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막내가 요즘 글쓰기 연습에 한창이다.
조기교육을 비판하는 엄마인 내가 겨우 다섯 살 된 아이에게 글 쓰는 훈련을 시킬 리 없다.
막내의 노력은 순전히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언니 때문이다.
입학을 앞둔 둘째는 요즘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본인이 원해서다.
오빠나 엄마에게 책을 한 권 주고 그 책에 나오는 단어들을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받아쓰기 공책에다 열심히 단어를 적는다.
틀린 단어는 다시 책을 들여다보며 깨우친다.
이런 일들이 둘째에겐 퍽 즐거운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언니가 하는 일은 저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막내는
요즘 입학을 앞둔 언니가 부러워 배가 아프다.
책가방도 부럽고 어른들에게 받는 입학 선물도 부럽고 무엇보다
3월부터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언니가 발레를 하면 저도 발레를 하고, 언니가 그림을 그리면 저도 같이
그리고, 언니가 책을 읽으면 저도 책을 펼치던 따라쟁이 막내는
언니가 학교에 가는 것만큼은 제가 똑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분하다.
그래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언니와 뭐든 똑같이 하려고 애쓰며
저도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 덕분에 글쓰기 까지 도전 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받아쓰기는 할 수 없으므로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펴 놓고 그 책에 나오는 단어들을
공책에 똑같이 따라 쓰고 있다.
다 쓰면 어른들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제가 쓴 것이 맞으면 아주 흐믓해 한다.
첫째인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연습 삼아 글쓰기를 해보자는
내 말을 단칼에 거절 했었다. 학교에 들어가면 다 배우는데 왜 미리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학습을 미리 준비시키고 싶었던
내 소박한 바램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런 첫 아이를 늘 살얼음 밟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키웠던 내게 일곱 살 때 저 혼자 글을 깨치고, 스스로 글쓰기 연습까지 하는 둘째딸은
신통하기 그지없다.
첫아이와는 사뭇 다르게 커 주는 딸을 지켜보는 마음은 늘 고맙고 기특한데
요즘엔 언니보다 더 악착스러운 막내딸 때문에 가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왜 나만 키가 제일 작아? 왜 나만 책을 못 읽어? 왜 나만 글씨를 못 쓸까?
왜 나만 언니라고 불러야 돼? 왜 나는 학교를 갈 수 없는데? 왜 나만!!!
막내가 매일 내게 쏟아 놓는 말들이다.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저도 다섯 살이 넘었다고 우기면서 학교에 입학시켜 달라고
눈물을 떨구곤 한다. 그 덕에 네 살 때 벌써 제 이름을 똑 바로 쓸 줄 알게 되었고,
다섯 살엔 그림책을 보고 글씨를 쓰고 있다.
이러다 정말 우리 가문을 빚낼 영재 한 명 탄생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늘 저보다 우월하게 느껴지는 오빠와 언니를 둔 막내의 운명이랄까,
막내딸이 언니를 따라 잡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때론 안쓰럽고 때론 너무나 사랑스럽다.
언니 때문에 열심히 공부중인 막내야..
너는 너 자체로도 이미 엄마 아빠에겐 너무나 큰 기쁨이란다.
언니가 입학하면 하루 반나절은 우리 둘 뿐인데 엄마는 오히려 그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느긋하게 자라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