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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컴퓨터를 켰다가 베이비 푸어라는 기사에 딱 꽂혔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허니문 푸어에 이은 새로운 푸어족의 등장!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가난뱅이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나 보다.

사실 나는 베이비 푸어라는 이 말이 낯설지 않다. 내 블로그에 마이 푸어 베이비(우리말로 하면, ~불쌍한 내 새끼라는 뜻)’라는 꼭지에 글을 쓴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단어 구성이지만, 정 다른 의미다. 내가 말하는 푸어 베이비는 가난하지만, 그러니까 뭐가 많이 없고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고 건강한 아기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의 결핍이 역설적으로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굳건히 믿는 나의 개똥철학이 담겨 있다. 하지만 베이비 푸어는 정반대의 의미다. 아기 때문에 가난하고 불행해졌다는 거다. 고용불안, 전셋값 폭등으로 안 그래도 경제난에 시달리는 30대 젊은 부부들이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고, 불안하다는 거다.

왜 아니겠나? 우리는 출산비 1,000만원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분만에 실패해서(아님 포기하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경우 출산비용이 300~400만원은 족히 든다. 그리고 임신 중에도(특히 노산일경우) 이런저런 검사 갖다 붙이면 기백만원은 우습다. 한 유아업체에 따르면 유모차와 아기 옷 등 기본적인 유아용품 5종류를 인기 있는 수입제품으로 사면 최소 400만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긴, 고소영 유모차가 300만원인가 한다고 기사에서 본 거 같다. 대충 계산해도 천만 원이다. 요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자르고 돈줄을 붙인다더니 듣던 대로 딱 맞는 말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아기용품은 비싸야 잘 팔린다는 거다. 우리나라 유아용품의 가격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 중저가 유아복 브랜드 베비라가 망했나 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당연히 아기가 태어나면서 수입은 반토막 난다. 나는 진작에 파산이다. 허리가 휘청하는데, 아기의 탄생이 어찌 기쁠 수 있겠나. 아기가 태어나면 짐에 짐을 더 얻는 듯한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젊은 부부의 말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베이비푸어의 역설은 더 가슴 아프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출산비용이 더 커진다고 한다.

어떤 전문가(?)는 베이비푸어가 되지 않으려면 출산은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출이나 빚이 있다면 출산을 미루라고 조언한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나도 그랬지만, 내 주위에는 아기를 계획해서 알맞은 시기에 딱 낳은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 출산을 미루라는 말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다. 최근 가계 빚이 계속 늘고 있는 세상에 애 낳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3안팎으로 세계 217위라는 등수는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다 정부는 가만히나 있지, 말뿐인 출산장려정책은 가만 있는 것보다 더 밉다. 출산파업 동맹이라도 해서 들고 일어나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이 하나를 낳아보니 아기 낳지 말자고 말하기에는 기쁨이 너무 크다. 방법이 없을까? 결국 발상의 전환이다. 답답한 현실에 하이킥을 날리고, 보란 듯이 행복하게 신나게 살아보는 거다.

나 역시 아예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벌어놓은 건 쥐뿔 없는데, ‘처녀가 임신한 케이스라 더 했다. 그러나, 어쩌나? 벌어진 일은 잘 수습해야지. 결국 발상의 전환이다. 방법은 생각을 바꾸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거다. 생각을 바꿨더니(바꾸려고 노력하니) 다른 세상이다. 오죽하면 '가난한 풍요'라고 떠들고 다닐까? 기본적인 원리는 이렇다. 없으면 몸이 힘들다고, 없으면 많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관계와 연대를 바탕으로 살아가게 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훨씬 풍요로워지는 게 가난뱅이의 역설이다. 아이 때문에 가난해진 게 아니라, 아이 때문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렇게 재미가 붙다보니 혼자 잘났다고 살아가던 옛날을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과 접속하여 살아간다.

왜 우리가 고소영 유모차에 현혹되어 부러워해야 하나? 헌 유모차 물려받아도 애만 잘 큰다. 왜 우리가 더 비싸게 해야 팔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유아업체의 고가마케팅에 휘청거려야 하나? 당당히 거부하고, 친구에, 이웃에 눈을 돌리자.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볼까? 아기옷 사러 한 번도 안 가봤지만, 우리 집에 아기 옷이 넘쳐나서 매일 아침 베스킨 라빈스 31보다 더 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다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옷 좀 꼬질꼬질해도 행복한, 좀 못해줘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정신적 무장! 베이비푸어의 역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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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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