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여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팔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손엔 플라스틱 통이 들려있었다.
 “뭔데?”
 “가재야.”
 나도 눈이 있으니 가져온 게 가재라는 건 알거든. 왜 그게 지금 네 손 안에 있느냐고…
“생명과학시간에 나눠준 거야.”
 아이 학교엔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생명과학이란 수업이 있다. 쉽게 내뱉는 아이의 말.
“키워주라.”
 “모두 다 가져왔어?”
 “무슨 말이야?”
 “생명과학 수업 듣는 애들이 다 가재를 가져왔느냐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가져 갈 사람만 가져가랬는데.”
 그렇다고 아이를 나무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가 좀 더 귀찮아지는 게 싫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 집엔 가재 한 마리가 생겼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아빠, 여기.”
 “그게 뭔데?”
 “장수풍뎅이.”
가재 옆에 장수풍뎅이가 놓였다. 얼마 뒤엔 동충하초, 다시 얼마 뒤엔 물고기.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학기 초마다 임원 선거에 나갈 사람, 하면 항상 손을 들었다. 저요, 저요. 하면서. 덕분에 이번 학기엔 어린이 날을 앞두고 교실에 모여 엄마들 사이에서 행사용 풍선을 불어야만 했다. 후우욱.. 아버님, 이것도 좀 불어주세요… 네, 네.. 후우욱… 후우욱…

 

 민호편지0.jpg

(사진 : 픽사베이)

 

 4월 중순쯤 이번엔 아이가 학교에서 원고지를 가져왔다. 겉표지엔 ‘효 글짓기’란 글자가 보였다. 주최를 한 단체와 주관한 기관을 보니 전국 단위로 진행되는 대회였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 물었을 테다. 참가할 사람? 그럼 손을 들며 이렇게 말했겠지. 저요, 저요, 저요. 라고. 일단 손은 들고 보자는 마음으로. 다만 예전과 다른 건 글은 아빠가 대신 써줄 수 없다는 거다. 샘통이다. 저녁을 훌쩍 넘기고 아이는 책상 위에서 빽빽하게 네모 칸으로 채워진 원고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럴 수밖에. 마감일이 다음날이니까.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도와주라.”

 샘통이란 마음도 잠시, 원고지 앞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던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5월 15일은 아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날이었다. 모두가 가정의 달이라며 엄마를 가장 많이 부르는 달에 아이는 엄마라는 말 대신 아빠를 불러야만 했다. 아이가 써야 할 주제가 효라면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이는 5월이면 은하철도 999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category=441817&page=3&document_srl=461606)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어.”
 “그럼 아빠가 방향만 잡아줄까?”
 “응.”
 시간은 없고, 써야 할 원고지는 텅 비었으니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엄마한테 편지를 써 봐봐.”
 “엄마한테?”
 “응. 민호가 엄마한테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는 다시 원고지를 쳐다봤다. 그래도 되나? 라는 표정으로 아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빠, 내가 몇 살 때 엄마가 죽었더라?”
 “다섯 살 때.” 

 

민호편지1.jpg

(사진 : 픽사베이)


 원고지를 바라만 보던 아이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5살 때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슬프고 보고 싶다.
하지만 난 엄마의 얼굴조차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마가 보고 싶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버이날을 맞이해 엄마한테 편지를 한 번 써 보기로 했다.

 

 다시 아이의 손이 멈췄다.
 “다시 막혔어.”
 “원래 글을 쓰기가 어려워.”
 “어떻게 해?”
 그리고 아이에게 첫 문장을 불러주었다. 보.고.싶.은. 엄.마.에.게.
 “그렇게 써?”
 “응. 편지니까. 엄마가 읽는다고 생각을 하고. 단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써 봐봐. 마음 가는 대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보.고.싶.은. 엄.마.에.게.
 
