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6_200731(0).jpg » 지인이 선물한 변신 로봇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나. 남자 아이들에게 있어 로봇은 로망이다. 특히 그것이 자동차로 변했다 로봇이 되는 등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면 남자 아이들의 눈은 별처럼 반짝인다. 성인 남자들이 몇 억대 되는 스포츠카가 지나가면 “와~”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 차에서 눈을 못 떼듯, 남자 아이들은 누군가가 멋진 로봇을 가지고 놀면 부러운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본다.
 


아들은 5살이 다 될 때까지 로봇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로봇이 나오는 영상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았고, 누나와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서다. 딸은 로봇보다는 공주다.  민규는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교육방송(EBS) ‘모여라 딩동댕’에 나오는 번개맨에 빠져 있었을 뿐 로봇을 갖고 싶다거나 로봇을 사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파워레인저나 또봇 시리즈의 로봇을 사주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걱정하는 다른 엄마들을 보며 아들에게는 로봇 영상을 가능한 늦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키우기가 그렇게 내 맘대로 되던가. 7살이 된 딸이 이제는 인터넷 티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리모콘 작동법을 잘 모르고 리모콘에 대한 권한을 주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티비를 보지 못했는데, 딸은 어느순간부터 스스로 티비를 켜고 리모콘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날 퇴근 뒤 집에 가보니 아들이 파워레인저 얘기를 한다. 물어봤더니 딸이 파워레인저 영상을 선택해 둘이 봤다고 했다. 이렇게 첫 물꼬가 터지니 더는 로봇 관련 영상을 보지 못하게 막을 수 없었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막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안 볼 것 같지도 않아 영상 1~2개씩만 보고 티비를 끌 수 있도록 아이들과 규칙을 정했다. 또봇에서는 아이들이 쓰지 말아야 할 비속어가 많이 나온다는 불만을 많이 들어 이왕 파워레인저를 본 김에 파워레인저만 허락했다.
 


영상을 보고난 뒤 아들은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로봇쪽을 쳐다봤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엄마! 파워레인저다!”라고 외치며 내 손을 그 쪽으로 이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처음 갖게 된 로봇이 파워레인저 고릴바나다. 처음 사는 것인만큼 가장 싸고 쉬운 쪽을 택했다. 고릴라 로봇으로도 변신할 수 있고, 차로도 변신 가능하다.
 


그런데 막상 조립을 시작해보니 로봇을 처음 만져보는 아들이 혼자 조립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결국 엄마인 내가 변신조립에 나섰는데 차 변신은 쉬웠지만 고릴라 로봇으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른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이 이 조립을 어떻게 한담. 땀이 삐질삐질 났다. 나는 설명서를 보고 1시간 이상 낑낑 대다 이미 로봇을 여러 개 가지고 있고 로봇 조립이 취미인 다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정에 가 있던 그 엄마는 전화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으나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짜증이 났지만 기어코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에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항상 포기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해놓고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지’라는 생각을 했다.
 


주말 저녁 아이들 밥을 차려줘야 할 시간이었지만 나는 로봇 조립에만 매달렸다. 너무 열심히 내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조차 차마 밥 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답답해진 지인은 자신이 조립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내게 보내줬다. 영상을 보고나서야 그제서야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간신히 풀어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너무 기뻐 나는 펄쩍 뛰며 “성공! 해냈어! 애들아!”하고 소리쳤다. 


아이들을 위해 로봇을 사지만 엄마나 아빠가 로봇 조립에 흥미를 붙여 열심히 하는 집안을 드문드문 봤다. 로봇 조립이 쉽지 않다보니 로봇 조립 설명서를 엄마들이 보물 다루듯 하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아이 장난감으로 노는 것이 뭐가 저렇게 재밌을까’ 했는데 내가 실제 조립해보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로봇 설계자는 참 머리가 좋구나’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릴바나를 성공하고 나니 다른 로봇 조립도 사고 싶다. 그런데 로봇을 사는 비용이 장난 아니다. 조악하지 않고 조립이 쉬운 로봇을 고르자면 5만원을 넘고, 종류도 너무 많다.
 


얼마전 김외현 기자가 육아기에 ‘변신 로봇 유감’이라는 글을 쓴 적 있다. 그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겐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며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는 여유로운 댓글을 그 글에 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의 욕구와 무관하게 엄마인 내가 로봇이 참 탐이 난다. 심지어 왜 이 신나는 로봇 세계에 이제야 입문했냐는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불어 이것이 아들 키우는 재미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어려움 끝에 로봇 변신에 성공해 낸 그 맛 때문일까? 아니면 아이보다는 부모들을 타깃으로 한 것 같은 로봇 제작사의 놀음에 내가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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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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