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막내가 젖을 뗐다. 38개월 만이다.
첫 아이는 23개월, 둘째는 27개월간 모유 수유를 했는데 두 번 다 끊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에
막내만큼은 원할때까지, 스스로 젖을 놓을 때까지 먹이려고 했었다.
건강하게 잘 자랐고, 밥이나 다른 음식들도 잘 먹었지만 막내는 젖을 너무나 좋아했다.
지난해 말 까지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젖을 찾곤 했는데,
오랜 수유로 내 몸은 이미 한참전부터 고단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단계적으로 젖을 줄이기로 하고 막내를 설득했다.
엄마 몸도 많이 힘들고 이룸이도 더 이상 어린 아기가 아니니까 밤 중에는 젖을 먹지 않기로
하자고 했다. 처음엔 싫다고 떼를 썼지만 3일간 울고 이룸이는 체념해 주었다.
밤중 수유만 안 해도 살것 같았다.
그 다음엔 자고 일어나서 한 번 먹고, 자기 전에 한 번 먹는 것으로 줄였다.
그리고 올 2월부터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젖 먹는 것으로 정해서 지켜오고 있었다.
차근 차근 젖을 줄인 덕에 젖은 서서히 말라서 몸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완전히 젖을 떼는 시점을 언제로 정할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얼마전부터는 젖이 완전이 말라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룸이는 꼭 젖꼭지를 물고서야 잠이 들었다.
만 3년 넘게 젖을 먹으며 잠이 들던 습관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전 나는 드디어 결심을 하고 이룸이에게 설명했다.
이제 엄마 몸은 더 이상 젖을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젖꼭지를
빨 수 없다고 얘기 했다.
'그래도 쩌시, 먹고 싶은데요. 마니 마니 먹고 싶은데요'
이룸이는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
젖을 떼기로 한 첫날밤, 이룸이는 오래 오래 몸부림치며 울었다.
젖 없이 잠드는 그 생경함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엄마, 미안해요. 쩌시를 먹고 싶어해서 미안해요'
눈물이 범벅한 얼굴로 이렇게 내게 사과하는 어린 딸을 안고 나도 울었다.
'엄마 쩌시를 그렇게 많이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 언니가 되었으니까
엄마 쩌시랑은 안녕하자'
우린 그렇게 서로 껴안고 오래 울면서 젖과 인사를 했다.
둘째날도 한참을 구슬프게 울다 잠이 들었다.
셋째날은 내가 외출했다가 밤 늦게 돌아왔더니 이룸이는 종일 잘 놀다가
엄마도 안 찾고 젖 얘기도 안 하고 저 혼자 잠이 들었다고 했다.
넷째날은 내게 한 번 젖 이야기를 해 보고 안 된다고 했더니
그대로 포기하고 아빠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다음날엔 내가 있는데도 저 혼자 스스로 이불 속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룸이는 그렇게 38개월간 이어왔던 젖과 안녕을 했다.
지난 일요일엔 작은 케익을 사서 이룸이가 젖을 뗀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 주었다.
아기에서 아이로 자라난 것을 가족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엄마 젖을 통해 충분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시간을 누렸고 아이와 이야기해가며 단계적으로
젖을 끊었기에 많이 힘들지 않고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내가 젖을 뗀 그 날 밤, 나는 오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몸이 말할 수 없이 고마왔고 애틋했다.
결혼 10년 9개월동안 세 아이에게 젖을 먹인 기간을 따져보니 7년 4개월이었다.
여염집 아이 대여섯을 키울 수 있는 기간동안 젖을 먹여온 셈이다.
무슨 기록을 세우겠다고 시작한 일일리 없다.
다만 아이마다 충분히 젖을 먹이고 싶은 마음 뿐 이었다.
힘든 순간도 많았다.
첫 아이때는 젖 돌때도 젖 끊을 때도 너무나 힘들었고, 심한 유선염도 두 번이나 앓았었다.
그러나 둘째때는 모든 과정이 조금 더 수월했고 막내는수유 기간이 길었던 만큼 서서히 몸이
젖을 거두었다.
7년이 넘는 모유 수유를 마치고 보니 그 엄청난 기간동안 쉼없이 젖을 만들어 낸
내 몸에 대한 한없는 감사와 고마움이 가장 크다. 크게 아프기라도 했으면, 무슨 사고라도 났더라면
절대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기간 내내 나는 내 아이의 밥이자 목숨이란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때 오로지 내 젖만으로 크는 시절엔 더더욱 그랬다.
조금이라도 몸이 아파서 아이들 젖을 줄 수 없을까봐 칼 같은 긴장으로 몸을 다독이며 지냈다.
남들은 그저 내가 본래 그렇게 젖이 잘 나오는 엄마인 모양이라고 말들했지만
그 기간 내내 술은 커녕 커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주의해 가며 아이들 몸에 들어갈 젖이
건강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애써가며 노력했다. 몸이 너무나 지치고 힘든 날에는
일부러 잠자기 전에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그렇게라도 애쓰지 않으면
허리와 어깨가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다.
결혼 기간의 대부분을 임신과 수유로 지낸 내가 한번도 쓰러진 일 없이, 입원을 하거나
크게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없이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늘 내 젖을 먹어가며 나를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애정으로 환영해 준 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긴 시간을 젖을 먹이면 엄마 몸이 축날거라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젖을 물리는 그 시간내내 나 역시 아이들에게 생애 가장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젖 먹이는 엄마였기에 늘 내 입에 들어가는 것들을 세심하게 챙길 수 있었고, 내 몸의 상태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아이들과 넘치도록 스킨쉽을 했던 것이
나에겐 더없이 큰 기쁨을 주었다.
그 덕이었는지 세 아이 모두 아토피나 기타 어린 아이들에게 오는 잦은 감염으로부터 건강했고
무엇보다 성격이 둥글둥글 짜증없는 아이들로 잘 자라 주었다.
젖을 먹이는 동안은 간식이나 군것질의 유혹도 크지 않았다.
어떤 달콤한 간식보다 엄마 젖을 제일 좋아하고 반겨 주었다. 이유식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젖 먹으며 밥도 잘 먹어 주었다. 젖 먹는 동안은 크게 아파도 병원 신세 안 지고 제 힘으로
이겨내곤 했다. 세 아이모두 심한 장염에 걸렸을때에도 젖 만큼은 기를 쓰고 빨았기에
탈수가 되는 일이 없었고, 입원 할 필요 없이 집에서 장염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젖을 통해 나누었던 7년여의 세월들을 돌아보니 내가 준 것보다 아이들에게
받은 것이 더 많음을 알겠다. 내 젖을 먹으며 내게 눈을 맞추고 넘치는 사랑과 애정을 보내주던
세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가 없다.
힘들긴 했지만 그 기간 내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다.
아무리 내 속으로 자식을 낳았아도 물고 빨며 내 품에서 키우는 시간은 길지 않다.
아쉽지 않게, 충분히 서로를 접촉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젖을 줄 때 뿐이었다.
나는 그 기간을 넘치도록 누렸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제 젖 주는 날들은 지나갔다.
그동안 애쓰고 최선을 다 해온 소중하고 고마운 내 몸을 제대로 돌 볼 시간이 왔다.
젖을 뗀 그 날부터 남편과 해독쥬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몸 안의 노폐물들을 말끔히 내 보내고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과 더 열심히 뜨겁게
부대끼며 살고 싶다.
7년이 넘게 애 써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엄마 젖을 사랑해 준 세 아이들에게
긴 시간 마누라의 품을 자식들에게 양보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