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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야 이번주 일요일에 우리집에 놀러와”


딸의 단짝 호정이가 민지를 집에 초대한 지 몇 달이 지났다. 초대장과 편지로 수십 번 민지에게 집에 놀러오라고 했지만 그동안 내 사정으로 호정이집에 놀러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주 민지가 내게 “엄마~ 호정이가 주말에 놀러오라고 했어. 놀라가면 안 돼? 내가 마음이 슬퍼 울 때 호정이가 따뜻하게 안아줘서 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나 호정이가 정말 좋아. 나 호정이 집에 놀러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렇다. 민지는 자신이 슬플 때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고, 친구와 더 내밀한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직장맘인 나는 평소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가고 싶어해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주말에도 각종 스케줄에 밀려, 또는 내 몸이 너무 피곤하고 지쳐 딸이 친구랑 놀고 싶어해도 놀 시간을 많이 못 만들어준다. 그런데 나는 이번만은 더는 미루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호정 엄마에게 연락했다. 호정 엄마는 흔쾌히 놀러오라고 했고, 일요일 점심을 각자 먹은 뒤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설레어했는지 그 전날 두 아이 모두 오후 9시 전에 잠들었다는 것을 두 엄마는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딩동~. 일요일 오후 2시, 두 아이와 함께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호정이집 초인종을 눌렀다. 호정이 언니 주희와 호정이, 호정이 엄마가 우리 셋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낯선 곳에 가서인지 민지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20~30분쯤 지나자 바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여자 아이 셋은 방으로 쏙 들어갔다. 공연을 준비한다는 명분 하에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더니 셋이 시끌벅적 자기네들끼리 놀았다. 온통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유일한 남자였던 아들 민규는 우리집에 없는 맥포머스 같은 신기한 장난감들을 만지며 놀았다. 그러나 혼자 놀아서인지 민규는 이내 심심해했다. 5살 남자 아이가 9살, 7살 누나들 틈에 끼어들여 놀기엔 아직 여자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으리라. 나는 호정이 엄마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혼자 노는 민규가 안쓰러워 민규와 함께 신기한 장난감들을 만지며 놀았다. 나중에 호정이 언니인 주희랑 체스 게임도 한판 즐겼다. 민지는 ‘절친’과 정겨운 시간을 보내니 즐거웠고, 나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과 놀 수 있어 즐거웠다. 우리집과는 완전 딴판으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는 남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의 집에 가보니 우리 집이 얼마나 정리가 안돼 있고 난장판이며 물건이 많은 집인지 비교가 됐다. 민지는 그날 이후 "엄마~난 우리 집보다 호정이 집이 좋아. 호정이 집은 깔끔하게 정리됐잖아. 우리 집 물건이랑 호정이네 집 물건이랑 통쨰로 바꾸고 싶어."라고 말한다. 허걱. )
 
여자 아이 셋은 한참을 깔깔거리며 공연 준비를 하더니 나중에 침대 공연을 펼쳤다. 주희는 사회자, 민지와 호정이는 멋진 댄스를 보여주는 아이돌 가수로 돌변했다. 두 아이는 재작년 어린이집에서 ‘벚꽃 엔딩’ ‘여행을 떠나요’ 등의 노래에 맞춰 재롱잔치에서 보여줄 안무를 배웠다. 그때 기억을 되살려 두 아이는 멋진 춤 실력을 보여줬고, 동요에 맞춰 귀여운 율동도 보여줬다. 민규는 평가자의 역할을 했는데 공연 뒤 “잘 했어요”라고 말했다. 관객이었던 두 엄마는 사진도 찍고 환호성도 지르며 공연을 즐겼다. 온 집안에 웃음꽃은 활짝 피었고, 민지의 친구집 방문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꺼냈다. “민지야~ 아빠가 기다리신다. 저녁 밥 먹으러 집에 가자~”그 말을 꺼낸 순간 호정이가 ‘앙~’ 울음을 터뜨린다.

 

“민지야~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엉? 너희 집에서 자고 가라고? 엄마! 나 호정이 집에서 자고 가도 돼? 호정이가 자고 가라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 두 아이는 헤어지기 싫어했다. 나도 안다, 그 마음을. 함께 있으면 마냥 좋고, 둘이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오붓한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나 역시 그랬다. 초등학교 다닐 때 매 학년마다 내 마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다. 그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화나는 모든 시시콜콜한 일상을 함께 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았는지. 그렇게 친구는 나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지금도 친구와 동료들은 내게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다. (최근 네이버 `밴드'를 통해 초등학교 동생창 친구들이 연락을 해와 조만간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기대된다. 훗. ) 나도 학창시절 친구 집에서 자고 싶었으나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아 못잤던 기억도 있다. 친구와 더 함께 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호정이에게 제안했다.
 
“호정아! 오늘은 밤이 됐으니까 민지 오늘은 집에 가고 다음에 또 놀자”
“흥! 온다고 하면 안오잖아. 놀러 온다고 해놓고 안오잖아요.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아냐~ 왜 아줌마가 거짓말을 해~ 다음 주말에 또 놀자~”
“안 믿어요. 그런다고 해놓고 안오잖아요.”
 
호정이는 다음에 또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함께 놀자고 한 지 오래됐는데 이제야 놀러와서 호정이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호정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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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호정이가 민지 집에 놀러오는 것은 어때? 호정이랑 민지랑 같은 하원차 타고 민지집에서 같이 내리면 되잖아. 민지 이모가 계시니까 민지 집에 와서 함께 놀다 저녁 먹고 가면 되겠다. 어때?”
“진짜요? 와~ 신난다! 그럴게요!” 
“엄마, 진짜 그렇게 해도 돼? 호정이 내일 우리집에 와도 돼? 야~ 신난다! 호정아~ 내일 우리집에서 놀자~”
 
열감기 증세가 있어 월요일에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호정 엄마는 월요일 열이 뚝 떨어진 호정이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얼마나 좋은지 설레는 맘으로 가뿐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친구가 최고”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월요일 호정이는 민지와 함께 우리집에 와서 즐겁게 놀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돌아갔다. 나는 월요일 야근을 해서 두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전화기로 두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늦게 퇴근해도 즐거운 목소리로 “엄마~ 빨리 일하고 들어오세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딸을 보며 “역시 친구가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로 좋아서 죽고 못사는 두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함께 얘기하는 시간,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삶의 기쁨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들 역시 행복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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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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