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xcm, 세로 xcm. 뽀뇨네 집에는 아주 작은 밥상이 있다.

에게, 무슨 식탁이 이렇게 작아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 찌개, 밑반찬, 금방 만든 반찬, 과일 샐러드를 한 상에 놓을 수 있다.

결혼하며 장만한 식탁은 여러 가지 집기가 올려져 있다가

이사를 앞둔 며칠 전 결국 다른 집으로 입양갔다.

 

남편들은 결혼하며 부엌 식탁에 아침상이 가득 차려질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서울 생활하며 아내도 나도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다보니

이 식탁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아침은 학원 근처 사내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도 개별적으로 먹고 들어오다보니

 부엌식탁 가득은 드라마의 일이 되어버렸다.

 

제주에 내려와서 처음에 적응이 안된 것은 밥 먹을 시간이 충분히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출근하고

저녁 6시에 칼퇴근하여 걸어서 6시 반이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였다.

제주이주 후 막 출산을 앞둔 아내와 아주 작은 밥상을 두고 옥신각신했는데

아내는 우리집은 오늘부터 이 밥상에서 먹을 거에요. 찬은 딱 3가지 알았죠?”라고 통보했고,

나는 아무리 그래도 밥상이 너무 작은거 아니에요?”라고 맞받아쳤다.

 

상에 올라가는 밑반찬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쳐놓았는데

나는 어느 곳이든 맛있게 먹었지만

입이 짧은 아내는 경상도 시어머니가 만든 반찬을 전혀 먹지 못하였고

전라도 엄마가 만든 반찬,

그것도 갓 무친 김치만을 맛있게 먹었다.

 

아내와 결혼을 한지 6년차, 밥상 차려달라고 하는 남편은 간 큰 남자라고 하는데

나는 전생에 나라를 몇 번씩이나 구했는지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매일 맛있게 먹고 있다.

남편의 당연한 권리라기보다는 아내가 나를 극진하게 생각하는구나라는 것을

매일 매일 절로 느낄 수 있어서 참 고맙다.

 

이사 가기 전에 냉장고에 차있는 음식을 다 해결해야 해요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요즘 하루가 다르게 반찬 가지 수가 늘어나고 있다 보니

내가 이렇게 대접을 받아도 될까싶다.

 

아내가 처음에 말한 찬 3가지에는 김치와 계란후라이, 밑반찬이 들어갈 수 있는데

어제 저녁에 밥상에 올라간 찬이 무려 7가지.

무엇이 아내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는 현재 만삭의 몸이고 가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며 이삿짐도 싸고 뽀뇨도 돌봐야 한다.

남편은 요즘 일이 잘 되는 건지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아빠 일 다녀올께요”, “아빠 다녀왔어요라고

얘기하는 횟수도 늘어나고,

점점 우리는 다소 특이한 가족에서 보통가족(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아내는 내가 밥을 먹을 때 뽀뇨를 함께 불러서

뽀뇨, 가족이 식사를 할 때는 밥을 다 먹었더라도 옆에서 항상 있어줘야 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생각해보면 지난 10년간 서울생활하며 혼자 밥 먹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앞에 아무도 없는 자리에 앉아 퍼슥한 식판의 밥을 입안으로 우겨넣는 그 밥맛엔

고독이 철철 넘쳐흘렀다.

 

아빠’, ‘남편이라는 위치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는 ’.

배부른 고민이자 가진 자의 오만이라고

다른 아빠, 남편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가 참 부담스럽다.

배려로 생각하고 고마워하면 그만이겠지만 박목월의 가족같은 시가 생각나고

밥심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우리 가족은 출발부터 보통가족과는 달랐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며 아빠가 준비한 돌잔치며 아빠육아에 육아가 가능한 직장구하기까지..

현재도 보통가족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내의 밥상만큼은 나를 아빠/남편의 자리로 소환한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일단 맛있게 먹고 살찐 돼지가 되어 고민하리라.

 

<나라를 구한 남편의 밥상. 다과상 같은 밥상에서 점점 더 커진다 ^^;>

아내의 밥상.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44195/534/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88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요??? imagefile 신순화 2011-07-27 34562
188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임대아파트 당첨, 근데 아내기분은 장마다 imagefile [9] 홍창욱 2012-07-03 34472
1883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엄마, 어디 가요?" 묻고 묻고 또 묻고 imagefile 양선아 2010-07-08 34106
1882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시험관 아기 도전, 혹시 세쌍둥이? imagefile 김은형 2010-06-18 34099
1881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딸바보 imagefile 윤아저씨 2011-05-28 34021
1880 [송채경화 기자의 모성애 탐구생활] 불안하다고 불안해하지 마 imagefile [2] 송채경화 2016-06-10 33973
187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방콕' 남편 본성을 찾습니다 imagefile [11] 양선아 2012-09-04 33918
1878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결혼전 딸기여행, 결혼후 딸기체험 imagefile [7] 양선아 2013-03-27 33914
1877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잘못된 몸'을 낳은 엄마의 '자격'에 관하여 imagefile [8] 서이슬 2018-07-29 33866
1876 [송채경화 기자의 모성애 탐구생활] 마지막 남은 탯줄을 끊고서 imagefile [3] 송채경화 2016-02-24 33838
187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때론 정말 징글징글한 이름, 남편이여!!! imagefile [17] 신순화 2012-03-12 33772
1874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싸울 땐 ‘손 잡고 마주앉아’ 싸우자 imagefile [2] 김외현 2013-05-09 33624
1873 [김명주의 하마육아] 이 뜨거운 순간, 곰남편은... imagefile [5] 김명주 2015-05-14 33595
1872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나중에 자식에게 양육비 소송 안하려면 imagefile 김미영 2010-12-01 33579
1871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다 큰거야? imagefile 윤아저씨 2010-11-03 33543
187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오빠와 동생 사이, 둘째의 반란! imagefile 신순화 2011-10-04 33524
1869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뭐든지 언니처럼, 동생의 집착 imagefile 김미영 2011-04-15 33490
1868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네 살짜리 가출 선언 imagefile 김태규 2011-09-19 33482
186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버럭과 눈물 끝에 마침표 찍은 아들의 독후감 imagefile 신순화 2011-08-24 33406
1866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태교의 종말 imagefile 김미영 2011-05-11 33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