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 초반의 한 부부가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서울, 화려한 삼성동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에 그을려 새카만 얼굴, 두 달 사이 부쩍 마른 몸으로 기자들 앞에서 호소문을 읽는 남자, 살면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송전탑 관련해서 마이크만 잡으면 눈물이 쏟아진다는 그는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씨다.
오늘 하루, 그가 호소문을 읽는 것을 세 번 봤는데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우리 진서 (여섯 살 막내아들 이름)...' 에만 가면 늘 감정이 북받쳤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다음 말을 이어가지만 속으로는 계속 엉엉 울고 있었다.
영문 모르는 듯 뛰어놀던 진서도 아버지 따라 울음이 터졌다.
네 아이의 엄마인 박은숙씨는 기자회견 내내 피켓 뒤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꾹꾹 눌러 참으려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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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사람들을 처음 만난 것은 두 달 전, 한창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열흘간 시댁에 내려가고 서울에서 혼자 놀다 보니 나에게 찾아온 이 ‘휴가’를 뜻깊게 보내고 싶어졌다. 뭘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불현듯 ‘밀양’이 떠올랐다.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5월, 76만 5천 볼트 고압 송전탑 건설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 밀양의 산골 마을 소식이 전해졌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공권력에 맞서 맨몸으로 싸우는 장면, 힘센 장정들에게 끌려 나오고,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장면은 처참했다. 그전에, 2012년 1월에는 어르신 한 분이 분신을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도 했다. 내 나이 마흔, ‘행복한 노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요즘, 노인들의 처절한 모습은 지켜보기 불편했다. 그리고 한편, ‘이분들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몸을 던져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한때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꿈꿨던 나, 이런 생각으로 할매들의 사연을 사진에 담겠다고 밀양을 찾았다.

 

3박 4일 동안 밀양에 머무르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밀양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보상을 잘 해주면 되겠지, 전기는 필요하니까.’라던 생각이 크게 변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내가 알게 된 송전탑의 진실을 알리고 싶어 오마이 뉴스에 사진과 글을 기고했다. (밀양 송전탑에 관해 궁금하신 분들은 오마이뉴스 기사를 찾아봐 주시길. 세 편으로 나누어 썼는데 특히 3편은 원자력, 우리 아이들에게 큰 재앙이 될 원자력에 대한 내용이라 부모들이 보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회씨 부부는 창원과 부산에 살다가 밀양에 귀농한 지 11년 되었다고 했다. 친환경 유기 농사를 짓는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한낮 땡볕에도 잡초와 씨름하느라 무척 바빴다. 그러면서 여섯 살, 열 살, 열네 살, 열일곱 살, 네 명의 아이를 챙기느라 붙잡고 이야기를 청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바지런한 손길로 잘 가꾸어진 텃밭과 논, 건강한 소들이 보기 좋아 염치불구하고 오래 머물렀다. 여섯 식구 단란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페이스북에 밀양 사진을 올렸을 때 그 가족사진의 인기가 좋았다.
부부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이고 막내 진서가 해람이와 동갑이라서 더욱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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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 광화문 앞에서 미스코리아까지 동원하여 대규모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벌였다던 그날부터, 밀양에서는 한전이 경찰을 앞세우고 공사를 강행하려 해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이 노숙을 하고 끌려나가고 쓰러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 속의 그들은 이제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쇠사슬로 몸을 묶은 할매, 몸싸움하다 실신한 어르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 깻단 묶으며 손주 대학 등록금 대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은퇴하고 나서 전원생활 즐겨보려다 세상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던, 송전탑만 아니면 고추 따며 이래 재미나게 살 수 있다고 호탕하게 웃었던 그분들이 있었다.

