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반장도전 성공기.jpg

 

개학과 더불어 3학년이 된 막내 이룸이는 킹, 짱, 왕 대박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며

3학년 생활이 너무 너무 기대된다고 좋아했었다.

막내의 담임은 큰 딸 3학년때 담임이었던 남자 선생님으로 한예종에서 연극을 전공하신,

아동 연극 전문가이다. 큰 딸도 3학년 시절을 선생님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이번엔 이룸이 담임으로 만나게 되어 나 역시 기대가 크다.

"엄마, 나 반장 선거에 나가려고요. 후보로 등록했어요!"

개학하고 며칠 지나서 이룸이는 내게 이렇게 선언했다. 좋은 선생님과 시작하는 새로운 학년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더니 3학년때부터 뽑는 반장 선거에도 기꺼이 나가 반 대표로 활약해보고

싶은 마음으로까지 커진 것이다.

 

초등 2학년때 일반 학교를 나와 대안학교로 진학한 아들은 반장 선거를 경험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무리를 대표해서 책임을 맡는 일 자체를 아주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 남 앞에 서서 무언가를

주장하고 발표하는 일은 더 싫어했다. 대안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수많은 발표와 공연 경험을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권력은 악의 축'이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이다.

6학년이 된 둘째 윤정이는 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아이임에도 대표라던가 모임의

장같은 것에는 별 욕심이 없었다. 대표로 나서기 보다는 대표를 돕는 유능한 참모의 역할을 좋아했고,

잘했다. 아이마다 성향이란 이렇게 다르고 다양하다.

요즘에야 반장이라는 것이 성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어떤 학교에선 반 아이들 절반이 후보로

나가 서너표를 받는 아이가 반장이 될 만큼 선거 자체에 대한 특별함도 사라졌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 자치회 활동이 아주 활발하고 폭 넓어서 반대표가 되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내 아이도 반대표가 되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드디어 육아 16년 만에

막내가 그런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진심 반가왔다.

"저를 반대표로 뽑아준다면... 아니... 제가 반장이 된다면.. 어떤게 더 좋아요?"

이룸이는 아침을 먹을때마다 엄마와 언니에게 의견을 구했다.

후보로 등록을 하고 선거를 도와줄 친구 두 명도 구했으니 이제 후보로서 앞에 서서 자기를

소개하고 공약을 발표할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덕분에 나와 윤정이는 아침 밥상에서 이룸이의 연설을 코치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특히 선거 참모로 뛰어 본 경험이 있는데다 수년간 학생 선거를 지켜본 윤정이의 지도가 남달랐다.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반대표가 된다면 친구들을 잘 도와주겠습니다!"

"어떻게 도와줄건데?" 윤정이가 바로 질문을 했다.

"뭐라고?"

"도와준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잖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건지 내용이 있어야지.

그런 내용까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아이들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이룸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 음......예를 들어서..... ㄱ은 시력이 나빠서 계단을 잘 못내려 가요. 그래서 내가 그때마다

옆에서 책도 들어주고 손도 잡아줘요. 또 ㅎ은요, 이동 수업할때 교실을 잘 못찾아서요,

내가 같이 가주거든요. 그렇게 도와줄려구요.. 이렇게 하면 어때?"

"그럼 그런 내용을 담으면 되겠네"

"아, 알았다. 다시 해 볼께?

내가 반대표가 된다면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대표가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계단을 잘 못내려가는

친구가 있다면 옆에서 같이 내려가주고, 교실을 잘 못찾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찾아주겠습니다"

"공약을 할 때 무조건 내용을 줄줄 하지 말고, 첫째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둘째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구분해서 발표하면 아이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윤정이가 다시 거들었다.

"알았어. 다시 해 볼께. 내가 반대표가 된다면 첫째..."

이룸이는 언니의 조언대로 다시 고쳐서 또박또박 발표했다.

"그리고 반대표가 되면 학생자치회의에 참석하잖아. 그 때 반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를 대표회의에

가서 잘 전달해서 교장 선생님께도 전달이되고 잘 반영이 되게 하는일이 정말 중요해. 그러니까

그런 내용도 공약에 들어가면 좋지" 경험이 많은 윤정이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후보자들끼 토론회도 한단말야. 반 아이들이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해서 질문하기도 하고..

작년에 전교 회장 선거할때 어떤 후보에게 아이들이 만약 대표로 뽑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렇게 질문 했어. 그 이전까지 있었던 선거를 제대로 떠올렸다면 '제가 뽑히지 않는다면 제 공약을

당선된 팀에게 전달하여 반영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던가 최소한 당선된 팀을 잘 도와서 더 좋은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 뭐 이런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안되면 어쩔수 없습니다라고 말 하니까 아이들이

그 팀은 안 뽑았다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건지도 생각해봐야지"

"오오"

"마지막에는 그러니까 기호 00번 저 최이룸을 꼭 뽑아주세요!! 하고 강조하고.."

"역시!!"

윤정이의 날카로운 조언에 이룸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싸울때는 세상에서 제일 밉고 얄미운

언니였는데 새삼 언니가 자기보다 3년이나 먼저 선거를 경험하고 학교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 후로 매일 아침 밥상에서 이룸이는 밥 먹다 말고 발표를 연습하느라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부족한 점을 엄마나 언니가 지적하면 짜증을 부리거나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바로 새롭게 고쳐서

더 열심히 연습하곤 했다.

