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은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엘이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아빠와의 트레킹’이라는 행사로
요즘의 아빠육아를 강조하는 세태에 발맞추었고,
대안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 운영에서 아빠들의 참여는 일반 학교보다 한층 두드러졌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부재에 대한 다엘의 가슴앓이는 더해졌고
어버이날 편지 쓰기를 할 때 친구가 했던 사소한 말 한 마디를 두고
오래 속상해 하기도 했다.

 

다엘이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한부모 가정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읽어주며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부모가 이혼하여 생부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유년시절,
그리고 조부모 밑에서 보낸 학창시절까지.

 

그러다 보니 오바마의 성장기 이후 얘기들이 궁금해져서
그의 삶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국 내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
오바마는 아버지의 부재뿐 아니라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아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생부의 나라 케냐로 향한 여행을 일컬어 뿌리를 찾는 길이라 생각했고,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이 일궈야 할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백인 어머니를 둔 흑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매순간 얼마나 큰 장벽을 만나는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과연 케냐가 그의 정체성을 바꿔놓았을까?
오바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국인이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더 이상 흘릴 수 없을 만큼 눈물을 뿌렸던 것은
생부가 그에게 남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화해하는 순간이었으리라.

 

오바마가 겪었던 인종차별과,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단순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흑인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없었다면,
그토록 오래 방황할 이유가 있었을까?
문제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고, 뿌리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입양가족에게 있어서도 뿌리 찾기나 정체성의 문제는 가볍지 않다.
내가 속한 입양가족 모임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은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뿌리 찾기’라는 말은 잘못 됐다.
우리 아이들은 뿌리 없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뿌리는 스스로 내리는 것이지 찾는 것이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옛터 찾기’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우리가 확고하다고 믿는 부모, 조상, 족보의 기록, 나 자신의 존재 자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는 걸 알면
누구나 자신과의 화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엘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생부모를 찾아보는 것은 하나의 작은 변수일 뿐,
자신의 삶을 뒤흔들 엄청난 사건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출생 증명서까지 공개했음에도,
한동안 트럼프는 오바마가 아프리카 태생이라며 문제 제기를 했고
미국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했었다.
이에 오바마는 세련된 유머로 응답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을 위한 연례 만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출생 비디오를 처음으로 공개하겠다면서  화면을 보여준 것이다.

스크린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태어난 어린 사자의 영상이 흘러나왔고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첫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크기변환_라이언킹.jpg »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중에서

 

 

한동안 다엘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백악관으로 찾아가겠다고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 없다고 놀린 친구를 혼낼 방법을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참 긴급(?)한 사유이긴 했다.

 

지금은 단순히 다른 아이와 다른 것, 아빠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다엘에게 힘든 일이지만 자라면서 좀더 근원적인 정체성 문제에 부닥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면
그 산을 좀더 의연하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엄마의 외모와 달라 보이는 다엘에게 묻곤 한다.
'넌 누구 닮았니? 아빠 닮았니?'
다엘은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았다고 나름 정직하게 답을 한다.
그러자 한번은 상대가 농담조로 물었다.
'그럼 넌 어디서 왔어?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

나는 뒤돌아 서며 다엘에게 말했다.
'저 아줌마 참 이상하다. 우린 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고 나서 같이 웃었지만 며칠 후 잠자리에서 다엘이 털어놓았다.

 

“엄마, 나는 누구 닮았냐고 사람들이 자꾸 묻는게 싫어.
앞으로 또 물으면 이렇게 말해줄거야.
나는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요.
자세한 사항은 하느님 홈페이지나
삼신할머니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이상끝.”

 

어쩌면 다엘은 스스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아빠의 자리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필요한 건 주변의 적절한 무관심, 그리고 때로는 따뜻한 응원이다.

 

서둘러 아이의 상처를 봉합하려는 나 자신의 조급함을 들여다 본다.
‘얼른 극복해야 해!
너 자신의 꿋꿋함이 제일 중요한 거야!
너만 그런 상황이 아니야!’
이렇게 아우성 치는 어미의 본능을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건
아마도 마음 챙김 공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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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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