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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지면에 남편과 싸운 이야기를 쓰면서 살짝 고민이 있었다.

육아 이야기를 올리는 곳에 부부사이의 갈등을 적는 것이 적절한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육아에서 '남편'을 빼 놓을 수 없듯이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일에

부부사이의 삐걱거림이 없을 수 없는 법이다. 싸우고, 오해하고, 삐지고, 후회하고

다시 손 내밀며 우리도 남들처럼 평범한 부부일 뿐 인것을, 아닌척 할 수 도 없거니와

그때 내 심정으로는 도저히 다른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결혼 12년 동안 남편과  수없이 싸우며 산 것은 아니다.

싸웠다기 보다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서 나 혼자  고민하며 보낸

날들이 더 많았다고 할까.  차라리 서로 맘 속에 있는 말 다 꺼내 놓으며 실컷

싸우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남편과는 도무지 싸움이 안 된다.

남편은 화 나면 입 다물고 아무런 대꾸도 않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 부부들이 싸우면 아내들이 말을 안 해서 남편들이 답답해 한다는데

우리집은 완전히 거꾸로다.

 

나는 마음에 쌓아두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서 반드시 말이든, 글이든

풀어야 하는데 남편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니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곡진하게 내 마음을 들려주면 상대방도 뭔가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최소한 내 말에 대한 대답이라도 돌려주겠거니... 기대했건만 남편은 늘 침묵이었다.

그 침묵을 견딜 수 가 없었다.

침묵의 의미를 알아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무시하는 걸까?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자기가 잘못해서 할 말이

없는걸까? 그렇다면 왜 저렇게 당당한걸까.. 그냥 귀찮은건가? 마누라와 얘기하고 풀어내는

과정조차 귀찮으면 우리가 부부인게 맞는거야? 말 주변이 없어서인가? 말 잘하는

마누라랑 살다보니 마누라보다 말을 더 잘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무는건가?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논리정연한 근사한 말들이 아니라 그저 남편의 진심인데

그건 말을 잘 하는거랑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냥 개뿔같은 자존심때문일까? 도대체 자존심이 뭔데 마누라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속상해 하는 것까지 무시하는 거야? 도대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마누라랑 다투고 돌아선 남편 등 뒤에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소연도 해보고

따져도 보고, 혼자 울며 넋두리도 해 보았지만 남편은 그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대답없는 남편의 등 뒤에서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 놓고

혼자 울다가 혼자 풀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나면 한참 있다가

'.... 미안해...' 남편은 이러는 것이었다. 자기의 생각은 어땠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찬찬하게 들려주는 것 없이 그저 '미안해....' 뿐 이었다.

미안하다는 사람에게 또 다시 화를 낼 수 도 없고, 나는 이미 쌓인 것을

다 풀었으니 그럼 된거라고 그러면서 살았다.

 

남편과 이런 일들을 겪을 때 마다 우리 사이에 이렇다 할 '연애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다. 3개월간의 짧은 연애기간 동안 우리는 제대로

싸운 일도 없었다. 서로 결혼이 너무나 절실했고, 그 시절 남편은 이미

어느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추었기에 서너 번 만나고 나니 벌써 결혼 얘기가

나왔고, 그 다음엔 양가 인사와 결혼 준비로 시간이 가 버렸다.

사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폭발할 일은 없었다. 큰 갈등도, 큰 감동도, 벅찬

추억도 없었다.

결혼 후 두달만에 아이를 가진 후에는 부모가 될 준비에 몰두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고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에 정신 없이 살다가

둘째가 태어났고, 그리고 셋째가 태어나는 동안 우리는 늘 서로를 알기 보다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새로운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하느라 쩔쩔매며 살았다.

우리보다 먼저 넘어질것 같은 도미노를 안간힘을 다해 막아내는 삶 같았다.

그러다가 이따금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나면 도대체 우린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걸까... 다시 막막해지곤 했다.

 

짧은 연애의 역사는 이미 결혼의 긴 역사에 묻혀 버린지 오래고

아이 키우며 살아온 12년의 세월동안 서로를 겪어온 과정이 있으니

이제 서로를 알만큼 알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가끔 이렇게 크게

다투고 나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 맞는건지, 아직도

이렇게 마누라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가슴이 철렁 해지곤 하니 말이다.

 

부부는 어떻게 정말 '부부'가 되어가는 걸까.

함께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가면 부부일까.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가 되고, 동서가 되고, 형님도 되고, 새로 주어지는

다양한 역할과 책임속에서 어른답게 도리를 다 하느라 애쓰는 동안

정작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엔 얼마나

마음을 다 했을까... 묻고 있는 요즘이다.

늘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는 기분이 남편을 볼 때마다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 나이를 먹고, 애들이 다 커서 우리 곁을 떠나면, 그래서 정말

피할 수 없이 감출 수 도 없이 남편과 나만 남는다면 그때 문득

내 앞에 있는 '남편'이란 존재가 생경해 보일까과 가끔 두렵다.

 

결혼이란 관계의 완성이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 내가 선택한 이 사람만큼은 제대로 이해해보려고

평생 노력하겠다는 선언이고 약속일 뿐이다.

아직도 내게 편이 낮설다면 우린 그 선언과 약속에 최선을 다 하지 못해 왔다는

뜻일 것이다.

 

한차례 크게 싸우고 우린 또 예전처럼 내가 먼저 손 내밀었고, 남편은

오래 뜸 들이다 그 손을 잡아 주었고, 비로소 나는 오래 울며 내 맘을 들려주었고

남편은 내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준 후에 '미안해...' 해 주었다.

우리 사이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세상은 전처럼 평온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되는 걸까..

 

저마다 다른 세 아이를 이해하려고 몸부림치며 애쓰고 살아오는 동안

남편에 대해서는 그렇게 뜨겁게 열망하고 노력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이 산다고 저절로 알아지는게 아닐텐데 치열하게 서로를

탐색하고, 그 사람 마음속을 탐험하고 새롭게 알아가는 것에 감동해 본

시간들이 너무 적었던게 아닐까..

 

마흔다섯인 내가 오십을 앞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어쩌면 우리 두사람은

이제부터 정말 제대로 서로를 알아가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년의 시들함으로 서로를 바라보기엔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싫증날만큼

이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 두 사람.. 이제부터 정말 진짜 '부부'가 되어가는 시절을

남겨두고 있는 건가.. 지금껏 미루어온 숙제를 비로소 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나이에도 나는 남편과 잘 지내고 싶은 것이다.

이 사람과 남은 인생을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진짜 '부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남편이여...

그러니 당신도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기를..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를 부디 놓지 말기를..

더 많이 싸우더라도 조금씩 더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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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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