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젖

최형주의 젖 이야기 조회수 22261 추천수 0 2013.11.01 07:23:47

 가을젖1-2.jpg

 

 

모유 수유 200일 차

가을 젖

 

집 주변 논에

파릇한 새끼 벼가 심겼던 초여름,

나는 한참

모유 수유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혼을 반쯤 잃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힘겹게 들락날락하는 숨을

간신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나온 산책길에

파릇한 새끼 벼들로 가득 찬

넓은 논을 마주한 순간

...

나의 모든 힘듦이 사라지고

마음 깊이 고요가 찾아왔다.

      

서너 달이 지나며

그 새끼 벼들이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만나

키를 키우고

낟알이 차올라 고개를 숙일 동안

 

내 젖은

아직 여물지 않은 한 생명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느라

어느새 고개를 떨구었다.

 

참 닮아있구나.

엄마의 젖과 자연이.

아니,

같은 것이구나.

 

지금은

모유 수유의 오르막길이 어느덧

넓은 고원의

걷기 좋은 평지가 되었고

나의 풀어헤쳤던 머리도

아주 짧게 정리가 되었다.

 

한껏 누려본다.

이 가을에 평화로운 젖과

그 젖이 키워낸 나의 딸,

바다와 함께하는 지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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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주
이십 대를 아낌없이 방황하고 여행하며 보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시골 대안학교로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두 딸 바다, 하늘이와 함께 네 식구가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주신 '최형주'라는 이름을 쓰다가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의 '지아'에 부모님 성을 함께 붙인 '김최지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에 모유수유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림과 글로 표현한 ‘최형주의 젖 이야기'를 연재 완료하였다.
이메일 : vision323@hanmail.net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amjam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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