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린은 아침잠이 많다.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라서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출근 시간이 조금 느슨한 IT 회사에 다니는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안그랬음 매일 지각을 했을 것이다!) 늦게 출근한 만큼 밤늦게 돌아오니 오히려 이것이 올빼미 생활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미 한밤중, 집에 왔으니 하고 싶은 일 하며 노닥거리면 늦게 잘 수밖에 없다. 쫓기듯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도 아이들 재우고 난 후의 자유 시간이 무척 달콤하니까, 좌린의 사정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종종, 특히 주말 오전에 늦게까지 못 일어나는 걸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데 여행을 할 땐 올빼미 좌린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가 된다. 깨우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 산책을 하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사진을 찍는다며 새벽 일찍 나가서 아침노을을 찍어올 때도 있다. 오늘은 어디에서 뭘 할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벅찬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동안 다리가 뻐근하도록 돌아다녀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하루를 마감하기 때문이리라. 퇴근 후의 자유 시간은 이제 필요 없으니까, 낮에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참아내지 않아도 되고, 그 속에서 소멸 돼 버릴 것 같은 자아를 밤늦도록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연히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제일 먼저 일어나 빨리 아침 먹고 나가자고, 침대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우리를 재촉했다.
“오늘, 뭐할까?”
“모노레일 한 번 타보지, 뭐.”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잠을 깨운 사람의 대답치고 참 싱겁다.
“그러니까, 모노레일 타고 어디 가면 좋은지 묻는 거잖아.”
“아무 데나! 모노레일타고 종착역까지 가봐도 좋고 그러다가 아무 역이나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리고.”
아무 데나! 예전의 나였으면, 이렇게 무성의한 대답이 어딨냐고 화를 냈을 것이다. 십 년 전 좌린과 일 년 넘게 배낭여행을 하면서, 가장 처음 겪은 어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자유를 꿈꿨으나 막상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학교와 직장의 규율에 이 십 년 넘게 길들어진 나, 효율적으로 빨리 성과를 얻으려는 내 안의 강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 안내서를 독파했다. 수험교재처럼 밑줄 좍 그어가며...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섭렵하기, 이런 미션에 도전하려는 내게 아무 데나 좋아요, 못 가도 괜찮아요, 하는 좌린의 반응은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소문난 여행지에서 실망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고 가본 곳 리스트를 채울수록 미션에 대한 감흥이 떨어졌다. 아무 일 없이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맛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나만의 특별한 장소를 발견하거나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는 멋진 우연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되도록 일정을 채워 넣기보다 비우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좌린의 말처럼 ‘아무 데나, 내키는 대로’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태평 대마왕 좌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는 무작정 가서 보고 무엇을 결정하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먼저 알아보고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것이 더 편하다.
모노레일을 타보자는 좌린의 말에 나는 어느역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 어디서 내리면 좋을지 먼저 생각을 해보았다.
“모노레일 타고 한 정거장 가면 부킷나나스(Bukit Nanas)역인데 거기에 산림보호구역이 있대. 도심 속 정글 트레일, 멋지지 않아? 큰 나무에 흔들다리를 매어 놓은 캐노피 워크도 있다는데!”
“그래, 거기 괜찮겠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흔쾌히 좋다하는 좌린.
사실, 아무 데나! 만큼 훌륭한 대답도 없다. 어디든 좋다는 뜻이니까.
나의 첫 번째 계획은 보란 듯이 어긋났다. 보수 공사로 문을 닫아서 산림 보호구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부킷 나나스 꼭대기에 있다는 쿠알라룸푸르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부킷은 말레이어로 언덕이란 뜻이다) 남산 타워랑 비슷하게 생겼다. 꼭대기의 둥그런 부분에는 회전 식당과 전망대가 있을 것이다. 빽빽한 밀림 속에 탑이 둘러싸인 것이 조금은 인상적이었다.
"어쩌지?"
"일단 걸어보자. 마침 내리막길이잖아."
역시 좌린다운 대답!
"그래, 이 길로 쭉 내려가면 당왕이(Dang Wangi) 경전철(LRT)역이 나와. 거기서부터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구역이야. 리틀 인디아에서 구경하고 인도 식당에서 점심 먹으면 되겠네."
나는 머릿속에서 재빨리 Plan B를 만들어냈다.
당왕이역까지 왔을 때 아이들을 보니 이 상태로 계속 걷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리틀인디아 구역이라는데 인적도 드물고 여행자의 시선을 끌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덥고 습한 날씨에 볼이 발그레해진 아이들의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안 되겠다. 일단 역으로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혀보자.”
“경전철 타고 마스짓 자멕(Masjid Jamek)으로 가는 거야. 거기가 리틀인디아와 차이나타운의 접점이거든.” 좋았어, Plan C!
세 번째 계획은 괜찮았다.
마스짓 자멕 역에 내리니 인도 식당과 가게들이 늘어선 시장이 나타났다.
