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560_627543413980548_667615581_n.jpg » 사진은 빈진향님. 사진 출처는 안정숙님 글.

 

지난주 금요일 베이비트리 필자 빈진향님의 밀양 사진 전시회에서 베이비트리언들끼리 신년회를 열기로 했다. 하필 그 날은 베이비트리 지면 마감날이었고, 사내 탐사보도 연구모임 첫 만남이 점심때 급하게 잡힌 날이었다. 전날 야근을 하면서까지 전시회에 가기 위해 마감을 서둘러 오전에 마감했으나, 오후에 기사를 다시 써야했다. 또 연말 정산 마감해야 하는 날이라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저녁에는 또 거의 일년만에 대학때 같이 하숙했던 동생들을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요 며칠 잠을 못자 몸은 파김치였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감기 몸살기가 있었고, 콧물과 재채기로 내 몸은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회사 일과 사교 모임, 공부 모임을 병행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오지랖 넓은 나는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있다. 공부도 하고 싶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끊임없이 하고 싶다. 회사 일도, 아이들과의 상호작용도, 지인들과의 만남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항상 시간을 쪼개고 쪼개 쓰는 편인데, 지난주 금요일은 모든 상황이 엊갈려 내 뜻대로 일정이 소화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들에 도전 가능한 것은 아이들이 5살, 7살로 어느정도 성장했고,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와 육아 도우미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오후 3시부터 베이비트리언들의 번개는 진행됐다. 베이비트리 필자 신순화님이 멀리 군포서 세 아이를 데리고 방문했다. 베이비트리 게시판에 시골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써주고 계시는 안정숙 작가가 최근 자신이 낸 책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을 들고 전남 화순에서 남편과 함께 모임을 찾았다. 참석자들은 안정숙 작가의 책을 선물 받았다. (책 서평은 추후에 따로. ^^) 베이비트리 필자 윤영희님은 직접 손으로 만든 아이들 가방과 앞치마 등 정성어린 선물을 보내주셨다. 거기에 베이비트리 충성 독자 루가맘과 분홍구름, 난엄마다님 세 분도 모임에 참석했다.
 
아~ 저녁 약속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일은 끝나지 않고…. 속은 타들어만 갔다. 나는 결국 오후 5시 반에 빈진향님께 “도저히 못 갈 것 같다.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드렸다. 다들 괜찮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나니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왠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저녁 약속에 좀 늦더라도 베이비트리언들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갔다. 전시회에 가보니 아이와 남편까지 함께 온 분도 있었고, 정성스런 음식을 가득 준비해오셔서 베이비트리언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전시회에 안갔으면 정말 어쩔 뻔했나. 베이비트리를 통해 이렇게 정성스런 마음이 모였는데 담당 기자가 오겠다더니 오지도 않으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얼굴이라도 잠깐 내비치기라도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고 감사하기만 했다. 베이비트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느슨한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기념사진도 찍고 얘기도 잠깐 나누고 선물도 받아왔다. 그날 모임에서는 베이비트리도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IMG_20140125_1.png » 안정숙님이 베이비트리언들에게 선물한 책과 필자 윤영희님이 손수 만든 앞치마와 가방.

 
베이트리언들을 잠깐 만난 뒤 다시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이동했다. 강남의 한 찜질방에서 대학 때 함께 살던 동생들을 거의 일 년만에 만났다. 4명 가운데 3명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현재 일하고 있으며, 1명은 아직 미혼이다. 넷은 모두 삼십대 중반 한창 나이지만 모두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다. 다들 일로 바빠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 모이지 못했다. 다 모이니 저녁 8시가 훌쩍 넘었다.

 

찜질보다 밥. 피로와 허기에 가득 찬 네 명의 여자들은 제육볶음과 오징어볶음, 미역국을 시켜 밥 먼저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서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눴다. 다들 육아에 지치고, 일로 지쳐 다크 써클이 땅 밑까지 내려올 지경이었다. 너무 피로한 탓인지 넷은 찜질방에서 땀을 한두 번 뺀 뒤 마루에 대자로 누워 쉬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가 각자 나름의 이유로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구나’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욕탕의 따뜻한 물에 온 몸을 담그고 그저 함께 있었다. 처음에 누군가 찜질방 모임을 제안했을 때 나는 그보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 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해보니 일상에 너무 지친 우리들에겐 찜질방 이색 모임이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낳은 뒤 거의 몇 년 만에 찜질방에 온다는 사람도 있었고, 나 역시 찜질방은 너무 오랜만이라 그저 좋았다.
 
30대 중반 나이인 우리는 한창 일할 나이이고 아이들 키우는 나이라 이렇게 힘든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사회 구성원에게 너무 쉴 틈을 주지 않고 바쁘게만 살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라 힘든 것일까? 여자 넷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찜질방에서 나와 편의점을 들러 ‘쌍화탕’을 사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한때 하숙집에서 밤새 얘기를 나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각자의 인생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5년 후엔 우리 넷은 각자 어떤 모습일까? 5년 뒤에도 우리는 이렇게 바쁘고 힘들고 소진된 상태에서 만날까, 아니면 좀 더 여유있게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에너지가 소진되버린 나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의 어느 `불타는 금요일'의 기록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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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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