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까지 휴가였던 남편이 드디어 출근을 한 금요일,
엿새간 이어졌던 연휴끝이라 밀린 일도 많고 지치기도 했다.
열일곱살 아들은 하루의 반나절을 잠으로 보내고 있으니 깨워도 소용없고
열세살 둘째도 라면 끓여 먹고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하니
방과후 프로그램을 들으러 학교에 간 막내와 둘이 맛난 밥도 사먹고
은행도 들리고 장도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지치고 힘든데 든든하고 따뜻한 음식이 생각날때 잘 가는 곳이 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장님이 9년째 음식값을 올리지 않고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시는 해장국집이다.
이룸이는 뼈다귀 해장국을 나는 황태 해장국을 주문했다.
두 메뉴 다 5천원씩 이다.
"와, 엄마 역시 뜨끈하고 푸짐하고 맛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시킨 황태해장국도 엄청 시원하고 맛있어"
늦잠에서 일어나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느라 아침도 못 먹었던
이룸이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과일로 배를 채웠던 나도 뜨끈한 국물이
정말 반가왔다.
땀나게 먹으며 우린 다음주에 있을 이룸이 생일 파티 의논을 했다.
막내는 본래 1월 31일이 생일인데 그 전날 오빠 학교 사람들 열댓명이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가는 바람에 생일파티가 미뤄진것을 다음주에 하기로 했기때문이다.
"언니 친구 네명 초대 했고, 네 친구는 다섯명이지?
먹고 싶은 음식은 뭐야?"
"목살간장구이요!!"
맞다. 돼지목살을 간장과 갈이 배를 넣어 재웠다가 굽는 요리를 이룸이는 아주 좋아한다.
인원이 많은데 퍽 손이 가는 음식을 하게 생겼다.
"알았어. 목살구이하고, 봄동겉절이도 하고 샐러드도 하고, 김밥을 할까?"
"... 엄마... 고마워요. 준비하시려면 힘드실텐데..."
"아니야, 이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생일선물이잖아"
"엄마........"
이룸이는 감동한 듯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엄마, 오늘 밥 값은 제가 낼께요. 세뱃돈 받은 것 중에서 만원은 밥값으로 쓸래요" 하는거다.
"아니야 무슨.. 괜찮아. 세뱃돈도 네가 받은건데 그럴 필요 없어"
"아니예요. 엄마가 이렇게 애써주시는데 제가 엄마한테 한 턱 내고 싶어요.
만원을 써도 7만원 저금할 수 있잖아요. 괜찮아요. 꼭 제가 사드리고 싶어요"
갑자기 밥 먹다가 가슴이 꼭 메일 뻔 했다.
"... 그래? 그럼 그럴까? 엄마가 이룸이한테 밥 한번 대접 받는 걸로 할까?
정말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께"
"아.. 정말 행복해요. 제가 엄마한테 밥도 사드릴 수 있어서요.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이룸이도 나도 마음이 행복으로 꽉 차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부터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밥을 해 먹였다.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기도 하고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늦도록 신나게 놀곤 했다.
피자나 치킨을 시켜줄 수 도 있지만 그런 음식은 내가 안 좋아해서
늘 직접만든 고기요리와 나물 같은 것으로 상을 차렸다. 그런 생일을 기대하는
것도 어린날 한때라는 것을 알기에 힘들어도 열심을 냈는데
열살이 된 막내가 그런 내 수고를 알아주고, 고맙게 여기고, 제 용돈으로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내 주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언제 이렇게 속이 꽉 차게 자랐을까.. 고맙고 뿌듯해서 정말 귀한 선물을 내가 다 받은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이룸이는 사장님에게 쑥쓰러운 표정으로 만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허허. 니가 돈을 내니?"
"네, 세뱃돈 받은 돈으로 엄마한테 밥 한끼 사는 거래요" 내가 설명을 하자
"하이고, 기특해라, 세상에.."
사장님은 몇번이고 칭찬하시며 식당 입구 까지 나와서 이룸이를 배웅해주셨다.
식당을 나와서도, 7만원을 은행에 들러 통장에 저금하면서도 이룸이는 뿌듯해했다.
마흔에 셋째를 낳아 쉰이 되기까지 내 40대의 날들은 이 아이를 기르는 일에
모두 바쳐졌다. 이제 막내는 또래중에 월등하게 키도 크고 재능도 넘치는
멋진 아이로 자라났다.
뭐든지 잘 먹고, 늘 새롭고 재미난 일을 궁리하고, 제가 계획한 일들을 하느라
하루종일 집에서도 바쁜 건강하고 이쁜 막내딸에게 처음으로 밥을 얻어 먹었다.
지난 10년을 한번에 보상받고도 남을 잊지못할 선물이다.
잘 커준 딸도, 이만큼 키워낸 나도 다 대견하다.
지난 세월이 몽땅 다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