"엄마.. 후보가 모두 네명인데요, 남자 두명, 여자 두명이예요. 그런데 내가 떨어지면 어떻해요?"

"떨어질 수 도 있지. 정말 하고 싶으면 2학기에 다시 도전하면 되고.. 그런데 붙고 떨어지고를

떠나서 원하는 일에 도전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보고, 직접 부딛쳐 보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야"

"그래도 꼭 반대표 되고 싶은데요.."

"그럼 선거를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지. 준비하는 동안은 잘 될꺼라고 믿으면서.."

그럴때마다 이룸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드디어 선거가 있던 화요일..

아침부터 이룸이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발표하다 까먹으면 어떻해요?"

"외운것을 달달달 되풀이하는 것 보다 말 하다 잊어버려도 다시 생각해내서 열심히 말 하는

것이 훨씬 멋있어. 열심히 연습해보고 중간에 잊어버리면 친구들 얼굴 보면서 잘 생각해봐.

연습한대로 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도 좋고.."

"들어보세요. 중간에 틀려도 도와주지 말고요?"

이룸이는 나와 언니 앞에서 세 번이나 발표문을 연습해 보였다.

"조금더 천천히 하고 또박또박 말 하고.."

언니의 친절한 조언은 마지막 밥 상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이룸이는 손가락에 싸인펜으로 주요 공약 세가지의 가장 중요한 단어 세개를

적고 생각 안날때 보겠다면서 주먹을 꼭 쥔채로 집을 나섰다.

"엄마, 잘 하고 올께요!"

"그래.. 잘 될꺼야!!"

이룸이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리고 오전 10시 반..

조용한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부지런히 책 작업을 하고 있을때 핸드폰이 울렸다.

학교 콜렉트콜 번호다.

10시 반이면 중간놀이 시간..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숨을 훅 들이마시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 이룸인데요, 오늘 반장 선거를 했잖아요. 근데요"

반대표가 됬다면 처음부터 내가 반대표로 뽑혔어요 하며 소리를 지를텐데 설명이 길다.

안 된 건가? 마음이 조여올 즈음

"내가 1등으로 뽑혔어요. 열 세표예요. 2등은 ㅇ인데 다섯 표구요, 3등은 네 표, 4등은 두 표예요.

완전 대박이지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고 잘했네. 연습한대로 발표 잘 했구나?"

"연습한 것 보다 더 잘했어요. 헤헤"

울면서 웃었다. 가슴이 봉실봉실 부풀어 올랐다.

"아빠한테 전해 주세요. 이따 집에서 봐요" 이룸이는 날아갈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초등학교 3학년 반대표가 뭐라고 쉰이나 먹은 늙은 엄마는막내 전화를 받고 눈물을 훔쳤다.

공부를 잘 하는 것 따윈 꿈도 안 꾸고 그저 제가 다니는 학교만 좋아해주기를 바랬던 큰 아이가

학교 부적응으로 2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 둔 이후로 보통 학교를 다니며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겐 오랬동안 먼 일 이었다. 학교를 좋아하고, 자기 반을 좋아하고, 선생님을

사랑하고 그 반의 대표가 되고 싶어 애를 쓰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있었던 평범함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룸이가 반장이 되었다는 내 톡을 받고 바로 전화를 해 온 남편도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 있다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이런 작은 성취에도 너무나 행복한

늙은 부모는 얘기하며 같이 오래 오래 웃었다.

오빠가 그만 둔 학교를 다시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입학했을 때, 그 아이가 학교를 사랑하고

즐겁게 다니는 모습 하나하나가 벅찬 감격이었다. 언니가 다니는 학교를 막내도 입학하고,

두 딸이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는 것 만으로도 비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인데 막내가 오빠, 언니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하고 멋지게 이루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이룸이는 반장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제비뽑기로 4번 후보가 되어

세 친구의 발표를 들을때 기분이 어땠는지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읊어 주었다.

"제가 공약 발표를 했는데요, 한 친구가요, 만약 우리 반에 도와줄 친구가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요. 다시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 반엔 이미 계단을 잘 못내려가는 친구도 있고, 반을 잘 못 찾는 친구고 있습니다.. 라고요.

언니가 후보자 토론이 있다는 얘기를 해 준 것만으로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듣고 있던 윤정이가 훗 하고 웃었다.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 가 있는 필규는 이룸이와의 영상통화에서 애월 바닷가의 찬바람을 맞으며

"반장이라고? 흥, 권력의 핵에 들어갔구나. 잘 해봐라" 한 마디를 던졌다.

열 일곱 오빠의 최선을 다한 축하 인사다ㅋㅋ

남편과 나는 열심히 준비해서 반대표가 된 이룸이와 이룸이에게 많은 도움을 준 윤정이 모두

훌륭하고 애 썼다고 진심으로 칭찬했다.

이리하여 16년 만에 나는 반장 엄마가 되었다.

이제사 고백하지만 반장 엄마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오랬동안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ㅋ

올 해 나는 윤정이네 반 학부모 대표로 일 한다. 한달에 한 번 대의원 회의에 나가 학교 일을

의논하고 도울 것이다. 이룸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자치회에 참석해서 학교의 일들을 나눌 것이다.

학기말에 있는 학교 대 토론회에서는 학생 대표들이 교사, 학부모들과 한 조가 되어 학교의 일들을

함께 토론하게 된다. 매년 이 토론회에서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말 하는 모습에 감탄하곤 했는데 올 해는 이룸이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좋은 시간들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잘 큰다.

역시 나만 잘 크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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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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