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집에서 우리반 1박 2일로 MT한대요. 선생님도 같이요. 해도 돼요?'
며칠전 아들녀석은 학교에서 불쑥 전화를 걸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말이야 묻는 거지만 엄마야 당연히 허락할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투다.
'그래, 알았어'
물론 나는 뜸 들일 필요 없이 바로 오케이 했다.
안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집도 넓고 잠 잘 곳도 충분하고, 무엇보다 겨울 이부자리도 넉넉하니 상관없다.
일반 학교에서 한 반 아이가 몽땅 온다면 경악할 일이겠지만 아들이 다니는
작은 대안학교에서 아들이 속한 3학년은 고작 일곱명이다. 담임까지 와도
여덟명인데 우리집엔 평소에도 열 다섯명 잘 이부자리는 늘 준비되어 있다.
결혼 10년 동안 최소 1년에 한 두 차례는 그 정도 인원의 1박 2일을 치루어온
역사가 있다보니 기껏 일곱 여덟명이야 아주 가뿐하게 느껴졌다.
신도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부부 둘이 살만한 단촐한 살림만 장만하고
시집온 내게 첫 집들이는 시댁 식구들이었다.
강릉에 사시는 시부모님과 구미에 사시는 큰 형님네, 춘천에 사는 동서네가
모두 모이다보니 당연히 1박 2일 집들이였다. 게다가 시어머님은 아들이 없어
며느리 효도를 받아볼 수 없는 주문진 시이모님 내외와 서울에 있다는
이모님 자손들까지 부르셨다고 했다. 전화 말미에 어머님은
'새아가야, 손님들 덮고 잘 이불하고 베개는 다 있지?'하셨다.
기겁을 해서 동서에게 전화를 해 보니 시댁 가풍은 가족의 대소사에
전 가족이 모두 모여 1박 2일로 참여하는것이 전통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원룸에 살때부터 온 식구 잘 이부자리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집들이 메뉴에 골몰하다가 부랴부랴 이부자리부터 사러 뛰어 다녔다.
방 2개 뿐인 주공아파트에서 결혼 후 첫 집들이를 시댁 식구 열 다섯명을
1박2일간 대접하는 것으로 치루어 냈다.
음식이며 이부자리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한 일주일은 소화불량으로
지내야 했다.
결혼 후 이듬해에 첫 아들을 낳고 돌 잔치를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우리집을 사고 집들이를 할 때는 신랑 회사 직원들의 1박 2일도
치루어 냈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더 잦아졌다.
일단 장소가 넓고 마당도 있다보니 각종 모임 장소로 그만이었다.
신랑 동료들, 친척들, 지인들을 초대해 하루 자면서 놀고 먹고 했다.
그 사람들 음식 대접에 이부자리 수발은 다 내 몫이었지만
하다보니 이력이 생겨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넓은 집에서 마음껏 뛰며 놀고 싶은 아들 친구들도 자주 왔고
말처럼 날뛰는 조카 녀석들은 주말마다 달려왔다.
가끔은 귀찮고 힘들기도 했지만 집에 사람이 오면 누구보다
내 아이들이 즐거워 하니 엄마로서 그제 제일 좋았다.
아들녀석은 저녁 메뉴를 스파게티로 정했다면서 집에 재료가 다 있다고
말했단다. 자주 해 먹기는 하지만 여덟명에 우리 식구까지 먹을 재료가
있을리 없지만 내색 안하고 넉넉히 장을 봐 왔다.
토마토를 세 봉지 사오고 버섯과 야채, 면도 충분히 준비해서
반 친구들 오기 전에 두 시간 가까이 소스를 끓여 만들었다.
1층 반 세칸과 넓은 거실, 주방까지 폭풍 청소를 했음은 물론이다.
아들은 친구들과 신이 나서 달려왔다.
친구들은 온 집안을 뛰어 다니며 웃고, 책도 보며 즐겁게 놀았다.
내가 준비한 스파게티를 아이들과 함께 상에 차려 맛있게 먹고
설걷이는 여자 친구들과 선생님이 해 주셨다.
식사 후에는 재미난 크리스마스 영화도 보고 벽난로 앞에서
작은 촛불을 켜고 앉아 한 해 동안의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놓고 사실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곁에서 오랜 시간 관찰할 기회는 없었는데 덕분에 나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친구들 각각의 개성은 어떤지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밤 늦도록 소근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기분 좋게 일어나 큭큭 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모두
함께 등교를 했다.
1박 2일로 손님들을 치루어내는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집을 그만큼 좋아하고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기쁘긴하다.
내가 평생 이렇게 넓은 집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그러니까 이런 곳에 사는 동안 언제든 기꺼이 내 집을 개방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청해 즐거운 시간을 갖는거다.
늘 넓은 공간과 마당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또 멋진 일이 어디있을까.
다만 내 저질체력은 부지런히 관리해야 하겠다.
그나저나 이참에... 간이 숙박업이라도 겸해 볼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