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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은 1남 5녀다.
딸이 내리 다섯이고 막내가 남동생인데 나는 그 중 셋째딸이다.
친정아버지가 종가집에 독자이신 탓에 늘 딸만 줄줄이 낳아서 어쩌냐는 친지들의
염려를 듣고 자랐지만 결혼하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내게 득이 되는 일인지 깨달았다.
내 아이들에겐 무려 네 명의 이모들이 있는 것이다.

 

내 아이 뿐만이 아니고 친정 조카들에겐 모두 네 명의 이모들이 있다.
이 '이모'란 존재는 참 특별하다. 고모도 있고, 외삼촌이나 큰 엄마도 있지만
이모만큼 아이들에게 친밀하고 편하지는 않다.
모계로 연결되는 끈끈한 핏줄 탓인지 내 자매의 아이들이란 내겐 정말 자식같이 느껴진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쌍둥이 자매가 첫 아이를 낳았을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고물거리는 그 어린것을 보기 위해서 나는 주말마다 용인까지 달려가곤 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두말 않고 도와주었다. 아이들때문에 힘들고 바쁜
그녀가 늘 안스러워서 뭐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쓰곤 했다.
결혼전이어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운동회에도 따라가 달리기를 응원하고
신혼때도 이모를 좋아하는 어린 조카들을 며칠씩 집에서 재우기도 했다.
그녀석이 벌써 중학교 3학년인데 친정 자매들에겐 여전히 소중하고 자랑스런 조카다.

 

늦게 결혼을 해서 줄줄이 세 아이를 낳았더니 나 역시 늘 손이 아쉽고 고단했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과천의 큰 언니네 집에 자주 놀러갔다. 나 대신 아이들과 놀아주는
언니 옆에서 쉬기도 하고 힘도 얻곤 했다. 용인에 있는 쌍둥이네는 아무때나 놀러가곤
했다. 맛난 반찬 내 놓으라고 요구하고 사촌형들이 내 아이들과 놀아주는 집에서
맘 놓고 쉬다 왔다. 친정 자매가 아니었다면 절대 그렇게 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자매들 모두 결혼을 해서 같이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옷도 물려 입고 책도 돌려 읽고
왕래도 자주 한다. 자기 아이처럼 이뻐하는 이모들이 네 명이나 있는데다 이모마다
개성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이 아이들에겐 엄마와 또 다른 애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주말을 이용해 새로 이사를 한 쌍둥이 자매를 만나러 경기도 양주에 다녀왔다.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아들만 둘 둔 그녀는 큰 아들이 중 3, 막내가 6학년이니
손을 타는 어린애들이 없어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을 퍽이나 이뻐한다.
게다가 딸이 없다보니 윤정이와 이룸이는 정말 많이 아껴준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그녀를 둘째이모라고 부르는데 이모들 중에서도 제일 좋아한다.
워낙 유머가 넘치는 말투에 멋도 잘내는 이모는 두 아이들만 가면 화장품이며
장신구들을 몽땅 꺼내어 만지게 하고 예쁘게 꾸며주며 아이들을 기쁘게 한다.

 

딸들이라 그런지 반짝거리는 것도 좋아하고 화려한 것들도 좋아하는데
나는 워낙 그런데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엄마 물건은 뒤지는 재미도, 꾸미는
재미도 없는 반면 이모집에만 가면 구경하고 만져보고 직접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홀딱 반하는 것이다.

 

  이번엔 둘째 이모가 일곱살이 된 윤정이를 공주처럼 꾸며 주었다.
머리엔 그루프를 말아 굽실 굽실하게 컬을 넣어주고, 화장품 도구를 꺼내
이쁘게 화장도 해 주었다. 손가락엔 색색의 메니큐까지 발라주니 두 딸들이
너무 좋아한다.

 

이모네집 2.jpg

 

윤정이보다 이런 것들을 더 좋아하는 이룸이는 이모의 메니큐어 셋트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손가락마다 다른 색으로 칠하고는 정말 좋아했다.
빨리 빨리 자라서 이모랑 같이 미용실도 다니고, 화장품 쇼핑도 다니자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바람을 잔뜩 넣어 준다. 아마 정말 그럴 것이다.

 

필규는 두 살 위인 사촌 형아와 함께 만화책과 TV를 실컷 보고 책도 잔뜩 얻었다.
조카들 좋아하는 맛난 음식도 해주고, 아이들 작아진 옷도 챙겨주니 더 고맙다.
저녁까지 얻어 먹고 작은 차에 가득 물려받은 물건들을 챙겨 밤길을 돌아왔다.

조카들 역시 맘 놓고 뛰고 자연속에서 놀 수 있는 우리집을 좋아해서
자주 놀러 오니 서로 돕는 셈이다.

큰 이모는 만날때마다 두둑한 용돈으로 아이들을 신나게 하고, 막내 여동생은
가장 젊은 이모로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연예계에 정통하니 또
인기가 많다. 넷째 여동생은 머지않아 미국에서 자리잡을 듯 해서 언젠가
이모덕에 미국 여행을 해 볼 지도 모르겠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다 다르지만 똑같이 아이들을 이뻐하고 아끼는
네 명의 이모들이 있어 내 아이들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가며
자라고 있다. 나 역시 내 조카들에게 넉넉하고 좋은 이모가 되고 싶다.

서로 가까이에 살아서 자주 만날 수 있고, 서로 힘들때 기꺼이 손 내밀 수 있고
도움 줄 수 있으니 살아갈 수 록 친정자매들이 든든하고 미더워진다.

나도 딸을 둘 두었으니 그 딸들의 아이들도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셈이다. 이모도 있고 외삼촌도 있으니 정말 큰 복이다. 어느 재산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것을 아이들에게 주었구나.. 뿌듯한 맘이 든다.

자랄때는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나이들어 갈 수록  가장 의지가
되고 마음이 가는 것이 친정 자매들이다. 이젠 서로의 아이들이 형제 자매가
되어 함께 자라난다. 엄마의 마음으로 조카들을 챙겨가며 서로의 삶을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생각할 수 록 고맙다.

 

이다음에 이다음에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우리끼리 여행도 다니고
공연도 보러다니자고 약속하곤 한다. 서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의지하며 함께 나이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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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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