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일 대신 해주기, 아이 놀이 위해 공중도덕 무시


'아이 위해서'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마 위한 행동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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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이와 함께 생애 최초의 소풍을 갔다. 아이와 함께 병원이나 친척집 외출, 또는 산책은 많이 했지만 서울대공원이라는 놀이 장소에 가보는 것은 처음. 오전 11시쯤 도착하니 세상에~ 서울 수도권에 있는 아기들이 다 모였는지 유모차가 즐비하다.


각종 유모차들의 생김새부터 거기 앉아 있는 아기들, 그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들의 모습까지 관찰하는 게 그날 나의 가장 큰 재미였는데 부모들의 이런저런 행동을 보면서 육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뜻밖의 교훈적인 자리이기까지 했다.


먼저 첫번째 에피소드. 함께 간 우리 식구와 내 친구의 식구는 딸랑 기린을 보고 점심을 먹은 다음 어떤 이벤트 장소에 갔다. 간식과 함께 아이들에게 간단한 놀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우리 아이는 너무 어려서 참가가 불가능했고 다섯살인 친구 딸이 손수건 만들기에 나섰다. 커다란 흰 손수건에 갖가지 귀여운 동물 도장을 찍어서 ‘나만의 손수건’을 만드는 놀이였다. 친구 딸이 이걸 찍을까 저걸 찍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옆자리에서는 꼬마의 엄마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잉크도 꼼꼼하게 묻히지 못하고 반듯하게 찍지도 못할 뿐더러 골고루 다양하게 도장이나 잉크색도 고르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공룡, 강아지, 고양이 등을 골라서 잉크를 발라 열심히 찍어주는 것이었다.


엄마가 예쁘고 깔끔한 수건을 만드는 동안 아이는 그저 엄마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작은 손으로 도장 잉크를 더디게 묻히던 친구 딸마저 “아줌마가 대신 해줄께”라며 잉크를 대신해 묻혀주는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마음이 급한 그 아이 엄마는 내 친구 딸이 더디게 하는 행동을 기다리기 답답해서 손이 빠른 자신이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아이는 그날 만든 ‘나만의 손수건’ 가운데 가장 깔끔하고 예쁜 손수건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수건은 엄밀히 말해 그 아이만의 손수건이 아니라 그 아이 엄마만의 손수건인 셈이다.


두번째 에피소드. 동물원을 나오는 길에 우리는 친구 식구들과 헤어져 어린이 동물원을 다시 들렀다. 메인 동물원에서 자느라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가 아쉬울까봐서 였다. 아니나 다를까. 푹 자고 난 아이는 염소와 조랑말, 양 등을 보면서 혼자 어어, 맘맘마, 어그 빠빠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열광했다. 그렇게 우리 앞에 서 있는데 “그거 주시면 안돼요!”라고 저지하는 말소리를 들었다. 너덧살 된 꼬마가 엄마와 함께 염소에게 풀을 주고 있는데 동물원 직원이 막은 것이다. 직원은 그 풀은 염소의 식용이 아니라 제초한 풀로 화학약품이 묻어있어 염소에게 해롭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염소를 보다가 우리는 옆에서 아까 그 풀을 염소에게 주라고 아이를 번쩍 들고 있는 부모를 다시 보게 됐다. ‘이봐요, 당신 자식 즐거우라고 남의 자식 위험에 빠뜨려요?’(그 염소도 엄연히 누군가의 자식이 아닌가)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참았다. 행여나 괜한 다툼에 휘말리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아이의 부모야 집에 가서 “우리 아가 염소에게 밥도 줬지요?”하고 흐뭇해 할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직원과 부모의 상충되는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이의 즐거움이나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 공중도덕 따위 헌신짝처럼 버리는 부모에게서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


세번째 에피소드는 몇주 전 어떤 아동복 행사장에서다. 아이와 함께 언니네 집에 놀러갔다가 근처 아동복 회사 창고에서 폭탄세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그래도 겨울잠바를 사주고 싶어서 아이를 맡기고 거기에 찾아갔다. 지하에 있는 꽤나 넓은 창고에 옷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가격은 거의 70퍼센트 세일. 그야말로 보물찾기 같아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으나!


들어가자 마자 목이 매캐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 상자 안에서 오랫동안 빽빽히 담겨 있는 옷들을 수천벌 풀어놨으니 당연했다. 5분 정도 지나자 눈도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물건의 양을 보고 평소처럼 충동구매를 작정한 나였지만 본의 아니게 원래의 계획대로 사이즈를 찾아 잠바 하나와 그 옆 상자에서 누비 바지 하나를 집어서 후닥닥 계산대로 달려갔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주변을 보니 기꺼해야 6개월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 여럿 엄마 등과 가슴에 매달려 있었고 서너살 된 아이들은 옷상자가 볼풀이라도 되는 양 푹푹 몸을 던지며 뛰어놀고 있었다. 말 못하는 아이는 눈이 얼마나 따가울까. 뛰어노는 아이들은 정신없어 힘든 줄 모르지만 폐가 얼마나 힘들어할까.




아마도 엄마는 저렴한 가격에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은 마음에 맡길 데 마땅치 않은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왔을 것이다. 힘들게 아이를 안고 쇼핑을 하는 이유는 모두 ‘아이를 위해서’고 엄마는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세 에피소드 모두에서 왜 그랬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엄마들은 모두 입모아 대답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과연 아이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는 아이 달래기 위해 또는 재우기 위해 무조건 젖주지 말라는 육아책의 조언은 번번이 어기는 내가 남의 집 육아 방식에 참견할 처지는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하는 행동 중 상당 수는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착각’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키우기는 힘들다.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서, 어린이 대상 범죄가 많아서 힘든 것만은 아니다. 내 딴에는 아이를 위해 하는 정성과 사랑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 제대로 키우기는 정말로 힘든 것 같다. 아이를 위해 하는 나의 헌신이나 노력 중 어떤 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또는 아이를 핑계댄 나를 위한 것인지 좀더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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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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