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 10.jpg

 

아이 셋을 기르다 보면 `어쩌면 이렇게 아이마다 다를까' 싶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 아들은 오랫동안 어둡고 무서운 것을 싫어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내아이가 너무

겁이 많아 어떡하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콩나물이든 나물이든 긴 것은 잘 못 삼켜서

잘라서 먹여도 자꾸 게워내는 통에 애를 먹기도 했다.

궁금한 것은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려 전시회장이나 박물관을 가면 늘 조마조마했다.

막내는 물을 너무 좋아해서 물만 보면 손을 대고 들어가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대신 씻기고 머리 감기는 것은 수월했다.

머리통에 그대로 샤워기를 대고 헹궈도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것도 좋아하고

겁이 별로 없어서 여자 아이치고 담이 크게 태어난 모양이라고 늘 생각한다.

 

세 아이 중 둘째는 첫째, 막내와 여러모로 달랐다.

애기때부터 너무 순해서 울고 떼쓰는 법이 없었다.

늘 둥글둘글 원만하고 수월한 아이였다.

다만 머리카락이 물에 젖은걸 너무 싫어해서

어린 시절엔 내내 머리 감기는 것이 전쟁일만큼 애를 먹었다.

또 하나,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오래도록 싫어했다.

가족 모임에서 내가 잠깐 가게에 다녀오려고 해도

그토록 좋아하는 이모들과 사촌들이 그득해도

엄마를 따라나서지 않고는 못 견뎠다.

잠깐만 아빠랑 오빠랑 있으라고 해도 안 되었다. 다 크도록 나를 따라 다녔다.

가끔은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다.

나 혼자 다녀오면 수월하고 간단한데, 더 어린 막내도 집에서 아빠랑 남아 있는데

어지간히 큰 둘째가 기어이 나를 따라 나서니

어딜 가도 시간이 걸렸고, 번거로와서 몇 번은 눈물이 쏙 나오도록 야단을 친 적도 있다.

그래도 결국은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 나서는 아이였다.

 

네살때 언니가 되었다는 것이, 항항 의젓한 줄 알아서 어리다는 생각을 잘 안하고

키운것이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허기를 같이 키웠던 것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마침내는 단념하고 어디든 달고 다녔다.

주위에서 저렇게 큰 애가 왜 엄마를 못 떨어지냐며 혀를 끌끌차도 그냥 데리고 다녔다.

안되는 걸 어떻게 하냐고, 뭔가 불안이 있어서 그러는 걸 억지로 할 수 있냐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질거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들을 지냈다.

 

어린이 집, 유치원도 안 다니고 나와 꼬박 만 7년을 함께 있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입학하고 몇 달 동안 학교 가는 아침마다 눈물 바람이어서 내 마음을 조이게 했다.

처음 해 본 단체생활에 대한 부담이 컸다.

둘째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적응해 갔다.

뭐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등교할땐 꼭 내가 데리고 가지만 2학년쯤 되면 적어도 방과후엔 교문 앞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저 혼자 집에 올 수 있겠지... 기대했지만 혼자 오라고 하면 늘 펄쩍 뛰었다.

더 어린 아이들도 마을 버스는 혼자 타던데 왜 너는 못 타냐고 해도 소용없었다.

 

농사가 시작되면 집안일에 텃밭일에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뭣 좀 하다보면 둘째를

데리러 가야 할 때가 되어 있곤 했다. 그럴때마다 불평을 했다.

이럴 땐 좀 저 혼자 버스 타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홉살이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아주 드믈게 버스를 타고 저 혼자 집에 왔을때 내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외출했다가 일이 늦어져서 둘깨가 먼저 집에 와 버린 것이다.

난리가 났었다. 집에 엄마가 없는 걸 알아챈 둘째는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하고

내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내가 받지 않자 엉엉울며 패닉을 일으킬 정도였다.

남편에게 야단을 맞고 집에 도착해보니 둘째는 나를 보며 어딜 갔었냐고

대성통곡을 했다.

