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jpg

 

결혼 10년째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우리 부부의 소박한 소망은 부부끼리만 한 방을 쓰는 것이다. 4년 3년 터울로 둘째와 셋째를 낳은 탓에 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보니 부부만 방을 쓰는 일은 당분간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애들이 커서 제 방으로 독립해 가는 일을 오래 고대해 오고 있는 중이다.

 

큰 아이가 열 살이면 진즉에 제 방으로 갔어야 했는데 어린 여동생들 때문에 제가 사랑을 덜 받는다고 주장하는 큰 놈은 아직도 잠자리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낼 수 도 없고, 두 여동생은 여전히 부모 옆에서 자고 있으니 조금 더 함께 뒹굴며 자야겠거니.. 단념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여섯살 둘째가 제 방에서 따로 자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둘째는 며칠전 제일 좋아하는 단짝 친구가 하룻밤 자러 왔을때 저희들끼리 제 방에서 따로 자겠다며 잠자리를 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내 곁에서 친구와 함께 자곤 했던 터라 이부자리를 펴 주면서도 설마 저희들끼리 자려나 했었는데 밤 늦게까지 부엌정리를 하느라 바쁜 내게 와서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하더니 얼마되지 않아 둘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엄마나 아빠에게 재워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잠들때까지 있어달라는 말도 없이 둘이서 소근소근 킥킥 거리다가 그림처럼 예쁘게 잠이 든 것이다. 부엌을 다 치우고 방에 들어가보니 윤정이는 제 친구 옆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였지만 한 집에서 엄마와 떨어져 따로 자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이었다. 그 모습에도 뭉클했었다.

어린 딸이 어느새 이렇게 자랐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날의 경험이 힘을 준 것인지, 윤정이는 태풍 볼라벤이 몰려 온다고 전국이 술렁이던 어젯밤 갑자기 제 방에서 혼자 자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예쁜 이불을 펴 달라고 했다.

나는 방을 말끔히 치우고 윤정이가 좋아하는 이불을 펴 주었다. 하필 처음으로 저 혼자 자는 날이 거센 바람 부는 태풍 전야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윤정이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자겠다고 제 방으로 갔을때 자는 막내에게 젖을 물리고 있어서 남편을 대신 보냈더니 얼마 후에 남편 혼자 돌아 왔다.

윤정이가 잠들었다는 것이다.

가서 보니까 작은 불을 켜 놓은 방 안에서 윤정이가 잠들어 있다.


바로 곁에는 윤정이와 꼭 닮은 인형 아리가 윤정이가 챙겨준 앙증맞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그 곁에는 곰돌이도 한 마리 누워 있다. 윤정이는 어려서부터 자기 전에 꼭 곁에 인형들 이부자리를 따로 깔아주고 좋아하는 인형들을 예쁘게 눕힌 다음 잠들곤 했다.

윤정이의 잠 든 모습은 늘 내 맘을 짠하게 한다.


필규는 열 살이 된 지금도 엄마가 곁에 눕지 않으면 저 혼자 자는 법이 없다. 내가 할 일이 있어 바쁘면 저도 잠을 안자고 끝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가끔은 필규 때문에 할 일도 미루고 먼저 누울 때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필규가 잠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정이는 달랐다.

 

내가 바쁘거나 할 일이 있어 챙겨주지 못해도 졸음이 오면 저 혼자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잠들곤 했다. 누가 재워주지 않아도, 곁에 어른이 없어도 윤정이는 늘 저 혼자 누워 잔다. 다만 그 곁에 늘 마음을 주는 인형들이 함께 누워 있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대견하면서도 미안했다.

 

아직도 엄마의 애정을 엄청나게 요구하는 오빠와 절대적으로 엄마를 차지하고 있는 막내 사이에서 윤정이는 일찍 저 혼자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것 모양이다.
다만 저도 아직 어리고 때로는 허전하거나 쓸쓸할때도 있으니까 엄마가 곁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따스함을 인형들에게 의지하느라 그렇게 정성껏 인형들을 챙기고 눕혀서 함깨 잠 들었던 것이 아닐까.

 

안스러울때도 있지만 그래서 윤정이는 또래 친구보다 아주 의젓하고 사려깊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챙기는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지혜도 아주 깊다.
내가 바쁠때는 눈치껏 이룸이를 챙겨서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서 함께 놀아주는 것도 윤정이의 뛰어난 능력이다.

이모들은 윤정이가 너무 엄마랑만 지내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늘 엄마와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윤정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어른들의 염려보다 훨씬 크고 깊다고 믿었다.

때가 되면 스르르 나와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필규는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은 것 뿐이고 윤정이는 일찍 온 것 뿐이다.고마와서 미안해서 이뻐서 윤정이의 잠 든 모습을 오래 오래 지켜 보았다.

 

아이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 다르다.
어떤 아이에게 쉽고 금방 되는 일이 어떤 아이에게는 힘들고 오래 걸린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성장을 보이라고 강요하지 않으면 아이는 누구나 제 속도대로 큰다.
여전히 엄마 아빠 곁에서 잠 드는 필규지만 언젠가는 훌쩍 우리 곁을 떠나 저 혼자 자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과 몸이 커 가는 것이다.

 

저 혼자 자고 일어난 딸이 웃으며 내 곁에 온다.

 

하룻밤 사이에 훌쩍 커진 딸을 꼬옥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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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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