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화장실에서만이 아니었다.
힐끗힐끗 훔쳐보는 수준에서 진일보한 상태로 나아갔으니
이름하여 욕실테러사건.
이제 우리 부녀는 함께 목욕을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으니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이름은 목욕이지만 사실 물장난에 가깝다.
(1)물을 튼다,
(2)욕조에 물을 받고 물위에 놀이개를 띄운다.
(3)놀이개를 가지고 논다.
정해진 순서와 공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풍덩풍덩 목욕시간’이지만
세 살 딸내미의 호기심에 아빠는 생각이 많아진다.
우선 힐끗힐끗 훔쳐보던 그 무엇이 놀이개감 사이 저 아래 보일랑 말랑 하고 있다.
놀이개 잡듯이 힘껏 움켜잡는데 아빠가 이상하게 화들짝 놀랜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그 무엇을 숨긴다.
찾으려고 하면 여러 놀이개감으로 홀려 지나가 버린다.
‘저게 뭘까’
그 무엇을 꽉 붙잡혀 ‘아야’소리까지 지른 아빠는
우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 ‘젖꼭지’를 쭈쭈라고 하듯이 그 무엇을 ‘고추’라고 할까?
그럼 ‘왜 나는 고추가 없어?’라며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괜히 신경이 쓰인다)
(2) ‘그 무엇’을 사전에 나오는 이름 그대로 알려줄까?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혹은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얘기하면 어쩌나.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오그라든다.)
(3) 그냥 뽀뇨가 물기 전까지 가만이 있으면 어떨까?
어차피 뽀뇨는 ‘배’, ‘배꼽’만 알지 ‘옆구리’는 모르지 않는가.
(구태여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여러 생각에 생각을 하던 끝에 아빠는 참 쉽고도 간편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왠만하면 뽀뇨가 아빠의 ‘그 무엇’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목욕할때도 신경을 썼다.
그렇게 정리가 되가려는데 최근 가졌던 ‘풍덩풍덩 목욕시간’.
뽀뇨와 늘 똑같이 물을 받고 놀이개를 물위에 띄우는데
갑자기 뽀뇨가 소리쳤다.
“아빠, 꼬리”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응?”했는데
“아빠 꼬리다”
동물들만 꼬리가 있는줄 알았는데 아빠에게도 꼬리가 있었구나.
‘유레카’,
이제 뽀뇨와 아빠만의 은어가 생긴듯하여 기분이 좋고
어떻게 꼬리라는 말을 아는지 기특하기도 하다.
‘그 무엇’을 뭐라고 알려줘야 할까 머리 아팠는데 생각지도 않게 해답이 풀려버렸다.
아빠는 오늘도 ‘풍덩풍덩 목욕시간’에 꼬리를 감춘다.
언제 봤는지 뽀뇨는 감춘 꼬리를 잡으려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름다운 시간,
천천히 흐르면 좋으련만.
<욕실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상당히 위험한 포즈이지만 이 컷이라야 둘이 제대로 잡힙니다 ^^;>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바다를 사랑한 소녀, 뽀뇨의 모습을 보실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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