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59a93470e0bcf3fe97e5f1bef0b325.



애 낳고 보면 안다.

먹이고 가르치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놀아주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비싼 장난감도 길어야 일주일일 뿐 아이들은 역시 부모가 놀아주는 것을 더 좋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놀이는 의외로 단순하다는 점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아이들은 ‘잡기 놀이’를 좋아한다.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을 잡으러 뛰는 시늉만 하면 우리 세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좋아한다.

아홉살 큰 아이는 ‘체스’를 두자, 레고를 같이 맞추자, 배드민턴을 하자 등 놀이에

대한 요구가 다양하지만 엄마가 잡으러 다니고 제가 도망가는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다섯 살, 두 살

여동생과도 같이 즐길 수 있으니 더 좋다.



큰 아이는 이런 놀이를 ‘좀비 놀이’라고 부른다.

즉 엄마나 아빠가 ‘좀비’가 되어 저들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다.

장소는 항상 침대 위다. 나는 좀비가 되어 침대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며 침대 위에 있는 아이들을

잡으려고 하면 세 아이는 꺅~ 꺅~ 비명을 질러가며 침대 위를 이리 저리 뛰어 다닌다. 좀 더 재미나게

해 주려면 근처에 있는 무릎 담요 같은 것으로 얼굴을 덮는다. 유령처럼 담요를 뒤집어쓰고

‘크르르!’ 소리 내며 ‘어디 있냐?’ 하고 침대를 더듬어 가면 아이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두 살 된 이룸이도 내복이 벗겨지도록 서둘러 침대 위를 기어 도망다니며 깔깔 거린다.

이 단순한 놀이는 이래뵈도 퍽 동적인 놀이라서 5분만 해도 땀이 줄줄 난다.

신나게 좀비 놀이를 하고 땀을 흘리고 나면 아이들은 기분 좋게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잠 자기 전에 힘 빼게 하는 데는 딱이다.



본격적으로 풀이 돋기 시작하는 텃밭을 돌보면서 1층과 2층을 모두 오가며 버라이어티하게 어질러 놓는

아이들을 따라 다니며 집안일 하다보면 하루 종일 종종거려도 늘 시간이 없다. 게다가 틈틈히

써내야 할 글도 있다. 항상 고단하고 일은 밀려 있고 집안은 어수선하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과

넉넉히 놀아줄 여유를 내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책도 가져오고, 블럭도 가져오고, 오리기 책이나

인형도 가져오지만 뭐 하나 양껏 놀아주지 못한다. 아이마다 발달 수준이 다르니 요구하는 놀이도

다르고 놀고 싶어하는 시간도 다 다르다. 세 아이가 원하는대로 놀아주려고 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늘 큰 아이들은 불만이 많다. 엄마는 항상 바쁘고 어린 막내만 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일 손 많이 가는  아이에게 매달릴 수밖에...

종일 서운하기도 하고, 불만도 있던 아이들을 한 방에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은 목욕하기 전에

침대 위에서 하는 ‘좀비 놀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고, 방법이 복잡하지도 않고

세 아이 따로 따로 해 줄 필요도 없다. 엄마 몸만 좀 움직이면 세 아이 다 즐거워하니

이때만큼은 기꺼이 오버해가며 ‘좀비’가 되어 준다.



아이들은 그렇다.

열시간 서운했다가도 화끈하게 즐거운 10분을 누리면 행복해지는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종일 잘 못해준다고 미안해하기보다 단 10분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재미나게 해주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괴물로 변해 아이를 잡으러 손을 내밀고, 껴안고 간지르며 뒹굴거리는 것

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은 금방 풀어진다. 하루에 10분만큼은 아이처럼 어려져서 같이 어울려보자.

아이가 원하는대로 ‘좀비’도 되고, 괴물도 되고, 동물도 되어 보자.

푹신한 이불 펴 놓고 씨름도 하고, 아이를 들어서 빙빙 돌려도 주고, 한껏 몸과 몸이 닿게

어우러지는 거다.

잠깐이라도 땀 나게 놀고 같이 씻고 이불 위에 누우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부모와 자식 사이가

된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도 세 아이가 즐거워하니 매일 ‘좀비’로 변한다. 강시처럼 두 팔을 내밀고

아이들을 향해 돌진하며 괴물 같은 소리를 낸다. 놀이에 빠진 아이들이 좀비를 물리치겠다고

베개와 쿠션을 던져대는 것이 가끔은 아플 때도 있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은 나 역시 행복하게 한다. 짜증도 많고 성질도 잘 부리고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부족한 엄마지만 좀비 놀이를 할 때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재미난 엄마가 된다.

아이들이 좀비 엄마에 열광하는 날도 언젠가는 끝이 있겠지.

엄마보다 더 재미난 것들에 빠져들면 엄마랑 노는 게 시시해지는 순간도 오겠지.

그때까지는 기꺼이 매일 밤 ‘좀비’가 되어 내 아이들과 땀나게 놀아보자.



꼼짝마라... 좀비 엄마 나가신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9836/c38/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7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홉살 아들은 ‘스타워즈’ 정복중 imagefile 신순화 2011-09-26 32296
6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눈 앞에 펼쳐진 동해바다는 그저 달력일뿐 imagefile 신순화 2011-09-16 40278
6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친딸 조카도 손빠른 동서도 ‘이젠 괜찮다’ imagefile 신순화 2011-09-08 36968
6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나가수’보다 더 재미있는 것 imagefile 신순화 2011-08-31 48609
6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버럭과 눈물 끝에 마침표 찍은 아들의 독후감 imagefile 신순화 2011-08-24 33241
6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 엄마는 아주 천천히 늙어줘 imagefile [1] 신순화 2011-08-17 53426
6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여보... 당신... 변했구나... imagefile 신순화 2011-08-10 32137
6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세 아이와 함께 산 넘고 물 건너 ‘고고씽’!! imagefile 신순화 2011-08-03 29942
6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요??? imagefile 신순화 2011-07-27 34457
6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알부자가 되는 그날을 위해!!!!! imagefile 신순화 2011-07-20 27393
6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에게 ‘눈물’을 허하라!! imagefile 신순화 2011-07-13 27860
5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개미떼와 물 난리, 그 집에선 무슨 일이? imagefile 신순화 2011-07-06 35898
5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공부에 대처하는 아들의 자세 imagefile 신순화 2011-06-29 37968
5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애 볼래, 일 할래? ....... 일 할래!!!!! imagefile 신순화 2011-06-22 36262
5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반려동물과 이별하면서 배운 것들 imagefile 신순화 2011-06-15 21863
5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사람은 손님, 벌레가 주인 imagefile 신순화 2011-06-07 30528
5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확실한 막내 우월 유전자!! imagefile 신순화 2011-06-01 26082
»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는 좀비다!! imagefile 신순화 2011-05-24 25078
5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억지로 읽힐 요량이면, 차라리 책을 치우자!! imagefile 신순화 2011-05-18 24323
5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대박 터뜨린 엄마표 ‘보물 찾기’!! imagefile 신순화 2011-05-11 23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