아빠하고 통화도 되었고, 집에도 왔으니 책이라도 읽으면서 기다리면 엄마가

금방 올텐데 왜 그렇게 울고 겁을 내냐고 해도 소용없었다.

겁도 많고 걱정도 너무 많은 아이... 그게 둘째였다.

 

그랬던 둘째가 변했다.

아홉살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혼자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일도 곧 익숙해졌다.

어쩌다 내가 외출했다 늦으면 난리였던 아이가 이젠 내가 없는 집에 친구랑 먼저

와서 놀다가 나를 맞기도 한다.

우쿨렐레를 2년째 배우기 시작하면서 단단히 재미를 붙인 둘째는 요즘 응팔에 나오는

노래들을 배우고 있다며 내 기타에 합주를 하기도 한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늘었다.

 

텔레비젼은 주말에나 그것도 공중파만 볼 수 있고, 노래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공식적으로 집에서 접할 수 없으면서도 어디서 배웠는지 유행하는 노래들도

나보다 잘 알고 3학년땐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방송댄스'를 신청했다는 이야기로

나를 놀래키기도 했다.

사람들앞에 서는 것을 쑥쓰러워하고 겁이 많던 아이라고 여겼는데 딸은

그 사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따금 아이돌 동영상을 틀어놓고 춤을 따라 하며

놀기도 했나보다.

 

어제는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일이 있었는데 방학 중 방과후 프로그램을

갔던 딸이 제일 친한 친구와 버스타고 집에 와서 놀겠다는 것이다.

내가 없을 거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라면 끓여 먹으면 된다며 즐거워했다.

한참 후에 또 전화가 왔다.

컴퓨터로 아이돌 동영상 보며 춤 연습 해도 되냐는 것이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엄마, 사랑해요. 천천히 오셔도 되요" 하며 날아갈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오후에 돌아와보니 내 차가 마당에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는 딸아이와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들어갔더니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순서도 틀리고 동작도 엉키는데 잘 보니 친구보다 내 딸의

몸놀림이 훨씬 그럴듯 했다. 유행하는 춤에 대해서는 몸치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가 알던 둘째가 맞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만나는 것 보다 나와 시내에 외출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이가 이젠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해도 친구랑 노는 것을 택한다.

저 혼자 집에 있는 것도 괜찮고,

내가 밤 늦게 마을 일 때문에 집을 비워도 아무렇지도 않다.

반갑기도 하고 낮설기도 하다. 열살이면.. 그래.. 어린 나이가 아니다.

아주 살짝 10대의 냄새가  나는 느낌 이랄까.

내복도 싫어하고 치마도 어느샌가 잘 안입게 되었다.

부쩍 맵시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여전히 만화를 좋아하지만 어른들이 보는 인기 드라마도 알고 싶어한다.

위로 열네살 큰 아이가 있다보니 두 여동생들은 늘 어리게 보였는데

생각해보니 열살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개성과 고집과 취향이

조금씩 두드러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하루 하루 사내로 변해가는 아들 못지않게

하루 하루 훌쩍 낮설어지는 딸 아이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늘 '어린 동생'이라고만 여겼던 내 사고 체계도 다시 재편하고 있다.

 

덕분에 '빅뱅'의 '지드래곤'에 편중되어 있던 내 관심도

딸 아이를 따라 '트와이스'의 '우아하게'라는 노래로 넓어지고 있다.

여자 아이돌에겐 늘 인색했는데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후렴구를 따라하게 된다.

3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면 방송댄스를 배울 딸 아이의 공개수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9년을 키웠지만 내가 잘 몰랐던 딸 아이의 모습이 설레고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 나왔지만 항상 새롭고 궁금하게 하는 아이들이어서

그래.. 그 맛에 애를 키운다. 그 맛에 육아가 질리지 않는다.

 

딸 아이의 변신... 응원한다. 진정으로..

너무 오랫동안 엄마에겐 착했던 딸이었으니 이젠 네 세상에서

조금 더 아이답게 명랑하고, 발랄하게 즐기기를 바랄께.

응원하고 사랑한다.. 둘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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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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