 첫 문장을 쓰더니 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 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작은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삐쭉 삐쭉거리던 입은 결국 큰 소리를 터뜨렸다. 고개는 천장을 향했고 벌린 입 사이로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엄마~’라는 소리를 내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바라봤다. 내 앞에 보인 아이도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민호가 많이 슬펐구나.”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가 다가와 품에 안겼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이 슬픔의 크기조차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 하늘을 덮은 구름을 보며 구름을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울먹이던 아이가 다시 감정을 글자로 옮기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나 민호야. 왜 이렇게 일찍 갔어?
나 아직 엄마가 필요한데 벌써 가버리면 어떻해.
난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하루에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슬퍼서 못 쓰겠어. 계속 눈물이 나와.

편지2.jpg

(사진 : 강민호 '하늘 나라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아이가 편지를 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손으로 닦아내도 참았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빠, 슬퍼서 못 쓰겠어.”
 그래도 써야만 했다. 슬픔은 끄집어 내야만 그 슬픔이 줄어들고 슬픔이 있던 자리에 희망과 행복이 자리를 잡으니까.
 “아빠도 ‘지금 꼭 안아줄 것’ 쓸 때 매일 울면서 썼거든. 정말 슬플 거야. 하지만 손가락을 멈추지 말고 계속 써 내려가볼래?”
아이는 다시 손을 원고지에 가져다 댔다.

 

하루 동안 모든 소원 중 하나가 이루어진다면
난 엄마를 살려달라고 할 거야.
아직 할 말이 많은데 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만약 천국에서 보고 있다면 대답 좀 해 줘.
엄마, 보고 싶어!
나 앞으로 내일 안 미루면서 살 거야.
엄마가 자랑스러워 해야 하니까.
엄마, 천국에서 잘 지내. 
                        2018년 4월 10일 강민호 올림.

편지3.jpg

(사진 : 강민호 '하늘 나라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아이는 엄마를 그렇게 불러봤지만, 그 날도 엄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 눈엔 친구들의 엄마들을 볼 때마다 떠난 엄마를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어린이날 아빠가 풍선을 불고 있을 때에도 창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아빠를 쳐다봤을 때에도 아이 눈엔 아빠가 풍선을 보는 모습 속에서도 엄마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11년 동안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았다. 날짜와 이름을 적을 즈음엔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애당초 상은 고려하지 않은 글쓰기였다. 억눌린 아이의 마음을 풀어놓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그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면서 치유해 나가기를 바랐다. 으레 ‘효 글짓기’ 대회라고 한다면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라든지 고마움과 관련된 내용들로 차 있어야 할 테지만 이 글엔 너무 빨리 떠난 엄마의 원망도 담겼고, 평소 아빠의 불만도 여과 없이 담겼다. 이 글을 보는 심사 위원들이야 어차피 일면식도 없고 그냥 읽고 지나가는 글이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나에겐 마지막 아이의 문장이 이 글의 전부였다. 마음이 편해졌고 뻥 뚫렸다는 문장. 그것만으로도 편지를 쓴 의미는 충분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쓴 아이는 5월 내내 은하철도 999를 부르는 대신 장난기 가득한 노래를 집안에서 부르고 다녔다.

 

편지5.jpg

편지6.jpg

(사진 : 강민호 '하늘 나라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한 달 즈음 지난 날, 전화 한 통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라 받지 않을까 하다가 받은 전화.
 “여보세요. 민호 아버님이시지요.”
 “네. 누구신가요?”
 “여긴 한국효문화센터입니다. 이번에 민호 군에게 성균관장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이 됐습니다.”
상을 기대하지 않아 전화를 끊고 수상 내역을 확인했다. 아이 이름이 위에서 세 번째에 올라 와 있었다.

 

 민호 편지 7.jpg

(사진 : 픽사베이)


글이 다른 수상작들과 함께 ‘문집’으로 출간이 된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었다. 다시 편지를 쓰던 날이 생각이 났다.
“다 썼니?”
“응.”
“이제 엄마한테 더 할 말은 없니?”
“빼 먹은 말이 있어.”
“그럼, 마저 쓰렴.”

 

엄마! 아빠와 난 사이좋게 지내는데,
매일 잔소리 폭격을 해 대.
그리고 집안일도 못 해.
엄마가 내려와서 아빠 좀 혼내줘!

 

친구들 앞에서 아빠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던 아이는 이제 아빠 이야기를 전국에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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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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