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f222c412ffa93cc70e859bc16bbd8ae.성격도 취향도 판이한 남편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게으르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에 무관심하다는 점도 그렇다. 싸이월드니 블로그니,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한번 한 적 없다.  순전히 게을러서다.




이런 남편에게 ‘엄마표 성장 동영상’을 만들자, 물론 정확한 표현은 “만들라”고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이랬다. “그걸 왜 해?”




사실 처음 나도 성장 동영상이라는 걸 들었을 때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어서 고민 없이 ‘킬’ 했다.  그런데 취재원과의 점심자리에서 돌잔치 이야기를 하다가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성장 동영상”이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는 또 팔랑귀가 팔랑한 것이다.




시큰둥한 남편에게 당근과 채찍을 휘둘러 가며 제작 압력을 강하게 넣자 남편은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엄마표 성장 동영상은 엄마가 만드는 거야, 봐봐 엄마 감독, 아빠 구경 이렇게 크레딧이 나오잖아” 힘없는 저항을 하고는 꾸역꾸역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성장 동영상에 넣을 사진과 동영상 클립을 추려 주기로 했다.






68efd98b3db0c2d66d59b54bae72b965. » 돌잔치.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수천장 찍어놓고 정리 한번 안해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저분한 배경에 초점 흐린 사진들이야 그렇다 쳐도 늘 아이가 웃을 때만 포착하려고 하다보니 정작 스토리가 될만한 다양한 표정이나 상황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를 위한 성장 동영상을 만든다는 이유로 주말 내내 아이는 방치한 채 후보가 될만한 동영상과 사진을 2배수 정도로 가까스로 모아놓으니 남편이 또 툴툴거린다. “도대체 이런 허접한 소스로 뭘 만들 수 있다는 거야?” 평소 같으면 그 앞에 노트북이라도 패대기칠 정도의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나였지만 아양을 떨며 “에이 괜찮아. 아기라서 붙여놓기만 해도 예쁘다구” 남편을 살살 구슬렸다. 돌잔치 3일 앞두고 남편이 제작 포기 선언을 했을 때는 한밤의 소리 없는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5분 넘으면 손님들에게 욕먹는다는 생각으로 3,4분짜리를 기획했지만 편집하다 보니 5분이 훌쩍 넘어 7분이 훌쩍 넘는 ‘대작’이 돌잔치 날 새벽에야 완성됐다. 뱃속 심장 소리에서 탄생의 순간, 처음 웃었을 때,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처음 배밀이를 했을 때, 처음 열이 나서 이마에 패치를 붙이고 쌔근거릴때 등등이  동영상과 정지영상으로 화면을 채우고 또 마지막에는 아이에게 짧은 편지까지 한마디로 ‘할 건 다 했다.’




그렇게 완성한 성장 동영상에 음악까지 붙여서 돌잔치날 식사를 마친 손님들 앞에서 스크린에 띄웠다. 반응이 어땠냐구? 나 혼자 감격해서 눈물 콧물 짜느라 손님들의 반응은 보지도 못했다. 불면 날아갈듯 작았던 우리 아이가 어느 새 이렇게 컸다니,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언니가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했던 돌상도 빼먹은 것 없이 잘 차리고,  (엄마에게는) 하이라이트인 성장 동영상도 방송사고(!) 없이 플레이했다.  서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면 좋으련만 낯선 분위기 탓인지 엄마나 아빠 품에만 안겨있으려는 아이가 아쉽긴 했지만 울고불고 떼만 안써도 돌잔치 대박이라는 말로 위로를 삼았다.  아이는 돌잡이 때 마치 자신의 미래를 진짜 고민이나 하듯이 한참을 쳐다보다가 판사봉을 만지작거리더니 그 위에 있던 연필을 집었다.




그렇게 3시간의 돌잔치를 마치고 돌아오니 ‘엠비씨 연기대상을 수상하고 집에 돌아온 고현정의 기분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뿌듯하면서도 마음이 헛헛했다.  할까말까 했던 돌잔치이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물론 가족 총동원령!) 아이를 위한 이벤트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돌잔치 할까 말까 고민하는 엄마들께 한마디 하자면 뻔한 메뉴얼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  육아잡지나 육아사이트에서 제안하는 메뉴얼을 다 챙기려다 보면 특히 일하는 엄마는 지레 포기하기 쉽다. 아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엄마 아빠표 이벤트를 만들어준다는 차원에서 돌잔치는 한번 차려볼 만한 것 같다.(하지만 둘째까지 하라면 글쎄~~) 그리고 남편 잘 설득해서(^^) 또는 엄마표 동영상 제작 강추! 손발이 오글거리는 잠깐의 시간만 참는다면 엄마 스스로에게 무엇보다 뿌듯한 돌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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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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