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 2.jpg

 

도대체 우리 아들은 언제 제 방에서 따로 자기 시작할것인가..


늘 궁금했었다.
올 해로 결혼 11년째에 접어 들었지만 여전히 세 아이들과 함께 잠자는
우리 부부에겐 아이들이 커서 제 방으로 들어가 자고 부부끼리만 한 이불
써 보는 것이 소원이니 말이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뒹굴며 함께 자는 것이 좋은 점도 많지만
짧은 연애끝에 결혼하고 바로 첫 아이를 낳은 탓에 부부끼리만 보낸
기간이 너무 적은 남편과 나는 하다못해 잠 만이라도 단 둘이서
잘 수 있기를 소망했었다.


그러나 띄엄 띄엄 셋을 낳고 보니 늘 엄마 아빠를 찾는 어린
아이들이 있어 부부끼리만 자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큰 아이는 나이가 있으니까 저 혼자 충분히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잠자리 독립을 선언하기를 고대하긴 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입학하면 따로 잔다고 하지 않을까 했지만
아들은 입학을 하고,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어도 따로 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늘 엄마곁을 차지하는 막내를 질투하며 미워하곤 했다.
어린 동생을 봐서 더 연연해 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설마 사춘기가 되면 붙잡아도 제 방에 들어가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아들은 11살이 마악 된 올 1월에 느닷없이 제 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계기는 좀 유치했다.

 

올해 네살이 된 막내는 늘 내 옆에서 자지만 열한 살 큰 아이와
일곱살이 된 둘째는 이틀씩 바꾸어가며 내 곁에서 잔다.
그런데 며칠전엔 둘이서 잠자리 순서를 따지다가 싸움이 벌어졌다.
필규도 윤정이도 서로 내 옆에서 자는 날이라고 우기다가
필규가 아빠 옆이라고 결론이 났는데 그게 화가 난 필규는
늘 자던 자리가 아닌 이룸이가 자던 자리에서 제가 자겠가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불위에 누워 있던 아빠를 제 옆으로
오라고 했다. 귀찮은 남편은 필규보러 옆으로 오라고 하고
필규는 제 옆으로 오라고 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꿈쩍도 안 하는 아빠 때문에 화가난 필규는 갑자기 이부자리를
둘둘 말더니 '나, 아빠하고 안자, 혼자 잘꺼야'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방문을 쾅 닫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달래러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보기에도 필규가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부엌을 정리할 일이 남아서
마저 치우고 갔더니 필규는 울음을 그치고 대충 펴 놓은
이불 위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정말 혼자 잘꺼니?'
'네'
'그러지말고 엄마 옆으로 와' 해도
'싫어요. 아빠 있는 데서 절대 안 잘꺼예요' 하며 단호했다.


나는 이부자리를 제대로 펴 주고 스텐드를 켜 주고 나왔다.
설마 저 혼자 잘까 싶었다. 늘 이런식으로 화를 내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가도 결국은 혼자 자는 것이 싫어서
슬며서 엄마 아빠 옆으로 들어오던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규는 나오지 않았다.

 

거실의 불을 다 끄고 이룸이를 재우느라 함께 누워 있는데
나를 부르는 필규 목소리가 들렸다. 잠 들때까지 같이
있어 달라고 부르는 소리였다. 이룸이가 채 잠이 들지 않아서
금방 필규에게 갈 수가 없었다. 기다리라고 하면서 막내를
재우다가 나도 살짝 잠이 들었는데 깨 보니 집안이 조용했다.

필규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나 필규 방에 가보니 이불을
둘둘 말아 품에 꼭 껴안고 잠 들어 있었다.


무서운 것도 싫어하고 겁이 많은 필규는 제 베게 옆에
가족 수 만큼 베개를 늘어 놓은체였다.
아직도 이렇게 여린 구석이 있으면서 그래도 정말 혼자
잠이 들었네.. 설마 했는데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잠든 모양이었다. 한참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왔다.

 

아빠에게 화나서 하루 그렇게 잔거려니... 했는데 아들은
그 다음날도 제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이번엔 막내가 일찍
잠 들어서 아들이 잠 들때까지 옆에 누워주었다.
셋째날엔 아빠가 같이 누워 주었다.

 

필규의 방.jpg

 

넷째날인 오늘은 일찌감치 이불을 곱게 펴 놓고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잠자리를 꾸민 다음 두 여동생을 제 방으로 초대해서
재미나게 한참을 놀다가 잠이 들었다. 물론 잠 들때는
아빠가 곁에 있어 주었지만 이젠 제 방에서 자는 것이 좋아진
눈치다.

그동안 온 가족과 함께 잘 때는 어린 동생들때문에 늦도록
불 켜 놓고 책을 볼 수도 없었고, 함께 행동해야 했는데
제 방에선 책을 읽다가 잘 수 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잠자리를 꾸밀 수 도 있는 것이 훨씬 좋은 듯 했다.

 

언제 그날이 올까.. 내 아이는 왜 이렇게 저 혼자 자는 것이
늦을까... 답답해 하기도 했었는데, 정작 그날은 이렇게
느닷없이 왔다. 막상 아들이 곁을 떠나 따로 자기 시작하니
이상하게 허전한것은 나였다.
둘째와 서로 내 옆에서 자겠다고 싸워가며 내 옆에 누우면
있는대로 내 몸에 꼭 붙어서 잠 들던 아들이 없으니
더 편한게 사실이면서도 그렇게 온 몸으로 엄마를 원하던
시절이 느닷없이 끝나버린게 당황스러워 어찌할바를
몰랐던 것이다.

 

허전함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들이 잠들고 나면
아들방에 들어가 오래 오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늘 철이 안 들것 같고, 어리광이 심하던 아들인데
갑자기 쑥 큰 것 같게 느껴지고 이젠 성큼 내 곁에서 한발짝
더 떨어진 것 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저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거겠지.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또 마음이 알싸해지는 건 뭔가 말이다.

 

아직 자면서도 엄마를 찾는 막내를 꼭 안아보면서 생각했다.
품에서 품고 잘 수 있는 시절도 금방 지나가는구나.
첫 아이는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갔구나. 둘째와 셋째는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젠 이 순간을 더 알뜰하게
즐기고 누려야 하겠구나. 막상 세 아이가 다 내 품을
떠나면 내가 더 힘들어 하지 않을까..

셋 중에 겨우 큰 아이 하나 제 방에서 따로 자기 시작했는데
아이들 다 독립시킨 것 처럼 마음이 비장해진다.

 

그나저나 많이 컸구나.. 큰 아이..
혼자 자는 큰 아이를 보며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나는 그 얼굴을 오래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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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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