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54267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새해 첫날 아이들과 서점을 찾았다. 올해에는 아이들과 서점도 자주 들르고, 아이들과 책을 더 자주 보겠다는 결심 차원이었다.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사야한다고 강요하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서점의 분위기를 즐기고, 자신들이 사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고르도록 했다. 아이들이 책을 골라 사는 기쁨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서점에 간 추억도 남겨주고 말이다. 나도 어렸을 때 내게 항상 책을 선물해주던 막내 이모 덕분에 그나마 지금 정도의 독서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로찾기에 푹 빠져있는 딸은 미로찾기 책을 골랐고, 파워레인저에 꽂힌 아들은 파워레인저 스티커 책을 샀다. 비록 엄마가 원하는 수준 있는 그림책을 사지 않았지만 서점에 가는 것을 즐기는 쪽을 일단 택했다.

 

새해 첫 날의 경험때문인지 아이들은 요즘 틈날 때마다 “엄마~ 서점 가요”라고 말한다.  그만큼 아이들도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을 아는 듯 하다. 물론 내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자고 할 때마다 가지 못하지만 지난해보다 훨씬 자주 서점에 가게 된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아이들과 함께 서점을 찾았다. 파워레인저 스티커북의 스티커를 다 붙여버린 아들이 “엄마~ 언제 서점가? 오늘 가요~”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애교를 피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서서 서점에 가자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조르고 졸라 서점에 가니 발걸음이 더 가벼웠다. 오전에 휴식을 취한 뒤 나는 아이들에게 큰 선심 베푸듯 “서점에 가자”고 했다. 가는 차 속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고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20140101_152920 (1).jpg » 책을 고르는 딸의 모습.

 

딸은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겨울 왕국>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친구에게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서인지 영화 줄거리를 꿰고 있었다. 엘사와 안나라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역대 외화 흥행 4위에 올랐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집계 결과 <겨울 왕국>은 현재까지 누적관객이 778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서점에 가니 <겨울 왕국> 그림책과 색칠하기 책 등이 다양하게 나와 있었다. 딸은 <겨울 왕국> 그림책과 친구에게 선물할 스티커를 사달라고 했다. 남편과 상의해 다음날 <겨울 왕국>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로 하고, 딸에게 미리 그림책을 사주었다. 
 
한 가지에 빠져들면 상당 기간 동안 그것에만 몰두하는 아들은 번개맨에 이어 파워레인저와 세계 국기에 꽂혀 있다. 아들은 다른 그림책보다는 파워레인저 색칠책이나 파워레인저 스티커북에만 관심을 쏟았다. 지난번에 스티커북을 샀으니 이번엔 색칠하기와 미로찾기, 퍼즐 등이 섞인 책을 사자고 아들에게 제안했다. 아들은 바로 동의했고, 국기 카드는 다음에 사기로 했다. 아이들 책을 각자 고른 다음 나도 책 한 권을 골랐고, 우리 셋은 각자 자기 책을 들고 설레는 맘으로 집에 돌아왔다.
 
<겨울 왕국>을 보기 전 아이들에게 미리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과 영화를 보는 느낌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겨울 왕국>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다음으로 나는 스마트폰 앱으로 <겨울 왕국> 주제가 ‘렛 잇 고’를 들려주었다. ‘렛 잇 고~ 렛 잇 고~’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 구절 한 구간은 영어와 한글로 써서 딸과 함께 노래도 불렀다. 노래가 익숙하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흥미를 불어넣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민지 겨울왕국.jpg

 

나의 노력은 딸에게 통했다. 딸은 <겨울 왕국>에 완전 몰입해 즐겁게 보았다. 엘사와 안나 두 자매의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5살인 아들은 만날 파워레인저나 번개처럼 싸우고 부수고 충돌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봐서인지 처음에는 지루해했다. 그러나 영화 후반으로 가서는 재밌는 부분이 있었는지 영화가 끝나고서는 “재밌어요. 나는 엘사가 좋아”라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아들에게는 1시간 넘게 집중해야 하는 영화가 무리였지만, 노래나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어 그나마 끝까지 본 것 같다.

 

영화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남편과 나는 군데군데 유머적인 요소가 배치된 영화를 즐겁게 봤다. 나는 특히 영화에서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이 아닌 도전적이며 능동적인 여성상이 그려져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무엇이든 얼음으로 만드는 고유의 능력을 숨기고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던 엘사가 자신을 속박하던 아렌델 왕국을 떠나 자신의 본성을 맘껏 발휘하며 주제가 ‘렛 잇 고’를 부르던 장면에서는 통쾌함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엘사는 비록 ‘고독의 왕국’에서 혼자 살지라도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는 것보다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선택했다. 그녀는 "추위(고독이나 외로움) 따윈 내겐 아무것도 아니다"고 노래한다. 그러면서 " 이제 내 능력을 찾아낼 때가 왔고 내 한계를 실험하고 나를 넘어설 때가 왔다"고 노래하며 `자유'를 선언한다. 그녀는 그저 자신 존재 그 자체로 설 뿐이고, 여기에 머물겠다고 노래한다.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은 불행하니 조금 힘들더라도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진짜 자기만의 모습을 찾아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다. 아, 얼마나 해방감이 느껴지던지. 남녀 평등 시대라지만 여전히 여자를 속박하는 제도와 문화, 관습은 여전하다.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자유를 느끼고 살아가려면 엘사와 같은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딸이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고유의 능력과 잠재력을 발견해 마음껏 펼치며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게 해달라고 간절함을 담아 마음 속으로 빌었다.
 

