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난 옷, 훌러덩 벗어 놓고 학교 간 큰 아이 옷을 개키며 여섯 살 둘째에게
'니가 자고 일어난 옷, 엄마처럼 이쁘게 개켜서 침대 옆에 올려 놔' 일러 두었더니,
잠시 후에 들어간 안방 침대옆 탁자위엔 내가 개켜 놓은 옷 옆에, 윤정이가 개켜 놓은 잠옷이,
그리고 그 옆에 세 살 이룸이가 제 옷을 개켜서 올려 둔 것이 보였다.
윤정이는 엄마가 한 대로 제 옷을 개켜 올려 놓았을것이고, 이룸이는 언니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해 놓은 모양이다.
아직 어려서 이런 일을 하게 한 적은 없는데, 엄마가 한 대로, 언니가 한 대로 열심히
흉내내다 보니까제법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다. 머리속으로 먼저 한 사람의 손동작과 순서를
기억했다가 제 스스로 따라 하고 있는 이룸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기특하다.
개켜져 있는 세 벌의 옷을 보고 있자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배움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앞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내 몸과 마음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 보는 일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은 매일 수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줘야 하니까 말 해줘야 아니까 이런 저런 얘기들을
안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엄마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도 도무지 나쁜 행동은 고쳐지지 않고, 좋은 행동도
잘 심어지지가 않는다는 불평, 나 역시 매일 하는 얘기다. 왜 그럴까.
정답은 하나다.
아이들은 부모의 '얘기'를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주 하는 행동, 반복하는 행동은 아이가 배우기 쉽다. 부모가 보여주지 않으면서 아이로 하여금
그 행동을 하게 하는 일은 정말이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늘 제 방을 어지르고 도무지 정리할 줄 모르는 큰 애를 야단치며 '아무리 얘길해도 소용이 없어'하고
불평을 했더니
'애들이 왜 이렇게 정리할 줄 모르는 줄 알아? 당신이 정리를 잘 안하잖아.'하는 남편의 얘기에
머리를 얻어 맞은 것 처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구나. 내가 정리를 잘 안 하는 엄마였던 것이다.
집안 곳곳에 탁자 비슷한 곳에는 여지없이 갖가지 물건이 쌓여 있다. 차근 차근 분류해서 정리해야지..
늘 생각은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바쁜 생활속에서 이런 계획은 쉽게 잊혀져 버린다. 늘 그런식이다.
언제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안이 아니니 아이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물건이나 옷들을
쌓아둔다. 제자리를 찾아주라고, 정리하라고 폭풍 잔소리를 하며 난리를 쳐도 시늉만 할 뿐 며칠 지나면
또 제자리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반성해서 하루 꼬박 집을 그림같이 정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역시 이틀을 못 갔다.
그림같이 말끔하게 정리하기엔 돌아다니는 물건들이 너무 많고, 집은 너무 넓고, 나는 너무 바빴다.
물론 핑계다. 매일 반듯하게 정리하는 습관이 내게 없는 것이다.
앉기만 하면 읽을 것을 먼저 찾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그 음식을 먹으며 읽을 책을 찾는 것도
아이들은 나와 똑같다. 뒤죽박죽 어수선한 필규의 가방 속은, 애들 물건과 영수증과 이런 저런 잡동사니로
늘 정신없는 내 가방 속과 똑 같다. 이런 이런...
얘들은 도무지 왜 이럴까... 한숨이 나온다면 우선 나부터 돌아봐야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삶으로, 일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동생에게 너그럽기를 바란다면서 정작 나는 남편에게 너그러운 아내인지, 힘든 것도 잘 참아내길 바라면서
나는 늘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은 아닌지.. 늘 신발들로 어지러운 현관 좀 정리하라고 잔소리하면서
나는 신을 벗을때 정성껏 단정하게 벗고 들어오는지..
타인의 잘못은 눈에 잘 띄는 법이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깨닫는데는 늘 서툴면서 말이다.
글을 쓰면서 이 컴퓨터가 올려져 있는 책상을 쳐다 보니 할 말이 없다.
컵이 세개나 놓여 있고, 가방에서 꺼낸 영수증 다발에 필기구가 흩어져 있고 겹겹이 쌓여 있는 책들이며..
이러고도 나는 아이들에게 책상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으니..
배움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을 가장 크게 움직이다.
매일 변함없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 울림이 더 클 것이다.
나는 과연 매일 아이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있는 것일까.
어지러운 책상 앞에서 괜히 맘이 죄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