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jpg

 

그렇다. 나는 두 딸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2016년도 학부모회 회장이다.

지난해 12월, 학부모 총회에서 선출되었다.

물론 후보는 나 혼자뿐이어서 투표는 안 하고 당선을 선언하는 것으로

뽑힌 회장이지만 사전에 후보 등록하고, 출마의 변을 내고, 총회에서

학부모들이 모인 가운에 회장으로 임명되는 등, 필요한 절차는 다 밟아서

된 회장이다.

 

전임 회장단으로부터 출마를 권유받았을때만해도 내가 무슨 회장을...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혁신학교여서 공모제를 통해

오신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과 더불어 의욕넘치게 학교 운영을 하고

계셨기에 아이들이 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한 번쯤은 어려운 역할을

맡아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총회에서 당선이 되고 나서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학부모회장을 뽑는

학교가 드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전교 학생회장이 된 아이의 엄마가 자동적으로 학부모회장이

되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설마 그런 식으로 학부모회장을

뽑을리가.. 싶었는데 근처의 다른 학교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그렇구나.. 우리 학교가 그래도 민주적 절차를 거쳐 회장을 뽑은거구나.

이런 학교에서 학부모회장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기억에 남아있는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은

모두 돈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의 부모였다.

운동회날이 되면  운동장 한 구석에 큰 테이블이 펼쳐지고 학부모회 회원 엄마들이

선생님들을 대접하는 큰 상을 차리곤 했다. 과일, 통닭이며 맥주들이 놓여진 한 가운데에서

그 시절엔 쉽게 구경할 수 없었던 바나나가 둥둥 떠 있던 화채를 듬뿍 듬뿍 퍼 담던

친구 엄마 얼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병원장 아들, 쌀 집 아들, 기업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딸.. 그런 아이들의 부모가

학부모회 간부들이었다.

학교 행사가 있으면 고급스런 옷을 차려입고 단상에 앉아있다가 내빈 인사를 하고

학교일에 큰 돈을 척척 내 놓던 사람들이었다.

내 기억의 학부모회란 그런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학부모회 회장이 되다니... 세월이 참 많이 변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작은 시골학교였다가 혁신학교로 바뀐 곳이다.

한 학년에 두반 이나 세 반 정도가 고작인 작은 학교다.

혁신학교는 학부모들의 참여와 도움이 학교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많은 역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학부모회가 그 중심에 있다.

반대표들로 구성된 대의원들과 정기 모임을 통해 학교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 반과 학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의논한다.

학부모회 소속 동아리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과 연수에도 참여하고, 다른 학교 학부모와 교류하며

정보를 나누고, 학부모 교육 내용을 결정해서 진행한다.

시나 도에서 지원하는 각종 기금 공모에 참여해서 지원 예산을 따 오는

것도 큰 업무다.

입학전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주관하고 학교의 큰 행사가 있을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맡아 참여한다. 한마디로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를 연결하며

학교를 함께 운영해가는 핵심 주체인 것이다.

다른 학교 학부모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 학교는 이렇다.

 

둔대학부모회.jpg  

 

오늘 오전 회장과 부회장, 총무로 구성된 전임 회장단과 만나 업무 인수인계를 했는데

탁자 가득 쌓여있는 수북한 각종 서류들과 자료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새삼 1년간 내가 해 내야할 역할의 막중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빽빽하게 잡혀 있는 각종 회의와 모임, 행사 일정표를 보니

아아아. 올 1년은 정말 바쁘겠구나... 싶어 한숨도 살짝 나왔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에 들러리가 되는 것이 아닌, 실제 운영의 많은

부분에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릴때 처럼 기업체의 사장 부인이나 부잣집 사모님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마을에서 같이 살며 같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이웃들이 학부모회 사람들이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화장할 틈도 없이 바쁘게 달려와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 살림을 하다가 학교 행사가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나와서 많은 일들을 해내는 억척스럽고 든든한 친구들이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같이 키우는 아이들, 교사와 부모가

같이 이끌어가는 학교를 위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더 많이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1년 동안 열심히 더 좋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더 즐겁게 더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는 학교를 위해 애써볼 생각이다.

서류작성이며 관리에 무지하게 서툰 마누라를 남편도 열심히 돕겠다니

큰 힘이 된다.

 

살림하고, 글 쓰고, 농사도 짓고, 올 해는 책도 한 권 내기로 했는데

거기에 학부모회 일도 만만치 않을 듯 하다.

아... 대박이구나.

중요한 역할을 기대받는 것도 큰 복이니,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뛰는거다.

 

그나저나 여보..

난 회장 마누라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당신은 회장 남편이 되었구만...ㅋㅋ

축하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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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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