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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금요일 오전 세아이의 등교를 막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을때 전화를 받았다.

"동서... 지금 빨리 병원으로 와"

형님은 울고 계셨다.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 아버님이... 가셨구나..

 

1월 1일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큰 수술을 하고 이어진 급성 폐렴과 당뇨, 신부전, 등등

평생 잘 돌보지 못했던 몸이 호소하는 수많은 증상들로 아버님은 위급과 호전 사이를

오가며 투병을 하셔야 했다.

지방에 사는 자식들이 번갈아 올라와 아버님 곁을 지키다가 2차 병원으로 옮길 정도로

증세가 좋아져서 우리집 근처의 재활요양병원으로 옮겨 14일을 지내셨다.

재활만 잘 하면 다시 강릉 집으로 내려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남편과 내가 매일

병원을 찾아 아버님을 뵈었으나 재활병원에서 다시 폐렴이 나타났고, 신장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한양대병원 응급중환자실로 들어가신 것이 3월 1일 이었다.

하루 두 번, 오전과 오후 면회시간에 맞추어 병원을 찾았고, 더 이상 호전이 없어

격리병실로 내려오신 후로는 구미에 사는 큰 아들이 병상을 지켰다.

나는 아주버님이 드실 음식을 마련해서 이틀에 한번씩 왕십리 한양대병원을 오가곤 했다.

대전에 사는 동서도 직장일을 조정해가며 올라와 아버님을 보살폈고, 남편은 매일 퇴근후

병원을 찾아 아버님을 뵙곤 했다.

말씀은 못 하시지만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있다는 표시를 눈으로만 힘겹게 힘겹게 하시는

동안에도 아주 조금씩 좋아지시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는 날들이었는데

오래 병수발을 하시느라 고단하신 아주버님을 돕기 위해 휴가를 내어 형님이 올라오셨던

그 다음날, 유난히 봄볕이 좋았던 날 오전에 검사를 받기 위해 병실을 나가는 중에

아버님은 거짓말처럼 스르르 숨이 멎으셨다고 했다.

 

슬프지만 다행이다.. 다행이다.. 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추운 날 다 견디시고 따듯한 날 떠나주신 것이, 늘 간병인이나 의료진들만 있을 때

큰 일이 일어날까봐 마음 졸였는데 맏아들 내외가 곁에 있을때 떠나주신 것이

세 달 가까이 자식들이 최선을 다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이, 사무치게 감사했다.

 

4년전 갑작스럽게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약한 몸으로 혼자 4년을 살아오신 것도

기적이었다. 한달에 한 번 세 며느리가 돌아가며 강릉 집을 찾아 아버님을 보살펴 드리면서

지내오는 동안 생전 스스로 밥 한 번 안 차려 드시던 아버님은 손수 밥을 짓고, 며느리들이

해 놓고 간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드시는 것을 해 내셨다.

아버님을 뵈러 가면 밤 새 켜 놓는 TV소리가 큰 스트레스 였으나 그럻게라도 혼자 계신

적적함을 달래셨을 것을 생각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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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에 갑작스럽게 어머님을 잃은 남편은 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아무도 임종을 보지 못하고, 아무런 유지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런 돌봄을 받지도 못하고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회한이 컸던 남편은 아버님이 쓰러지신 후

가장 많은 애를 쓰며 아버님을 보살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매일 퇴근후에 병원을 찾아 아버님을 뵙고

밤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이었다. 우리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아버님을 모시게 되었을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버님을 뵈며 챙겼으나 끝내 증세가 더 심해져서 응급실로 가게 된 것에

큰 자책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아버님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고 늘 우울해 있어서 한동안은 이 문제로

나와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님이 다시 응급실로 가게 되었을때 우린 어느때보다도 서로를 의지했고

서로가 애쓰는 것에 힘을 내어 아버님을 돌보았다.

가족 모두 최선을 다 했으나 아버님은 끝내 떠나시고 말았다.

서둘러 장례준비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강릉으로 내려가는 내내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도 울었다.

 

평생 따듯하지 않았던 아버지..

살갑게 말을 건네고, 다정하게 토닥여주거나 어루만져줄 줄 몰랐던 아버지..

보증을 잘 못서 집을 세 번이나 날리고. 잃었던 재산을 다시 일구는 동안

어머님의 삶을 말할 수 없이 고단하고 한스럽게 하셨던 아버지..

그러나 어머님이 떠나신 후 늙고 약한 몸으로 홀로 되신 아버지를 남편은

그때부터 비로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로지 돌봄의 대상이 되시고서야 아버님이 애틋해진 남편은 강릉을 오갈 때

살뜰하게 아버님을 챙겼고, 매일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곤 했다.

