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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3박 4일간의 먼나들이를 떠났다.

강원도 홍천이니 꽤 먼 곳이다.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는 1년에 두 번 3-4일간의 먼 나들이가 있다.

일종의 수학여행이다.

열한 살인 아들은 엄마와 떨어져 자는 것을 지금도 아주 아주 싫어한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자고 오는 일도 당연히 없다.

좋아하는 사촌형아네도, 할머니 집에서도 엄마와 함께가 아니면 저 혼자

자고 오는 일은 없다. 늘 엄마와 함께다.

주변에서는 너무 엄마를 찾는거 아니냐고, 이렇게 큰데도 여전히 엄마 타령이냐고

나무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규의 엄마사랑은 변함이 없다.

어제는 웬일인지 침대에서 아빠와 둘이 자겠단다.

늘 침대 아래에서 내 옆에 붙어자던 녀석이 3박 4일간의 여행을 앞두고

아빠와 자겠다니 웬일인가 싶었는데

'엄마랑 자면 먼나들이 갈때 엄마 생각이 더 난단말이예요' 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하... 그렇구나..

 

아침에 아들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서도 내내 내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다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끝내 모자를 얼굴 아래까지 푹 눌러쓰고 내 눈길을 피했다.

얼굴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버스 밖에서도 볼 수 가 있었다.

펑펑 울고 싶은 것을 친구들과 선생님, 다른 엄마들 앞이라 애써 애써 참고 있는 것이다.

'엄마, 오빠 우나봐요'

일곱살 큰 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도 좀 슬픈 모양이었다.

'그러게... 오빠가... 힘들겠다'

 

창문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손 내밀어 제 엄마 손을 잡아보고, 다른 엄마들에게도

손을 흔드느라 야단스러운 버스 안에서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일을

겪어내는 듯 했다. 버스가 떠나기전 이름을 불렀더니 눈물이 번진 붉어진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버스는 떠났다.

나도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눈물이 참 많았다.

'헨델과 그레텔'을 읽으면서도 울었고,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죽을때도 펑펑 울었고

'고녀석 맛있겠다'라는 그림책과, '강아지똥'을 읽을때에는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다.

영화를 같이 보면서도 참 많이 울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펜텀이 크리스틴을 향해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케스트어웨이'를 볼 때는 무인도에서 살아온 주인공의 애인이

다른 사람과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알았을때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에서 키운 개가 죽었을때 필규는 며칠을 울었다.

지금도 그 개 얘기만 나오면 울컥한다.

길에 떨어져 있던 아기새를 며칠 돌보다가 끝내 죽었을때도 필규는 오래 오래 울었다.

 

 필규 7.jpg

 

사내아이가 너무 눈물이 많은게 아니냐고, 마음이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하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남자의 눈물에 대해 부정적이고

인색하다.

 

그러나 나는 아들의 눈물을 사랑한다.

작은 떨림에도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그 섬세하고 보드라운 마음결을 사랑한다.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기에 나는 아들의 마음을 안다.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영화를 보면서, 혹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우린 울컥해서

함께 운 적이 정말 많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표정만 봐도 마음속에서 일고 있는 떨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들을 키우면서 우는 것에 대해 나무란적은 없었다.

같이 운 적이 더 많았다.

 

아들은 감정을 절대 감추지 않는다.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속상하고, 아쉽고

떨리고, 벅찬 기분을 그대로 다 표현한다. 그래서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도 화가 더 날때도 있었지만 감정을 감추고 속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표현이 없어 무슨 기분인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남편보다

불같이 화내고, 열렬하게 기뻐하고, 크게 슬퍼하는 아들이 더 좋다.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으로도 어른들이 앓고 있는 병의 절반은 없어지지 않을까.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안 슬픈 척, 상처 안 받은 척, 화나지 않은 척 하느라

마음이 다 문드러져 가고 있는 모습을 대할때마다 우리도 때로는 아이처럼

기쁠때 기뻐하고, 슬플때 슬퍼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들과 함께 보낸 많은 시간속에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기뻐하고, 열광하고

혹은 마음아파 하던 수많은 추억들이 있다. 감정에 솔직한 아들이 있어

냐 역시 감출 것 없이 함께 내 감정을 표현해 가며 살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많은 것이 약한것이 아니다.

잘 우는 사람이 오히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좀 더 눈물이 많아져야 이 사회가 좀 더 인간다와지지 않을까.

 

눈물 많은 아들이 멀리 여행을 떠났다.

가면 재미나게 잘 놀겠지만 그래도 잠자리에 들때는 또 엄마생각 하며

눈물 지을지도 모른다.

눈물 많은 아들과 같이 울고 웃으면서 나도 기쁠땐 기뻐하며

슬플땐 슬퍼하며 펑펑 울며 살아야지.

 

엄숙하고 세련된 어른보다, 철 없어 보이지만 큰 소리로 울고 웃는

그런 아줌마로 살아가고 싶다.

 

아들아, 보고싶다.

금요일에 기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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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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