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jpg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나도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땅을 일구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을 하고

어쩌고... 하는 낭만적인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기적처럼 마당과 텃밭이 딸린 언덕위의 2층집이 나타났을때 나는 내 오랜 바램에

하늘도 감복해서 이런 집을 주셨구나...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

겨울에 이사와서 혹독한 추위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반쯤 나갈 무렵 맞이했던 첫 봄..

아... 심지도 않았는데 사방에서 돋아나는 푸른 것들이라니...

민들레, 꽃다지, 질경이, 이름모를 풀 한포기까지 모두가 다 사랑스러웠다.

드디어 나도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이 살게 되었구나... 덩실 덩실 춤이라고 추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푸른 초원위의 현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랑스럽던 풀들은 무섭게 자라났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때는 한 뼘 흙이 있는 곳엔 어디나

풀들이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갓 돋아나기 시작할때 풀들은 마치 잔디처럼 이쁘게 보였다. 그러나 자라고

또 자라나는 풀들은 집을 순식간에 밀림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말 밀림이었다.

가시가 있는 식물들은 조심하지 않고 뛰어 다니는 내 아이들 살갓을 사정없이

긁어 버렸고, 우거진 풀 아래엔 온갖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어설프게 시작된 텃밭 농사는 더디에 자라는 모종들보다 왕성하게 커 가는

풀들이 주인같았다.

 

풀이 좀 있으면 어때... 자연속에서 사는데 그 정도 감수해야지... 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풀 숲에서 뱀을 만난 후에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뱀이 있었다.

닭장 앞 풀 숲에 있었다. 알을 꺼내려고 닭장문을 여는데 내 발밑에서 갈색의

긴 끈같은 것이 스르르 움직여 사라지는 것을 보고 몸이 다 얼어 붙었다.

 

마당에 아이들이 즐겨 노는 나무 아래 그늘에서도 1미터는 되 보이는 꽃뱀과

마주쳤다. 언덕길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고구마밭으로 넘어가는 초록뱀을

보기도 했다. 사방에서 뱀이 나타나고 있었다.

 

풀, 풀이 자라는 곳은 모두 뱀이 들어가 앉아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오고 가는 곳 만큼은 풀이 없어야 했다. 뱀을 멀리서 보면 기척을 내서

쫒으면 되지만 풀 숲에 있는 뱀을 밟거나 하게 되면 물릴 수 도 있으니 말이다.

게으르게 풀을 바라보던 나는 정신없이 풀을 뽑게 되었다.

 

풀밭 4.jpg

 

올 여름은 풀 뽑기가 정말 정말 어렵다. 비가 드믈기 때문이다.

마른 땅의 풀은 좀처럼 뽑히지가 않는다. 땅 속의 물기를 따라 있는 힘을 다해 뿌리를

내린 것들이라 어지간히 힘을 주어도 뽑을 수 없다. 호미로 파도 쉽지 않다.

천상 풀은 비 내린 다음날 뽑아야 한다. 땅이 촉촉히 젖어 있을때 호미로 살살 파가며

쏙쏙 뽑아내야 뿌리까지 뽑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온다.

작물들은 시들어 가고 진딧물은 창궐을 하는데 풀은 가물어도 생생하게 변함이 없다.

흙먼지로 범벅을 하며 풀을 뽑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지난 주말, 이틀이나 내린 비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말로 표현할 수 가 없었다.

 

비 지난 다음날은 일이 있어 종일 집을 비웠다가 드디어 어제 이른 아침 여섯시 반

부터 풀을 뽑기 시작했다.

먼저 언덕길 가장자리 풀을 뽑고, 아이들이 토마토 따러 드다드는 아랫밭 풀을 맸다.

호미로 땅을 뒤집어가며 뿌리까지 뽑느라 땀을 한 말은 족히 흘렸다.

뽑은 풀들은 흙을 털어 다시 땅 위에 덮어 주었다. 그래야 풀이 덜 난다.

 

풀밭 2.jpg

 

호박넝쿨을 감아 오르는 환삼덩굴들도 거둬냈다. 장갑을 끼고 하는데도 손목에

생채기가 났다.

고구마밭과 팥 밭도 맸다. 비로소 팥 모종들이 구분이 된다. 콩 밭 풀도 뽑았다.

 

풀밭 3.jpg

 

그래도 안 뽑은 풀들이 더 많다.

윗 밭 입구는 무성한 풀밭이 되어 버렸다. 얼마전에 해치 집을 이쪽으로 옮겼는데

풀 모기들 극성에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빨리 풀을 다 뽑아 주어야 한다. 해치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다.

남들은 제초제를 뿌리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나는 제초제는 커녕

어떤 농약도 쓰지 않는다.

낫질이라고 잘 하면 도움이 되련만 얼뜨기 농삿군인 나는 낫질을 하지 못한다.

예초기도 있지만 남편만 쓸 수 있다. 난 겁이 나서 못 쓴다.

남편은 주말이나 되야 시간이 난다.

그러니 천상 손으로  애써가며 뽑아야 한다. 윗밭은 풀모기들이 극성이라

긴 옷을 입고 가도 얼굴로 사정없이 날아드는 모기들때문에 작업이 어렵다.

풀과의 전쟁에 지친 남편은 심지어 염소를 기르자고도 했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지만 이해가 간다.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땅들은 몇 백평도 넘는다. 게다가 마당은 바로

산자락과 이어져 있다.  언덕위에 있는 우리집은 사방 비탈도 몽땅 풀들로

덮여 있다. 매일 뽑는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집에 있어도 글을 쓰네 어쩌네

바쁘고 수시로 애들 학교며 마을 모임으로 집을 비우는 나는

풀 뽑을 시간도 별로 없다.

새벽에 일어나  뽑으면 되겠지만 더위로 체력이 딸려 애들 뒷바라지도

허덕이고 있으니 부지런한 농삿군 코스프레는 가능하지도 않다.

 

그리하야...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뒷마당을 나는 겁에 질려

내려다 보고만 있다.

저 밀림 속에 분명 상추밭과 머위밭이 있었을텐데...

지금은 온통 뱀들이 우글거리는 수풀로만 보이니 어쩌면 좋을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았던 부부도 날마다

풀을 뽑느라 지치고 힘들어 부부싸움 그칠 날이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님과 함께 뽑아도 뽑아도 풀은 드세게 자라났을 것이니

나중엔 풀 안 뽑아도 되는 도시의 아파트를 꿈 꾸지 않았을까..

 

나는 풀 뽑을 생각은 안 하고 저 푸른 초원위에 살았을

부부를 걱정하느라 되지도 않는 소설만 써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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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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