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 200일 차
가을 젖
집 주변 논에
파릇한 새끼 벼가 심겼던 초여름,
나는 한참
모유 수유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혼을 반쯤 잃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힘겹게 들락날락하는 숨을
간신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나온 산책길에
파릇한 새끼 벼들로 가득 찬
넓은 논을 마주한 순간
아...
나의 모든 힘듦이 사라지고
마음 깊이 고요가 찾아왔다.
서너 달이 지나며
그 새끼 벼들이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만나
키를 키우고
낟알이 차올라 고개를 숙일 동안
내 젖은
아직 여물지 않은 한 생명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느라
어느새 고개를 떨구었다.
참 닮아있구나.
엄마의 젖과 자연이.
아니,
같은 것이구나.
지금은
모유 수유의 오르막길이 어느덧
넓은 고원의
걷기 좋은 평지가 되었고
나의 풀어헤쳤던 머리도
아주 짧게 정리가 되었다.
한껏 누려본다.
이 가을에 평화로운 젖과
그 젖이 키워낸 나의 딸,
바다와 함께하는 지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