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jpg

 

'애가 어쩌면 이렇게 귀여워요. 보고만 있어도 좋으시겠어요.'

 

세 살 막내 이룸이는 어딜가나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태어날때부터 이쁘장했던 이룸이는 자라면서 애교도 늘어 누구를 봐도 생글생글 웃는가하면
집에 온 손님 무릎에도 잘 올라가 앉는 천상 귀염둥이다.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좋아하고, 예능 기질도 세 아이중 단연 으뜸이다.
마흔에 낳아서 힘들긴 했어도 이렇게 깜찍하고 귀여운 막내 딸을 얻었으니 정말이지 불평하지 말고
잘 키워야 하는데....


이 귀염둥이가 벌이는 말썽 역시 세 아이중 으뜸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사내아이도 키워봤고, 위로 딸도 키워본 엄마니까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에 대해선 솔직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둘째가 워낙 순둥이 딸이었기에 동생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절대 아니다.

막내 이룸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백일 가까이 낮밤이 바뀌어서 나를 거의 죽다 살아나게 할 정도로
힘든 아이였는데 커 가면서 벌이는 장난과 말썽은 가끔 내 상상을 뛰어 넘는다.

둘째는 두 돌이 지나자마다 다 큰 아이처럼 말귀를 알아듣고, 엄마 말을 이해해서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셋째도 두 돌만 지나면
육아가 한결 수월해지려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룸이는 크면 클 수록 장난이 심해지고
고집도 세어져서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우선 궁굼한 것은 뭐든지 꺼내보고 만져보고 눌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오빠 언니도 낙서해 놓지 않은 모든 책에 이룸이는 벌써
제 흔적을 남겨 놓았다.
2층까지 다니며 벽에 그림을 그어 놓은 것은 모두 이룸이 작품이다.
연필이나 크레파스로만 그리는게 아니라 색이 나오는 모든 것으로 그림을 그려 놓는다.
내가 쓰는 이 책상만해도 색연필과 연필, 싸인펜, 심지어는 내 립스틱과 매니큐어로까지
그림을 그려 놓았다.


외출했다 들어와 잠시 가방을 거실에 놓아두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가방을 홀딱 뒤집어 놓는다. 물건도 얼마나 잘 숨기는지 얼마전엔 내 핸드폰을 제 장난감 가방안에 넣고 잃어버려서
방전된 핸드폰 찾느라 온 집을 뒤진 적도 있다.
최근에 새로 발급받은 제 언니 독서카드도 이룸이가 잘 넣어 두었다는데 아직까지 못 찾았다.
중요한 물건은 이룸이 손에 안 닿는 곳에 두어야 하는데 워낙 귀신같이 잘 뒤지고
잘 숨겨서 번번이 골탕을 먹는다.

 

얼마전엔 목욕탕에서 쓰는 신발들이 갑자기 사라져서 의아해 하다가 냉장고 채소 칸에 얌전히
들어있는 신발 두 켤레를 발견하고 기겁한 일이 있다.
부엌살림을 뒤지는 일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내가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고 있거나 2층 청소를
하고 내려와보면 냉동실에 있던 식재료들이 반쯤 녹아서 부엌바닥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다.
오목하게 생긴것에 물을 부어 놓는 일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집안 여기 저기에 이룸이가 흘려놓은
물을 닦는 것도 일이다. 아무리 야단쳐도 슬그머니 달려가 또 물을 받고 있다.
물을 너무 좋아해서 이다음에 수영을 시켜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미숫가루나 밀가루를 꺼내 온 집안에 가루를 흘려가며 다니질 않나, 식기장에 들어가 있는
그릇들을 꺼내 욕조에 넣어두질 않나, 요즘엔 아무때나 옷을 갈아 입겠다고 제 방에 들어가
옷장을 홀딱 뒤집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래서 목욕후에 외출용 두꺼운 바지를 입고
잠자리에 들기도 하고, 수시로 언니 속옷을 탐내어 언니와 싸우기도 한다.
이 닦는 것을 싫어해서 한 번씩 시키려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애를 잡아야 하고
오빠나 언니 물건도 제가 잡으면 제것이라고 우겨서 수시로 집안은 세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아수라장이 된다.

 

첫 돌만 지나면 살 것 같았다가, 두 돌만 지나면 수월해 지겠거니 했었는데, 이젠
머지않아 세 돌이 다가오건만 크게 달라질 것 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애를 먹이고 힘들게 하면서도 말은 얼마나 깜찍하게 하는지
내가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와, 이거 정말 멋있다. '고 어떤 물건에 대해 감탄하면
'내가 엄마한테 이거 사주께요. 떤물(선물) 해 주께요' 하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산책을 하면 꼭 풀꽃이나 낙옆을 주워서 '엄마 떤물이예요'하며 내 손에 쥐어주는 것도
늘 이룸이다.


힘들다, 무섭다, 피곤하다 얘기를 하면
'엄마, 내가 안아주께요. 내가 이렇게 엄마 지켜주께요' 하며 그 작은 팔로 나를 꼭 안아준다.
오빠 언니들과 나를 놓고 싸울때는 '우리 엄마는 내꺼야. 나도 엄마꺼야' 하며
필사적으로 내 품을 파고드는 것도 이룸이다.
내가  안 입던 옷이라도 꺼내 입으면
'엄마, 정말 이쁘구나요'하며 감탄해주고 좋아해주는 딸도 이룸이고,
가장 자주, 가장 오래 오래 내 뺨이며 입술에 입을 맞추어 주는 딸도 이룸이다.
막내 때문에 힘들다가도 막내 때문에 힘든 것이 사르르 녹아 버린다.

 

잔소리도 늘고, 내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눈을 흘기며 야단도 치고
안된다고 하면 '왜요?'를 끝없이 외치며 포기를 하지 않아 힘을 쏙 빼놓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품을 파고들며 '엄마 따랑해'를 속삭이는 막내 앞에서는
햇살아래 눈사람처럼 퍼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정말 건강해서 아파도 오래 가지 않고, 금방 털고 일어나고
지금껏 항생제며 해열제를 단 한번도 먹어본 일이 없으니
그저 고마울 수 밖에 없다.

 

막내야, 막내야..너 때문에 울고 웃는구나..
사랑하는 막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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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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