 음식들이 좀 더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협 엄마들은 내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DSCN6011.JPG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래동안 함께 활동했던 친구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
작은 상자 하나 덕분에 하루종일 설레고 뿌듯했던 하루.

아, 아이들이 선물 받을 때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던 하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 살면서는 단 한번의 크리스마스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챙겨야하는 아이들과 식구들이 있었고, 그들과 관계지어진 크고작은 인연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전후를 보내느라 해마다 이맘때는 항상 시끌법쩍하게 보내게 된다.


너무 정신없고 바쁜 이맘때가 부담스러운 적도 많았는데

이제 막내까지 어느 정도 크고,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엄마로 지낸 13년 동안의 크리스마스가 수많은 추억들로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는 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맺은 수많은 인연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건,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않은 선물 상자를 나에게 안겨준 친구처럼,

평소에 늘 고맙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마음을 나누고 전하는 일.

이번 크리스마스가 가기 전에 꼭 해 보고 싶다.

외롭지 않은 엄마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428905/d3b/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4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세 번의 졸업식과 네 번의 입학식 imagefile [6] 윤영희 2019-02-26 77772
24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사라져가는 동네 가게들에 대한 아쉬움 imagefile [3] 윤영희 2019-01-24 77069
24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에서 며느리살이,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다 imagefile [7] 윤영희 2013-03-18 67618
24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2% 부족한 남편의 육아 imagefile [5] 윤영희 2013-06-17 36977
23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위한 7가지제안(1) imagefile [1] 윤영희 2013-07-18 32403
23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결혼 13년차 4가지 결심 인생 리셋 imagefile [5] 윤영희 2013-03-31 32012
23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유치원과 학교 바자회 구경 imagefile [4] 윤영희 2013-11-04 31775
23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연말모임에 강추! 초간단 <스키야키>요리법 imagefile [3] 윤영희 2012-12-14 31594
23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로망을 현실로-아이와 시골에서 한달 살기 imagefile [2] 윤영희 2013-10-10 30806
23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아파트의 공동부엌 이야기 imagefile [10] 윤영희 2012-11-03 30121
23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노벨상 수상과 아이들의 과학교육 imagefile [8] 윤영희 2012-11-08 29572
23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딸 예찬론 (부제 : 딸없인 못살아) imagefile [4] 윤영희 2013-06-10 29567
23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북카페와 마당과 동물이 있는 어린이서점을 아시나요? imagefile [12] 윤영희 2012-11-30 29393
23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7가지 제안(2) imagefile [1] 윤영희 2013-07-20 28606
22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너무 가까워서 더 어려운, 동네엄마 네트워크 imagefile [7] 윤영희 2013-11-13 28196
22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학교 단체 여행, 1박2일 위해 1달 준비 imagefile [11] 윤영희 2014-05-23 28134
22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화성에서 온 아들, 금성에서 온 딸 imagefile [1] 윤영희 2013-07-21 28066
22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2013 일본 엄마들의 일과 육아 imagefile [5] 윤영희 2013-07-08 27976
22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이중언어환경에 대한 환상 - 조기영어교육 반대! imagefile [16] 윤영희 2012-11-22 27896
22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산부인과 체험기 imagefile [10] 윤영희 2012-10-30 27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