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팔꿈치와 어깨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고 여름이 지나갔다. ‘선수 보호차’ 일체의 야구 행위를 금지한 뒤 신기하게도 녀석의 열정은 정상치로 돌아왔다. 거의 중독처럼 매일 보던 야구 경기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져 오히려 내가 궁금해 TV를 켜는 날도 생겼다. 이렇게 야구에만 집중되던 녀석의 관심은 이제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등의 다양한 스포츠와 음악회나 체험 행사 등으로 골고루 퍼지고 있다.

 

한글날인 10월9일,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예쁜 한글 엽서전’이 열리는 청계광장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청 앞에 내리니 한글문화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시청에서 청계광장을 거쳐 내친 김에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들어서자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노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이따금 TV에서 세월호 뉴스가 나올 때마다 물었다.

“아빠,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이지?”

언제부턴가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10명인가, 9명인가... 잘 모르겠네.”

 

녀석은 바로 이날, 그 자리에서 정확한 답을 찾았다. 9명. 광화문 광장 초입에 이들의 사진과 사연이 적힌 노란 간판이 있었는데 녀석은 그걸 지나치지 않았다. 아픈 가슴을 추스르고자 휘리릭 훑고 잡아끄는데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섰다 앉았다 하며 9명의 사연을 꼼꼼히 읽었다.

 

 12079176_477626409070526_869051446743287328_n.jpg

 

광장에 들어서니 노란 스폰지를 잘게 잘라 리본을 만드는 좌판이 여러 개였다. 스폰지에 본드를 붙여 리본 모양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리본에 고리를 다는 작업의 손길이 필요했다. 아이는 작업을 자처했다. 우리 세 식구는 30분 가까이 수북이 쌓인 노란 리본에 고리를 달았다. 그리고 가방에도 달았다. 아이와 함께 나온 여러 가족들이 작업을 함께 도왔다. “가슴이 아프다”며 지나가려는 엄마 아빠를 아이들이 끌었다.

광장을 빠져나오며 아이에게 물었다. 9명 사연을 찬찬히 읽어 보니 기분이 어떠냐고.

“응. 슬퍼.”


12088377_477626552403845_1212773098073472937_n.jpg

 

세상에는 상상 속 린치까지 유발하는 인면수심의 존재들이 많지만... 인지상정과 측은지심, 이런 게 사람의 모습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노란색 리본을 만들던 아이들의 작은 손에서 난 성선설의 강력한 근거를 찾았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414001/5c2/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70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중학교 간 아들이 변했다!! 아주 많이.. imagefile [15] 신순화 2016-03-09 26429
1704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 빗 속에서 울며 어린이집을 찾아 헤매다 imagefile [5] 임지선 2013-09-13 26422
1703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11년 우울감 극복법1-다이어트] -19kg, 몸은 정직했다 imagefile [8] 김미영 2015-09-24 26401
1702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이번 주말 ‘베이비페어’ 참관, 어때요? imagefile 김미영 2010-08-20 26398
1701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엄마-딸 첫 여행, 감성 100% 충전 imagefile [10] 양선아 2013-11-12 26375
170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바다가 나를 부른다. "여보~!" imagefile [4] 최형주 2015-02-13 26360
»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세월호 리본 만든 아이 눈에 imagefile [6] 김태규 2015-10-11 26325
169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도 하고 싶다!!! imagefile 신순화 2010-08-17 26295
1697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엉덩이 뽀로로로 완성된 직장맘의 풀착장 imagefile 김은형 2011-04-27 26269
1696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말레이시아 국민 여행지, 카메런 하일랜드(Cameron highlands)를 가다 imagefile 빈진향 2013-05-31 26214
169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경남 남편 전북 아내, 제주 딸의 말투는? imagefile [2] 홍창욱 2013-04-12 26189
169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가끔은 잊고 싶은 엄마, 아내라는 이름 imagefile [16] 양선아 2014-06-19 26137
169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닭' 치고 가마니쓰고 싶은 심정.. imagefile [2] 신순화 2012-03-19 26129
169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알부자가 되는 그날을 위해!!!!! imagefile 신순화 2011-07-20 26094
1691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아이에게 제안하는 거래 imagefile [1] 김외현 2012-11-28 26075
1690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 아프냐, 나도 너무 아프다 imagefile [4] 임지선 2012-05-16 26052
1689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리얼 정글맨 페난족,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imagefile [3] 빈진향 2014-01-23 26016
1688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9편] 아줌마~공짜 티켓으로 '어린이 실내 놀이터' 다녀왔어요~ 우히히 imagefile [8] 지호엄마 2012-04-26 25978
1687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은하철도 999 imagefile [16] 강남구 2016-05-16 25974
1686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월요병 imagefile 윤아저씨 2010-10-15 2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