화려한 색감의 사리 가게, 얼굴 마네킹이 인상적인 히잡 가게,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장난감 가게, 옷과 가방, 생필품까지... 시장의 물건도 그렇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아루와 나는 지나가는 여성들의 옷차림에 시선이 꽂혔다. 온몸을 다 가리고 얼굴만 드러내서인지, 열대의 감각인지 옷 색깔이 과감하고 화려했다.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둘이서 어떤 옷이 더 예쁜지, 어떤 색의 조합이 좋은지 한참 수다를 떨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기회가 되면 다시 와서, 우리도 옷 한 벌씩 맞춰 입자, 약속도 하고.
입구에서 난(납작한 인도식 밀가루 빵) 반죽을 하고 있는 허름한 인도 식당에서 음료를 마셨다. 아이들이 오렌지 주스 사 달라는 걸 인도 식당에 왔으니 라씨(인도식 요거트)를 마셔야 한다고 내가 우겼다. 나는 짜이(밀크티)를 주문하고! 인도에서는 말이야... 인도를 가 봤다고 아이들에게 자랑질. 시원한 맛에 몇 모금 허겁지겁 마시더니 그만 먹겠단다. 시큼한 맛이 아이들에겐 별로였나 보다. 덕분에 나만 꾸역꾸역 음료로 배를 채웠다. 잘난체한 댓가로.
마스짓 자멕역으로 돌아와 길을 건너니 야자나무로 둘러싸인 하얀 모스크가 나타났다. 이 것이 바로 마스짓 자멕(Masjid Jamek), 자멕 모스크!(Masjid은 말레이어로 모스크를 뜻한다.) 기온 30도, 습도 80퍼센트, 한낮이 되니 걷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나무 그늘에서 모스크 구경하며 조금 쉬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낚시 의자를 펼치고 아이들을 앉혔다. 좌린과 나는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고.
말레이시아에서는 화교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과연 리틀인디아의 시장에 비해 차이나타운의 중앙시장(Central market, 말레이어로는 파사르 세니)은 시설이 좋았다. 무엇보다 에어컨이 빵빵 나왔다! 리틀인디아의 시장은 재래시장, 중앙시장(파사르 세니)은 잘 꾸며진 쇼핑몰 같은 분위기였다. 들어설 때는 기진맥진 상태였는데 땀을 식히고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나니 살만해졌다. 여기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보기 좋게 잘 꾸며놓았으나, 재래시장처럼 활기가 넘치진 않았다.
도교 사원, 불교 사원, 힌두교 사원까지, 볼거리가 많은데, 머릿속으로 새로운 계획을 막 짜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땡볕에 걷는 것이 힘들어 더 욕심을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 중앙시장(파사르 세니) 경전철역이 있는데 경전철을 타면 모노레일로 갈아타야 하니까, 조금 더 걷더라도 모노레일을 타고 한 번에 가기로 했다. 좌린의 주장에 의하면, 스마트폰의 구글맵에 의하면, 모노레일 마하라잘렐라(Maharajalera)역까지 800미터 거리라고 했다. 강을 건너 우체국 앞을 지나 계속 걸었다.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쿠알라룸푸르 기차역이 나왔다.
“우리 모노레일 역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왜 모노레일은 안 보이고 철길만 보이지?”
그제야 정신이 들어 지도를 보았더니 우리가 서 있는 위치의 맞은 편 저 너머에 모노레일 역이 있었다.
“가까이 온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어떻게 건너지?”
차들이 씽씽 달리는, 물론 인도도 교차로도 없는 고가도로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구글맵에서 본 길이 고가도로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들 생각해서 일부러 반듯하고 질러가는 길을 찾아 왔더니... 다시 중앙시장으로 되돌아가서 경전철을 타고 모노레일을 갈아타기로 했다. 좌린은 아루를 업고 나는 해람이를 업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반사판 같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가까스로 중앙 시장(파사르 세니)역에 도착했을 때 비가 쏟아졌다. 열대의 스콜이 순식간에 도시를 삼켜 버렸다. 주변의 모든 풍경이 빗속으로 사라졌다. 고층 빌딩과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 짙푸른 색깔로 생명력을 과시하던 나무들, 사람들... 모두 사라졌다. 순식간에 수중 도시로 변한 눈앞의 풍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힘에 압도되어 귀가 멍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불과 다섯 정거장을 가기 위해 두 번을 갈아탔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 라자출란 역에 도착했을 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모든 게 다시 돌아왔다. 20분 만에!
“해람아, 진짜 딤섬이 먹고 싶어? 딤섬 파는 식당에 가려면 또 엄청 걸어야 하는데...”