밀양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안타까운데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괴로웠다. 송전탑 지어지면 그 밑에 들어갈 테니 묻으라고 했던 어느 할매의 이야기가 떠올라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 김정회씨 가족이 단식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송전탑 반대 대책위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공사방해죄로 경찰에 잡혀간 적이 있는 그가, 이제는 공사 현장에만 나타나도 경찰이 잡아갈 듯 달려들어, 할 수 있는 것은 ‘단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과 함께 단식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상경하여 오전 열한 시 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유치원, 학교에 보내놓고 삼성동 한전 앞으로 달려갔다. 기자들보다 일찍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아루 학교로 달려가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보고 오후 늦게 아루, 해람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김정회씨 가족을 찾아갔다.
경찰이 농성장 천막도 못 치게 해서 아이들과 다 같이 트럭에서 잔다고 한 게 마음에 걸렸다. 집에서 멀지 않으니 안되면 아이들만이라도 우리 집으로 데려올까 싶었다.
가보니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의논한 결과 한전 앞에서는 농성이 불가능하여 대한문으로 이동하기로 했단다. 대한문 앞 미사에 따라가기로 해서 지하철을 탔다. 원래는 녹색당 활동가와 함께 택시를 타기로 했다가 계획이 바뀌어 우리만 지하철을 타게 됐는데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보니 해람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실은 엊그제 사촌들과 에버랜드에서 무려 열 시간 넘게 놀고 난 뒤라 모두가 피곤했다.
그냥 집으로 갈까 싶었지만, 녹색당 활동가 가방을, 함께 택시 타는 줄 알고 챙겨와서 어쩔 수 없었다.
퇴근 시간 혼잡한 2호선에서 아이들이 가까스로 자리를 얻어 앉았고 배고프다고 빵을 먹었다. 해람이가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어 삼키는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토하기 시작했다. 황급히 빵 봉지를 입에 대었고 다행히 옷도 안 버리고 잘 처리했는데 지하철역 두 개를 통과하는 내내 조그만 몸뚱이가 요동을 치며 뱃속에 있는 걸 모두 토해냈다. 구토가 멈추자마자 다음 역에 내려 물티슈를 사서 입을 닦아주고 토사물이 들어 있는 봉지를 처리하고 다음 열차를 탔다. 해람이가 축 처져 내게 기대더니 잠이 들었다.
가까스로 시청역에 내리긴 했는데 잠든 아이를 업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가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가방을 전해줄 방법을 의논하려는데 마침 해람이가 깨어났고 가방을 전해주고 어디서 좀 쉬었다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대한문 앞에 도착하니 마침 미사의 마지막 순서, 김정회씨가 호소문을 읽기 시작했다. 다소 기운을 차린 아이들과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가방을 전해주었다.
맨밥에 김치! 가 먹고 싶다는 해람이 바람대로 콩나물 해장국집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몇 숟가락 먹더니 이번엔 화장실에 가서 모든 걸 쏟아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시청 앞 광장의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려 구경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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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달리기는 빨리 못 달려도 이럴 때는 행동이 참 빠르지?
달리기 잘하면 1등, 2등, 손목에 도장을 받지만, 그게 뭐 중요해? 달리기 암만 빨라도 이럴 때 빨리 잘 못하면 엄마 힘든데 도와줄 수 없잖아?
해람이가 지하철에서 토했을 때 아루가 재빨리 나를 도와 짐을 챙겨 내리며 말했다.
해람이가 어렸을 때 팔이 빠져 자지러지게 울 때도 침착하게 반찬 통에 동전 넣어 마라카스 만들어 흔들어주던 아이, 우리 셋 늘 함께 다니며 다급한 일이 생기면 제 몫을 알아서 잘 해내었던 아루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루야, 해람아, 오지랖 넓은 엄마 따라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힘든 하루였지만, 이 역시' 아름다운 하루'임을 일깨워줘 고맙다.

 

이불에서 뒹굴고 싶다는 아루의 소원대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두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집, 우리집이 참 좋구나...
누워서 생각하니 집 놔두고 서울에 올라와 단식하는 김정회씨 여섯 식구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김정회씨 아이들은 천주교, 활동 단체에서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단란한 이 가족에게, 어린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 남기지 않고 일이 잘 해결 될 수 있기를, 이들이 따뜻한 자기 집에서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기를!

 

PS 초딩 1학년 공개 수업은 재미있었다. 수업 주제가 윤석중 시 '달'(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에 관한 것이었는데 추석에 보름달 보며 무슨 소원 빌었냐고 선생님이 물었더니 아이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고 '부자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조금 씁쓸하고 슬펐다.


<765kv 송전탑 반대 가족단식을 하며 정부에 드리는 호소문>

저는 41세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정회입니다.

십여 년 전에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다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것이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 살리는 농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재배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하여 열심히 하늘과 땅만 쳐다보고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이럴 때 하는 말인 것인지, 나라가 원하는 세금 한 푼 빼먹지 않고 열심히 냈고, 나라에서 원하는 다자녀 정책에도 동참하여 4명의 자식을 두어 아름다운 밀양 땅 동화전 산골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닥쳐온 시련이 있었습니다. 왜 765kv 송전탑이 집 앞으로 지나가야 하는지, 과연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힘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손톱이 닳도록 흙을 파서 만든 전 재산과 건강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지, 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민이 주인이라 하던데 주인이 원하지 않는 공사를 왜 공권력이라는 폭력을 동원해서까지 하려 합니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행복할 수 있도록 공사를 해야지 한 명이라도 불행하게 하는 공사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밀양765kv 송전탑 공사를 재검토해 주십시오.

산자부 장관님이 내려오셔서 한 말씀과 국무총리님이 내려오셔서 한 말씀이 ‘밀양 주민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아름다운 양보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밀양 4개면 52개 철탑 밑에서는 우리 부부, 할머니, 할아버지들,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또 양보해야지요.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겨울바람을 이기고 올라오는 새싹보다 더 약하고 어린 우리 6살 진서가 거대한 765kv송전탑 밑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것입니다.

차라리 나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으십시오. 절대로 저 어린 생명을 765kv송전탑 밑에서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발 765kv송전탑을 핵발전을 멈추어 주십시오.

2013년 10월 2일
 밀양 765kV 송전탑 경과지 동화전 마을 김정회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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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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