동생 안나의 캐릭터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사랑스런 캐릭터였다. 안나는 언니를 찾으러 갈 때도 하인을 시키지 않고 스스로 찾아 나선다. 남자가 사랑 고백을 할 때도 수줍어하거나 내숭 떨지 않고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사랑에 임한다. 비록 나중에 `가짜 사랑'임이 드러나지만 한스와의 사랑에 열정적으로 빠져들고 주체적으로 사랑을 즐긴다. 크리스토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여자라서 무엇을 못한다고 가만히 있기보다  용감하게 나서 크리스토퍼를 난관에서 구한다. 명랑하면서도 엉뚱하고 적극적인 안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그녀는 언니 등 다른 사람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다. 마지막에 언니가 죽음에 처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향하기보다 언니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진다. 공주가 나오는 영화에서 항상 마지막 결말은 어떤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 안나는 크리스토프에게 최신 썰매를 선물해서 함께 고생한 것에 대해 보답하지만, 크리스토프와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는 흔한 결말로 끝맺지 않고 결론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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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눈사람 올라프는 또 애니매이션의 매력을 느끼도록 해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얼음 궁전과 눈 덮인 산의 그래픽은 누구나 감탄사를 쏟아낼 만큼 완벽하고 수준 있었다. 삭막한 현실의 세계에서 사랑의 의미조차 잊어버린 어른들은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본 뒤 우리 가족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집에 돌아왔다. 낮잠을 잘 줄 알았던 아이들은 잠자기를 거부했다. 대신 딸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누가 영화에서 누가 제일 착한 것 같아? 누가 제일 좋았어?”

“글쎄~ 민지는 누가 제일 좋았는데?”

딸에게 되물었는데 민규가 대뜸 끼어들어 대답한다.

“난 엘사가 좋아. 엘사가 제일 멋있어.”

“아~ 우리 민규는 엘사가 제일 좋아?”

“난 안나가 제일 착한 것 같아. 엘사도 멋있지만 영화에서 나온 사람중에 안나가 제일 좋아. 착하고 용감하고 귀엽잖아. 아빠는? ”

남편은 민지가 안나가 제일 착한 것 같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음.... 아빠도 안나가 착한 것 같긴 한데, 크리스토프가 제일 착한 것 같아. ”라고 답했다. 역시 남자인 남편에게는 남자의 존재가 더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민지는 재밌다는듯이 “아~ 아빠는 크리스토프! 우리 가족 다 다르네. 그럼 엄마는?”

“음... 엄마는 올라프가 너무 재밌었어. 눈사람이 움직이고, 당근으로 코가 박혀도 다시 살아나고. 또 여름이 되어도 올라프 위에만 눈이 내려 여름에도 살잖아. 엘사가 마법으로 만들어줬다지만 올라프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 그런 눈사람 실제로 있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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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인물도 다르고 느낀 바도 다 다른 것에 대해 신기해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가족끼리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즐거워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아이들은 <겨울 왕국>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싶다고 했다. 평소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아이 앞에서 자제하지만, 영화를 본 뒤라 그날만은 예외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렛 잇 고>를 영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으로 들려주고 함께 불렀다. 또 민지가 좋아했던 <포 더 퍼스트 타임 인 포에버>(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도 들려주었다. 하루종일 우리 집은 <겨울 왕국> 그 자체가 되었다. 어느때보다도 우리집에서는 웃음과 사랑이 넘쳤다. 스트레스에 찌들린 우리 부부도 모처럼 아이들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많이 웃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아~~ 오늘 하루는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 엄마!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고 자꾸 뽀뽀해주고 싶어. 엄마 살은 부드럽고 엄마 머리카락을 자꾸 만지고 싶어. 엄마~ 사랑해요~”

잠자기 전 나와 나란히 누운 딸은 <겨울 왕국>의 안나처럼 들뜬 목소리로 내게 사랑 고백을 했다.

딸의 목소리가 행복감에 취해 있어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딸의 명랑하고 유쾌한 목소리가 내게 행복감을 가득 선물했다.

아들은 누나에게 질세라 “엄마~ 겨울 왕국 너무 재밌었어. 우리 내일 또 보러 갈까?”라고 말한다. 능청스럽기는.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에 찌들어 암흑이었던 내 마음은 두 아이의 밝은 기운으로 오색찬란한 무지개 색으로 바뀌었다.

한동안 악몽도 꾸고 개꿈도 많이 꾼 나는 오랜만에 따뜻한 마음을 안고 푹 잠들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기쁨을 선물해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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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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