낮에 ‘차이나타운’이라는 단어를 듣더니 아이들이 차이나팩토리를 떠올리며 딤섬이 먹고 싶다고 했다. 차이나팩토리는 딤섬과 중국음식을 파는 집 근처의 식당이다. 차이나타운에 딤섬 식당이 있을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었다. 중앙시장 내의 푸드코트에도 딤섬은 없었다. 여행 안내서를 뒤져보니 우리 숙소에서 1km 떨어진 잘란 알로르(알로르 거리) 끝에 홍콩 스타일 딤섬 가판대가 있다고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또 길을 나설 생각을 하니까, 두 아이를 끌고 1km 걷는 상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딤섬 파는 식당이 너무 멀다, 이미 많이 걸었으니까 오늘은 숙소 가까운 데서 다른 걸 먹고 내일 딤섬을 먹으러 가자고 사정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내일 점심에 꼭, 딤섬을 먹게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해도, 아이들은 확고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 끝까지 찾아가더라도 오늘 밤 안에 꼭 딤섬을 먹고야 말겠다는 듯이.
“좋아, 멀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기야!!” 마지못해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와우! 잘란 알로르 입구에서 입이 떡 벌어졌다. 길을 따라 늘어선 야외 식당, 수백 개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눈앞에 펼쳐졌다.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휘황찬란한 간판,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메뉴판,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호객꾼, 그리고 지글지글 후라이 팬에서 내뿜는 열기와 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오감을 자극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곳을 찾아냈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어디서 뭘 먹어 줘야 하는 지, 행복한 고민에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씨푸드? 사떼(꼬치구이)?” 호객꾼들이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는 결연했다. “딤섬!” 코앞에 펼쳐진 각종 유혹을 물리치며 잘란 알로르를 따라 걸었다. 다리가 아파서 아무 데나 딤섬을 파는 곳이 있으면 앉고 싶었는데 딤섬이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딤섬 가판대가 없어졌으면 어쩌나, 그럼 콱 울어 버릴 거야.’ 잘란 알로르 끝에 이르러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데 딤섬 가게가 나타났다. 點心! 좌린이 한자로 써진 간판을 알아봤다. 그래도 눈물이 났다. 아이들을 실망 시키지 않았다는, 그리고 이제 앉아서 뭘 좀 먹을 수 있겠다는 안도의 눈물. 나와 아이들은 그림 메뉴판을 보고 딤섬을 골랐고 좌린은 닭발 요리를 시켰다. 집 근처의 차이나팩토리처럼 딤섬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찌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해람이가 잠이 들었다. 딤섬을 먹겠다고, 짧은 다리로 이 먼 길을 걸어, 그렇게 기를 쓰고 여기까지 찾아온 해람이가, 주문한 딤섬이 나오기도 전에 그만 잠이 든 것이다.
딤섬 접시를 앞에 두고 잠든 해람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해람이는 정말 딤섬이 먹고 싶었던 걸까? 내가 아는 한 해람이는 딤섬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럭저럭 먹기는 하지만 이렇게 꼭 먹겠다고 고집을 부릴 만큼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해람이가 여길 오겠다고 기를 쓴 것은 단지 ‘딤섬이 먹고 싶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해람이를 위해 딤섬을 포장해 왔는데 배가 꽤 고팠을 텐데도 겨우 두어 개 먹고 말았다.
“엄마, 언제 집에 가?”
“지금은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엄마, 아빠, 아루, 해람이, 우리 가족 함께 있는 곳이 우리 집이지.”
“여기 말고 서울에 있는 우리 집.”
“너는 서울 집에 가고 싶어?”
“응”
“왜?”
“레고하고 싶어서.”
“뭐 만들고 싶은 거 있어?”
“차 만들 거야. 공항에서 본 계단 달린 차랑 기내식 운반하는 차, 그리고 짐 싣고 가는 차!”
“나중에 서울에 가서 하면 되지.”
“그럼 까먹는단 말야.”
“그렇구나. 당장 만들고 싶은데 여기는 레고가 없으니 어쩌지?”
잠자리에 누워 해람이가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두고 온,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잇감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는 해람이를 보니 괜히 눈물이 났다. 해람이가 기를 쓰고 그렇게 찾았던 것은 ‘딤섬’이 아니라, 서울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 제 기억 속의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떠나 온 세계의 무엇이 여기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낯섬의 충격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해람아, 그림을 그려. 종합장에 그림 그려놓고 나중에 서울에 가서 그거 보고 만들면 되지.”
아루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아루는 서울 집 생각 안나?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나는 여행이 좋아.”
“왜?”
“새로운 걸 많이 보잖아.”
“새로운 거, 뭐?”
“사리 가게도 보고, 머릿수건(히잡) 파는 가게도 보고. 나시라막도 먹어보고.”
집에 가고 싶은 해람이, 여행이 좋다는 아루,
낯선 도시에서 갈등하는 두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집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해람이에게 이곳이 얼마나 낯설고 어색한지, 헤아릴 수 있었다. 사실 여행이 좋다는 아루의 말은 정말 좋아서라기보다 좋아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눈여겨보고 다가가는 노력이 대견했다.
이 도시와 친해질수록 해람이의 그리움도 나아질 것이다.
오늘 하루, 전철과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길거리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도심을 헤매면서 생경했던 풍경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확 친해지는 관계도 있지만, 뜸들이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으니,
이 도시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지켜보자.
서울에서 쿠알라룸푸르, 35도의 차이.201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