쓰러지신 후에도 더 약해지고, 많이 아프시더라도 그저 오래 오래 곁에

계셔주시기만을 바랬던 남편이었다.

몇 마디 대화조차 오가지 않지만 그래도 보살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마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부모를 다 잃은 그 허전함과, 그 슬픔을 나는 차마 헤아릴 수 가 없었다.

남편은 오래, 많이 울면서 장례를 치루었다.

그 곁에서 열다섯 살 된 아들이 남편을 위로하고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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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한 줌 재가 되어 4년 전 어머님이 잠드신 선산의 잣나무 아래 묻히셨다.

두 손자와 여섯명의 손녀들은 자식들보다 더 애통해하며 할아버지를 보냈다.

온 몸으로 우는 손녀들 때문에 어른들도 목 놓아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쁘면 꼬집거나 때릴줄만 알았던 할아버지였으나 이토록 큰 사랑을 받고 계셨구나..

나는 새삼스레 아버님이 얼마나 복이 많으셨던 분 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프신 동안 자식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셨고, 손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셨으니

낮선 사람들 속에서가  아닌 가장 의지하셨던 큰 아들 내외가 있을때  눈을 감으셨으니

장례 치루는 내내 봄 볕이 이토록 환했으니.. 아버님은 복이 많으셨구나..

생각한다. 그러면 참 마음이 따스해진다.

 

3일장을 치루고 삼오제까지 마친 후 강릉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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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서 우리가 좋아하는 안목에 들렀다.

바람이 불어 바다엔 큰 파도가 일렁였으나 그래서 우리는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파도와 달려보기도 했다.

남편은 그 바다 앞에서

"고생많았어.. 고마워"하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나도 남편을 힘 주어 안았다.

그렇게 서로가 애써온 시간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아들도, 딸 들도 장례를 치루는 내내 의젓하게 곁을 지켰고, 슬퍼하는 아빠를 위로해 주었다.

힘든 일정동안 어른들을 잘 따라 주었고, 할아버지를 위해 많은 눈물을 흘려 주었다.

고맙고, 고맙다.

 

이제 아버님은 떠나셨고 제사는 구미의 형님이 모셔가게 되었다.

두 번의 기제사와 명절은 형님댁에서 지낼 것이다.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오래 비워둘 수 없으니 곧 세를 주거나 팔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릉에 올 일도 드믈어 지리라.

 

처녀적부터 사랑했던 동해바다를 나는 오래 오래 바라보았다.

시댁이 된 후에 오히려 강원도를 여행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약해져가는 아버님을

보살피러 오가는 동안에도 잠깐씪밖에 볼 수 없는 바다였지만 그래도 늘 좋았다.

대관령을 넘어 오가는 길을 사랑했고, 강원도의 푸른 산과 바다를 사랑했고,

고단한 일정속에 남편이 일부러 국도를 돌아 보여주던 장평과 봉평, 둔내와 평창같은

고장의 풍경을 사랑했다.

큰 댁에 가서 차례를 치르고, 일가 친척 집에 세배를 다니고, 큰 댁에서 돌아올때는

일부러 해안도로를 타고 돌아오던 모든 추억들을 아이들과 나는 사랑했다.

이제 그 모든 풍경은 추억이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이 포함하고 있던, 그 사람으로 인해 맺어져 있던 수 많은

풍경들을 잃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길과, 새로운 풍경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오래된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던

명절의 풍경과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큰 아빠 집에서의 명절 풍경은 많이 다를 것이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풍성하게 채워주던 그 다채로운 색깔들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천진하고 명랑하게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나는 14년간 누렸던 수많은

추억들과 애틋하게 이별 했다.

이제 한 시절이 지나갔다.

새로운 시절은 새로운 풍경을 가지고 올 것이다.

 

남편은 나보다 더 오래 오래 마음을 앓겠으나 바쁘고 고단한 일이 다 지나고나면

그동안 연로한 아버님을 돌보느라 늘 미루기만 했던 가족 여행을 한 번 다녀오자고 했다.

자식으로서의 책임에 최선을 다 했고 이제 그 짐을 내려 놓았으니

이제 서로를 더 챙기고, 가족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조금은 마음 가볍게 누리자고

남편과 얘기했다.

 

아버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그 곁에 어머님이 함께 계시기를...

우리의 추억속에서만 존재하시겠으나 사는 내내 남은 자손들에게 좋은 기운이 되어

곁에 함께 계시기를...

부족하고, 그닥 살갑지 못했고, 제일 어설펐던 며느리였던 나를 용서해주시기를...

세 아들 중 가장 마음이 여리고 섬세한 당신의 둘째 아들을 잘 지켜주시기를..

우리 부부와 가족의 앞날을 그곳에서 내내 축복해 주시기를...

 

편히 쉬세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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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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